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칼럼
술술 Talk
이해림의 한국술 테이스팅 #1 – 감사 블루
2018-08-31

 

뚜껑을 열어 보면 잔을 안다. 그 술의 향이나 맛, 그리고 색과 물성에 어울리는 잔이 분명 있다.

낯선 술, ‘감사 블루’를 따 보자마자 맞출 잔이 결정됐다. 잔은 투명하고 작은 것으로, 그리고 향을 오므리는 모양을 갖춘 것으로.

 

감사 블루는 빨간 막걸리 ‘술취한 원숭이’와 증류소주 ‘미르’로 이름난 경기도 용인의 양조장 ‘술샘’이 만든 청주(살균 약주)다.

경기미를 사용해 감미료나 향료를 사용하지 않고 양조장에서 직접 키운 누룩을 사용해 술을 빚었다. 허툰 일을 하지 않았으니 믿고 마실 만하다.

감미료를 사용하면 분명 들큰하고 느끼한 뒷맛이 남는다. 많은 한국술들이 보이는 문제다.

 

냉장고에서 꺼낸 온도 그대로 마셔본 감사 블루의 첫인상은 깍쟁이처럼 깨끗하게 달다는 것. 맛이 달기 보다는 향이 단 술이다. 드라이한 술에서 달콤한 향이 나는 일은 많으니까.

마치 개성 주악 같이 은은한 결을 가진 단 향이 기분 좋다. 누룩향은 우유 크림처럼 고소한 향으로 느껴지고, 배즙의 진한 향으로도 연결된다.

마치 바닐라 푸딩처럼 크리미하면서도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것도 좋다.

이 온도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음식 매칭은 오징어 숙회. 바다 속 우물에서 길어낸 것 같은 그 말끔한 단맛에 미나리 같은 청신한 향채 정도 곁들이면 딱 좋겠다. 잔에 얼음을 넣어 보니 술맛이 또 한 번 변신한다.

지배적이던 달달한 향이 뒤로 물러나며 여름 과일 같은 상쾌한 산미가 슬그머니 살아난다. 큰 조개를 사용한 회나 초밥이 떠오르는 술이 된다. 어느 온도에서나 둥글둥글하게 감칠맛이 잘 달라붙는다.
얼음이 녹으며 술이 희석되기 시작하면 머리 속에 다른 주안상이 또 펼쳐진다.

 

도미나 민어보다는 우럭이나 광어. 쫀쫀하게 씹히는 맛에 단맛과 감칠맛이 솟아나는 활어회가 어울린다.

와사비, 간장은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 이 술엔 한국식 회다. 술에서 견과류 향취도 은근 묻어나는데, 회용 쌈장에 잣을 조금 빻아 넣은 것과 곁들여 먹으면 끝없이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홀짝이다 보면 금세 취기가 오른다. 시원한 김에 꿀꺽꿀꺽 마셨지만 알고 보면 10.8퍼센트 도수를 가진 꽤 센 술이다. 술기운이 돌면 으레 뜨끈한 안주가 떠오르는 법이다. 답은 정해져 있고, 나는 그것을 떠올렸을 뿐이다. 새하얀 아귀 수육. 이 술엔 그것이 정답이다.

 

당일 직송한 아귀를 깨끗이 손질해 소금간만으로 정결하게 삶은 맛이어야 한다. 마늘이나 생강, 아니면 폰즈 소스 같은 것이 낄 자리는 없다. 아귀의 맑고 은근한 맛에 감사 블루 한 잔이면 맛의 조화가 완성된다. 새하얀 도화지에 옅은 감칠맛과 단맛을 그려 놓은 아귀 수육 바탕에 감사 블루가 산미와 단 향, 기분 좋은 감칠맛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마늘이나 생강 같은 것으로 점 하나만 잘못 찍어도 망가지는 그림이다.

 

 

다음 번 종로의 포항식당에 갈 때 이 술을 한 병 들고 가야겠다. 하얗게 삶아낸 아구애 한 입에 진한 향 실온 한 잔을, 새하얀 속살 한 입에 얼음을 넣어 새콤한 한 잔을, 말캉거리는 껍질을 씹을 땐 얼음이 적당히 녹아있겠지.

 

잘 만든 술을 간만에 마주하니, 좀더 욕심이 난다. 이미 충분히 좋은 술이지만, 좋은 것이 더 좋아지면 명품이 된다. 감사 블루는 명품 술로 마지막 2%를 가다듬기에 아주 좋은 재목인 것 같다.

 

한국술을 이제는 좀 맛으로 이야기해보고자, 오로지 술의 맛을 이야기하고 어울리는 안주를 망상한다. 알 수 없는 효능이나 지루하게 반복되는 역사 이야기는 배제한다. 한국 음식 문화의 하나로서 현재의 한국술이 가진 본질적이고도 참된 가치에 집중해 보고자 한다.

 

 

 

 

 

 

 

 

 

이해림(푸드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