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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갤러리 칼럼>24시간 주막은 뭐라고 불렀을까?
2018-10-23

신윤복의 주사거배. 화려한 주막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대적으로 봤을 때 금주령이 있었고, 관리들의 표정을 볼때 불안해 하는 것을 보면, 몰래 술을 마시는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주막에도 4성급, 5성급이 있었다? 

 

한국의 지역 술을 만나러 지방을 방문할 때마다 아쉬운 것 중 하나를 꼽자면 숙박시설이다. 전국 어딜 가나 비슷한 스타일의 모텔 아니면 프랜차이즈 호텔이 있다. 이들은 그 지역의 문화를 담은 숙박시설이 아닌 도심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형태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통 숙박시설인 주막은 어땠을까? 

 

먼저 주막은 현대의 숙박시설과는 달리 국밥을 중심으로 육포, 어포, 수육, 너비아니, 술국을 주로 팔았다고 한다. 다양한 음식을 팔지만 절대로 나오지 않는 음식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낙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유생들이 낙지를 먹고 과거에 낙방할까 봐 내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주막도 지금처럼 획일화된 모습이었을까? 실은 그렇지 않다. 주막은 각각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신윤복의 주사거배. 화려한 주막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대적으로 봤을 때 금주령이 있었고, 관리들의 표정을 볼때 불안해 하는 것을 보면, 몰래 술을 마시는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관영에서 운영하는 <역(驛)>은 당시 최고급 주막이었다. 주로 국경지대에 위치했던 것으로 공무를 띈 관리 및 사신들이 머물렀던 공간이다. 주모는 물론 *다모도 같이 있었으며 임진왜란 때 선조가 최후로 피난 간 명나라 국경지대 의주에 위치한 역은 200명 이상이 근무했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5성급인데 이러한 역과 비슷한 역할을 한 것이 <원(院)>이다. 하지만 원은 토지만 국가 소유이고 나머지는 지방 유지의 시설이었거나 출자한 형태였다. 현재는 이름만이 남아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조치원>과 <사리원>, <이태원>, <장호원>, <홍제원> 등이 대표적이며 호텔로 비유하자면 4성급에 속한다.

 

한편, <객줏집>이란 주막은 위탁판매나 환전도 해줬다고 한다. <목로주점>이란 주막도 있었는데 여기서 ‘목로’는 기다란 술판을 의미한다. 이 기다란 술판에 술을 줬으며 늘 서서 마시다 보니 일제강점기 시설에는 ‘선술집’이란 이름이 생긴다. 덕분에 앉은 술집도 생겼다는 일화도 있다. 이것과 같은 이치가 서양의 바(Bar)다. 바(Bar)는 막대기란 의미로 술판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서양의 바가 결국 우리말로는 <목로주점>이 된다.

 

몰락한 양반이 하는 주막도 있었다. <내외주가>, <내외술집>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곳은 나름의 격을 차려 막걸리를 시킬 때에도 격 있게 불러야 했다고 한다. 주모가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팔뚝만 내놓고 술을 따라줬기에 <팔뚝집>이라는 별명도 붙여졌다.

 

 

김홍도의 주막. 주모가 막걸리를 푸고 있고, 손님은 국밥을 먹고 있는 등 서민적인 주막을 엿볼 수 있다

 

24시간 주막집은?

한편, <날밤집>이라고 하는 24시간 주막도 있었다. 지금의 편의점과 같은 역할을 했는데 굳이 ‘편의’와 같은 한자로 쓰는 것이 아닌 날밤집이라는 해학이 있는 우리말도 존재한다. 이외에도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대폿집>은 큰 잔을 의미하며 일제 강점기 시절에만 해도 막걸리 집에 해당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주막은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 이러한 문화가 살려진 곳은 거의 전무하다. 좋은 것은 잘 살리고 아쉬운 것은 보완해서 우리나라 전통 숙박 형태인 주막 문화가 복원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이런 문화를 잃어버리는데 100년이란 시간이 든 만큼 복원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적 문제는 흐르면 해결되고 결국은 의지의 문제다. 천천히 그 가치를 생각하며 복원해 나간다면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적 가치를 다시 찾아 낼 것이라 기대해 본다.

 

*다모: 조선시대 일반 관사에서 차와 술을 전문으로 지원하던 인력.
*해당 칼럼은 전통주 갤러리에서 성신여대 학보사에 투고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