우리 술 칼럼
술술 Talk
슬기로운 음주생활, 쑥술
2018-04-30

< 곰손 에디터의 좌충우돌 술 빚기 8탄>
슬기로운 음주생활, 쑥술

 

 

큰일이다. 봄 진달래를 보면 두견주 달짝지근한 맛부터 떠오르고, 가을 국화를 앞에선 그윽한 국화주 한 잔이 간절해 짭짭 입맛을 다신다.

흡사 종 치면 침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사사건건 술 마실 궁리다. 이게 다 술을 담그고서부터다. 본격 주모의 삶에는 닿지 못했지만 내킬 때마다 빚는 계절 술만으로도 내 음주생활은 한참 더 슬기로워졌다.

 

무엇보다 술마다의 흥취를 고이 깨닫고 즐길 수 있게 된 건 나처럼 타고난 주당에겐 실로 값진 선물이다. 그 즐거움은 술을 담그며 날마다, 달마다 깊이를 달리하는 빛깔과 풍미에 촉각을 곤두세워본 사람만이 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전 아파트 화단에 쑥쑥 돋아난 쑥을 보곤 이내 쑥술이 떠올랐다. ‘저 쑥 캐다가 술 한번 담가볼까.’ 생각만으로 봄 대지의 푸릇한 향기가 입안 가득 감돌며 침이 고인다. 사실 쑥술 ‘애주(艾酒)’는 작년 봄에 담갔다가 실패를 맛본 술이다.

 

그땐 지금보다 더한 애송이 주모였던 탓에 술이 채 익기도 전에 썩어버리는 낭패를 경험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쑥을 제대로 바짝 말리지 않으면 그렇단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다르지. 실력도 자신감도 어느 정도 붙었다. 다시 한번 도전! 올해는 기필코 쑥 향기 그윽한 쑥술을 마시고 마리라.

 

하루 한 잔이면 만병이 낫는다고요

 

애주는 봄 들판에 지천으로 돋아나는 참쑥을 뜯는 일로 시작한다. 옛 아낙처럼 바구니 옆에 끼고 산으로 들로 쑥을 캐러 다닐 처지는 아니라서. 또 잠시 아파트 화단에 돋아난 ‘아이들’에 유혹을 느꼈지만 그 또한 녹록치 않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서, 쑥은 그냥 마트에서 좋은 놈으로 골라 샀다.

지난해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깨끗이 씻은 다음 잘 말려 써야 한다.

 

마침 혼자 사는 늙은 딸의 동태를 사찰하고자 어머니가 고향에서 올라왔는데, 중차대한 일인 만큼 쑥 말리기는 살림 고수 당신에게 일임했다.

“밖에서 퍼 마시는 것도 모자라 집에서 담가 마시기까지 하냐”는 탄식은 애써 못들은 척하며. 내년 어버이날에 부모님 건강을 기원하며 마실 몸에 좋은 술을 담근다는 ‘엄청난’ 핑계를 대며. 실제로 옛 조리서 《수운잡방》에는 애주를 두고 ‘하루에 한 잔 마시면 만병이 낫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올해는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그렇다 해도 1년 뒤까지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봄날의 애주 담그기가 시작됐다.

 

술 빚는 사람만 안다는 속닥한 즐거움

 

애주는 밑술에 덧술을 한 번 하는 이양주법으로 담근다. 내 실력이 달려 그렇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쑥은 깨끗이 씻어 완전히 말려 써야 한다.

수분이 남아 있으면 술이 썩기 십상이다. 작년에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직사광선 아래서는 쑥이 하얗게 바래고, 쑥 고유의 풋풋한 향기도 날아간다. 애주는 부드러운 쑥 향기에 옅은 초록빛이 맑고 청량한 느낌을 자아내는 술, 시간이 좀더 걸리더라도 쑥은 반드시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말려야 한다.

 

말린 쑥은 폭폭 달여 쑥물을 우린 다음 밑술 빚을 때 물 대신 쓰고, 덧술에는 찹쌀로 고두밥을 찔 때 섞어준다.

밑술에서는 쑥의 향기를, 덧술로는 빛깔을 돋우는 셈이다. 쑥을 이래저래 촘촘하게 활용하지만 쌀 양의 1%에 불과하니 그 향기와 빛깔이 약처럼 너무 진하지는 않다. 쑥술이 봄철 약주의 대표 격이긴 하지만, 술은 술이지 약은 아니니까.

 

그래도 말린 쑥에 소주를 붓고 담그는 술과는 차원이 다른 층층이 부드러운 향기와 맑고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니 벌써부터 기대 가득하다. 올해는 기필코 성공하리라. 불끈!
사위가 적막해지는 깊은 밤, 또로록 또로록 술 익는 소리가 정겹다. 그 소리를 BGM 삼아 향기로운 술 한 잔 기울이는 기분은 또 얼마나 환상인지. 맑고 풋풋한 술, 애주가 좋겠다. 어서어서 동참하시라, 웰컴 투 주모 월드! 새로운 음주생활이 열리리니.

 

 

1 주전자에 말린 쑥 20g, 물 1L를 붓고 팔팔 끓입니다. 한소끔 끓어오르면 중간불로 낮춰 물이 처음 양의 80%가 될 때까지 졸입니다. 체에 부어 건지를 걸러냅니다.

 

 

2 멥쌀 1kg은 씻어서 불려 곱게 가루 낸 다음 쑥 우린 물을 뜨거울 때 붓고 익반죽합니다. 멍울 없이 고루 섞이면 실온에 두고 차갑게 식힙니다.

 

 

3 누룩 500g을 잘게 부숴 넣고 주걱으로 가볍게 섞어줍니다. 용기에 담고 안팎을 깨끗이 닦아 입구를 막아줍니다. 실온에서 이틀 간 발효시켜 밑술을 완성합니다.

 

 

4 찹쌀 4kg은 씻어서 불린 다음 말린 쑥 10g을 버무려 고두밥을 찝니다. 고두밥은 뜨거울 때 큰 그릇에 담아 주걱으로 아래위를 뒤집어가며 차갑게 식혀줍니다.

 

 

5 발효 마친 밑술을 그대로 부어줄게요. 밥알이 알알이 떨어지도록 손으로 살살 주무르듯이 섞어줍니다. 물기가 자작자작해지면 완성!

 

 

6 용기에 앉혀 뚜껑을 덮고 25℃ 실내에서 20일간 발효합니다. 체에 걸러줍니다. 막걸리 그대로 마셔도 좋고, 냉장고에 넣어두고 앙금을 가라앉혀 위에 뜨는 맑은술만 따라 마셔도 좋습니다.

 

 

 

 

 

 

 

 

 

글 : 김미선기자 (<쿠켄> 매거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