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칼럼
술술 Talk
[이해림의 한국술 테이스팅 #5] 제주 고소리술
2018-12-30

병부터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요요한 청록빛을 띈 자기 병은 한국적이기 그지 없다. 도토리에 주둥이를 달아 놓은 듯 깜찍스럽게 잡은 모양새는 조야한 구석 없이 사뭇 모던해 보이기까지 한다. 집 안 어디에 둬도 만족스러워 이리 저리 옮겨 놓길 며칠 했다.

 

‘제주술익는집’의 제주 고소리술은 지역의 가양주로부터 유래했다. 고려시대 몽골군이 제주에 주둔한 동안 전파된 증류제법이 제주에 그대로 토착화되어 지금까지 이어 내려 왔다.

 

토착화된 제주의 증류주에 주로 쓰이던 알곡은 육지와 다르게 좁쌀, 대소맥, 기장, 피수수 등. 육지와 달리 땅이 물을 보존하지 못해 밭농사를 주로 짓다 보니 벼 농사에 맞지 않았다. 그리하여 기록을 보자면 1520년 충암 김정의 <제주풍토록>에서는 ‘벼가 매우 적어 지방 토호들은 술을 육지에서 사다 먹고 힘이 없는 자는 밭곡식으로 소주를 쓴다’고 적었다.

 

뭘 굳이 육지에서 쌀로 만든 소주를 사다 먹었는지, 고소리술을 맛보며 갸우뚱했다. 만족스럽게 마실 만한 술이다. 첫 맛은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나무껍질과 토지의 향이 확 풍겨 나온다. 마치 야생버섯 같은 향취다.

그러나 동시의 야생버섯의 그것처럼 순박해지며 부드럽게 혀를 감싸고 콧김까지 향그럽게 만드는 뒷맛으로 이어진다. 아니나 다를까 개성소주, 안동소주와 함께 한국 3대 명주로 꼽힌다는 것이 양조장 측의 주장이다.

 

곡식은 좁쌀만 사용한다. 제주 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여행자의 눈에 자꾸 들어오는 오메기떡과 같은 재료다. 떡을 술로 빚는 것이다. 좁쌀로 고두밥을 지어 양조장에서 지은 누룩을 뒤섞은 후 항아리에 발효시키는 것이 첫 순서다.

술이 발효를 마치면 오메기술이 되는데, 이 원주를 제주도 특유의 증류기로 증류해 투명한 술을 받는다. 이 증류기의 이름이 고소리라서 술 이름도 고소리술이다. 증류를 마친 술은 다시 항아리에 담고, 2년 이상 서늘하게 숙성시켜 부드럽게 맛을 가다듬는다.

 

이렇게 존재감 강한 증류주는 잔을 가릴 것도 없지만, 실제 알코올 도수 40도보다 강하게 느껴지는 술기운을 자제하기 위해 중국의 바이주용 작은 잔을 썼다.

한파의 한 가운데서 떠오르는 안줏거리는 뜨끈한 온도를 공통점으로 가졌다. 약재를 사용한 삼계탕 한 그릇, 뚝배기에 담아 내면 잘 맞을 한 쌍이다. 서로 향을 보완하며 백지장 같은 닭고기의 차진 기름기를 순화해줄 것이다.

 

제주 고유의 술인 만큼, 제주의 것끼리 짝을 맞춰 갓 삶아 나온 돔베고기나 아강발탕, 순대와 내장 등을 곁들여도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릴 것이다.

고사리를 듬뿍 넣은 그 유명한 육개장과도 자연의 향취를 맞추는 데에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아무래도 1월엔 제주로 여행을 가야겠다. 한 바퀴 일주하며 제주 고소리술이 몇 병이 사라지나 어디 보자.

 

제주술익는집은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11호를 보유한 데에 더해 올해는 농림축산식품부의 전통식품명인에도 선정됐다. 4대째 아들 강한샘씨가 3대째 김희숙 대표의 전통을 계승, 동시대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이만하면 지켜줘서 고마운 전통이다.

 

 

 

 

 

 

 

 

이해림(푸드 칼럼니스트)

 

> 한국술을 이제는 좀 맛으로 이야기해보고자, 오로지 술의 맛을 이야기하고 어울리는 안주를 망상한다. 알 수 없는 효능이나 지루하게 반복되는 역사 이야기는 배제한다. 한국 음식 문화의 하나로서 현재의 한국술이 가진 본질적이고도 참된 가치에 집중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