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칼럼
술술 Talk
이해림의 한국술 테이스팅 #2 – 소호 36.5
2018-10-02

 

투명한 병에 희게 새겨진 영문 표기 soho는 마치 tokki soju나 yobo soju 같이 뉴욕에서 만든 힙스터 소주처럼 보이는 착시를 일으켰다.

하지만 이 soho는 맨해튼의 그 소호가 아니라, 소호. 웃을 소 关 에 범 호’ 虎’자를 쓴 한국어를 영문으로 표기한 것이다.

원로 서양화가 이계송 씨가 다양한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가족들과 함께 운영하는 평택의 밝은 세상 양조장이 만든 소주다.

 

양조장에서는 소호라는 네이밍에 대해 민화 속에서 곰방대를 물고 있는 등, 한민족에게 친근했던 호랑이의 이미지를 웃는 호랑이로 풀어냈다고 설명한다.

떡 하나 달라고 실실 웃지만 “안 잡아 먹지” 하고 협박하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는 것이 구전 속 호랑이인데, 이 술 소호도 떡 하나를 줘야 안 잡아 먹을 듯한 의뭉스러운 맹수 같은 면모를 가진 증류주다.

 

 

소호는 36.5도와 56도 두 종류로 나오는데 내가 시음한 것은 36.5도. “냉장하여 차게 드시기보다 상온의 온도로 드실 때 소호의 깊은 맛과 향을 더욱 더 느끼실 수 있습니다.

“ 병목에 걸린 문구를 읽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리델의 베리타스 스피릿 잔을 꺼냈다.

스피릿 전용 잔으로 고안된 만큼 향을 코에 잘 퍼트려 주는 잔이다. 우아하게 쭉 뻗은 얇은 스탬 위로 투명한 소호를 채우니 소주 향이 훅 끼친다.

 

잠시 개인적인 얘기를 하자면, 나는 원래 이유 모를 알레르기 때문에 희석식 소주를 입에도 못 대는데 증류식 소주 중엔 ‘되는’ 것들이 일부 있다.

처음 나왔던 당시의 일품진로나, 화요41 정도는 다른 술만큼 즐기지는 못해도 탈 없이 잘 마시는 편이다. 소호36.5도 일단은 ‘되는’ 소주 부류에 속했다.

 

 

쌀의 맛과 향이 강하다.

병 뒷면을 보니 평택의 발아현미와 백미, 누룩, 정제수와 대나무 잎이 성분의 전부다. 양조장에서 고안했다는 상압식 증류기로 술을 받아 달항아리에 1년 숙성한다고 한다.

맛을 느끼려 홀짝대다 보니 ‘이것은 마치 밥으로 만든 술’이라는 아무 말이 툭 나왔는데, 술 맛에 떠올린 음식들도 하나 같이 밥에 어울리는 것들이다.

 

이를 테면 홍대 미로식당의 차돌양지탕. 향긋한 소기름이 짙게 녹아 있는 녹진함과 두터운 감칠맛, 사납지 않게 얼큰한 그 뜨끈한 국물 말이다.

한 술 떠서 들이켤 때마다 통들깨가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그 고소함은 또 어떻고. 어죽, 어탕국수도 좋은 선택이 될 터다.

기름진 단백질이 달달하고 걸쭉하게 녹아든 얼큰함이 간절하다.

 

아무튼 36.5도 정도면 고도주이긴 하니.

 

 

한 잔 두 잔, 소호36.5를 계속 마시다 보면 결국 지배적인 것은 쌀보다는 대나무잎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찌르르하게 맵싸한 향이다.

그 향에 파블로프의 개처럼 퍼뜩 떠오르는 것은 고수를 듬뿍 얹은 사천식 냉채인데 소호가 백주의 어떤 향을 연상시킨 모양이다. 스피릿 잔에 계속 마시기엔 과하게 앙칼지다.

 

러시아 보드카 잔에 옮겨 마셔 보니 코를 맵게 찌르지 않고 입안에서 비강으로 향이 퍼져 한결 낫다.

이 양조장에서 만드는 막걸리로 ‘호랑이 배꼽’이 있는데, 막걸리가 보여준 백지 같은 말끔함과는 정 반대인 이토록 강렬한 맛과 향을 가진 소주가 한 증류소에서 나온다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점이다.

 

 

 

 

 

 

 

 

이해림(푸드 칼럼니스트)

 

한국술을 이제는 좀 맛으로 이야기해보고자, 오로지 술의 맛을 이야기하고 어울리는 안주를 망상한다.

알 수 없는 효능이나 지루하게 반복되는 역사 이야기는 배제한다.

한국 음식 문화의 하나로서 현재의 한국술이 가진 본질적이고도 참된 가치에 집중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