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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갤러리 칼럼] 일본 소주의 기원은 조선?
2019-03-25

일본은 사케의 나라? 의외로 소주의 나라

일본의 술 하면 일반적으로 어떤 술이 떠오를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일본식 청주, <사케(日本酒)>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사케는 그들의 전통주이며, 오랫동안 문화를 간직해 왔고, 무엇보다 늘 우리 막걸리와 많은 비교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일본에서는 이 사케보다 다른 술을 더 많이 마신다. 바로 일본식 소주다. 사케의 시장 점유율은 총 시장의 7%. 소주는 11%다. 다만 일본의 소주는 한국의 소주 시장과는 좀 다르다. 한국이 초록색 병의 희석식 소주가 전체 소주 시장의 99% 가까운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면, 일본은 고구마, 보리 등이 증류식 소주가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한국은 취하기 위해 소주를 마신다면, 일본은 보다 원료의 풍미도 즐기기 위해 소주를 선택하는 것이다.

 

조선 통신사의 모습. 대마도와 이키섬을 모두 거쳐갔다. 인솔자는 모두 대마도인. 대마도인 만 총 500여 명이 참여했다

 

이러한 일본의 소주 문화에 조선이 관여했다는 사실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임진왜란 이전에 대마도주에게 지속적으로 소주를 하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5세기의 조선은 왜구의 잦은 침입으로 대마도를 정벌도 하면서, 부산포, 내이포(창원), 염포(울산) 등의 삼포를 왜인들의 왕래와 거주를 허가하는 등 회유책과 강경책을 동시에 썼던 시대다. 이 시대에 대마도주는 조선 정부로부터 <대마도 절제사(종 3품)> 및 <첨지중추부사> 등의 벼슬을 받고 구한말까지 조일 간의 교역 및 외교 관련 일을 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대마도 인물로는 구한말, 덕혜옹주의 남편 소 다케유키(宗武志)로, 바로 이 대마도주 가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대마도주에게 소주를 줬지만, 대마도에서는 소주가 발달하지 못한다.

대마도에서 소주가 발달하지 못한 이유는 간단하다. 농사를 지을 만한 땅이 거의 없다. 지극히 척박한 땅에 험준한 산맥으로 이어져있다. 쌀, 보리 등은 거의 재배를 안 하며, 지금도 대마도의 술 양조장은 사케용 쌀을 일본 본토에서 받고 있는 상황이다. 산맥으로 이어지니 숨기 좋았고, 먹을 것이 없으면 약탈로 돌변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왜구 세력이 있기에 좋아 보이는 자연환경이었다. 결국 소주는 대마도에 정착을 하지 못하고, 그 50km 떨어진 이키섬에 정착을 한다. 이곳은 평야가 있는 풍요로운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보리소주가 발달했다. 결국 조선에서 보내준 소주는 대마도가 아닌 이키섬이란 곳에서 꽃을 피우게 된다.

 

 

참고로 일본의 보리소주의 기원이 조선이라는 이야기는 우리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 국세청에서도 이키섬의 보리소주는 한반도 유래설을 가장 유력한 주장으로 기재해 놓고 있으며, 일본 공식 사케 소믈리에 홈페이지에서도 이 부분을 언급하고 있다.

 

일본은 이 부분은 더욱 보존하기 위해 이키섬의 보리소주가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 만든 샴페인, 코냑 지방에서 만든 코냑과 같이 WTO에서 지정한 <지리적 표시>를 받았다는 것이다. 즉, 이키섬의 보리를 써서 만든 소주만 <이키 소주>라는 칭호를 쓸 수 있다. 아쉽게도 우리의 술은 WTO에서 인정한 지리적 표시제를 받은 술이 하나도 없다. 지극히 아쉬운 부분이다.

 

 

흥미롭게도 이키섬에서는 일본발음 칭그(ちんぐ)라는 브랜드의 보리소주를 만들고 있다. 바로 이 지역의 사투리로 친구라는 뜻. 한국 발음과 거의 유사한 발음을 가지고 있다 결국 문화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흔히들 문화는 물 흐르듯 움직인다고 이야기한다. 내 것, 네 것을 따지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하지만 문화상품은 다르다. 해당 문화는 어떻게 즐기고, 어떻게 가꿔가냐라는 것은 인간의 의지가 정한다. 600여년 전, 일본에 전파한 소주, 그리고 지역의 농산물로 고부가가치 문화로 만든 일본 소주. 고부가가치로는 전혀 발전시키지 못한 우리의 소주 문화. 결국 청출어람(靑出於藍)이 되어버린 상황. 지금이라도 우리 문화를 발전시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