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Talk
[이해림의 한국술 테이스팅 #6] 울진 미소 생 막걸리
2019-01-25

미소 생 막걸리는 울진에서 만든다. 새로운 술을 마실 때마다 전 세계 어디든 지도 앱에서 양조장 주변의 풍광을 찾아보는 취미가 있는데, 구글 덕분에 스코틀랜드의 아일레이섬 숲길도, 루아르의 숲과 들도, 필라델피아주 주택가의 잠잠한 한 낮도 생생하게 펼쳐지니 은근한 재미가 있다.

 

태백산맥 남쪽 끝에 걸려 동해 바다에 면한 왕피천 삼각주 지역에 자리한 ‘울진술도가’는 좁은 길 양 옆으로 키 작은 건물이 헐겁게 들어선 데서 길 안 쪽으로 쑥 들어간 곳에 있다. 지방 어딜 가나 소도시와 읍내 마을들이 다 공유하는 평범하고 심심한 정취다. 우화 속 삽화 같은 유럽의 양조장들보다는 훨씬 생활에 밀착된 모습이랄까.

 

 

 

1920년대 양조장 1대가 시작되었고, 이제 3대째가 가업에 가담해 있다. 100여 년 전 왕피천 바닥에서 길어낸 암반수를 사용해 술을 짓던대로, 여전히 한 고장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울진군의 14개 양조장을 통합한 ‘북부합동양조장을 거쳐 2014년에 울진술도가로 명명을 바꿨다. 2016년에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전통 막걸리 구현’을 내세우며 현대화한 2공장을 지었다. 하루 최대 10톤의 술을 만들 수 있는 대규모 시설이다.

 

술을 마실 때 뒷 라벨을 읽는 취미도 있다. 특히 막걸리를 마실 때 그렇다. 미소 생 막걸리는 국내산 팽화미(튀긴 쌀)가 19.09%에, 입국도 국내산 쌀을 사용했다. 일단 박수. 나는 국내산 쌀을 사용한 막걸리를 편파적으로 지지한다. 국내산 쌀을 밥으로 덜 먹는 데 대한 합리적이지 못하고, 이유도 사실 없는 모종의 죄책감을 막걸리로 갚는 의미다.

 

그리고 익숙한 그 단어, 아스파탐! 음식에 흔히 사용되는 합성감미료에 대한 무의미한 논란에 끼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굳이 왜?’라는 개인적인 물음표를 갖고 있을 뿐이다. 천연이 되었건 합성이 되었건 사람이 먹을 수 있고 이로운 것이라면 무엇이든, 필요에 따라 적재적소에 잘 쓰면 될 일이다. 아세설팜칼륨, 구연산도 사용됐다.

 

왜 필요했을까? 더욱더 맛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우선은 습관적으로 광주요의 오목한 밥그릇에다 출렁출렁 잘 흔들어 섞은 막걸리를 따라 마셔봤다. 밥그릇의 둔탁한 촉감 뒤로 꽉 찬 질감의 막걸리가 입 안으로 흘러 들어온다. 얇고 주둥이가 좁은 유리잔으로 같은 액체를 옮겨 담았다. 발효된 구수한 향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유지방 함량이 높은 미국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와 질감이 비슷한 것이 재미있다. 입 안에 무겁게 내려앉았는다. 성글게 간 쌀가루로 만들어 뿌린 눈 같은 질감이다. 그러고는 싸래기눈처럼 확 퍼져 사라진다. 재미있는 피니시. 구수한 쌀 맛이 지배적이지만, 산미가 적당히 있어 맛도 딱 끊어준다.

 

아스파탐과 아세설팜칼륨의 작용이겠으나, 슬쩍 단맛도 감돌기는 한다. 대놓고 달아서 디저트 같이 느껴지는 대개의 막걸리들에 비하면 분명 매우 드라이한 축이다. 감미료의 역할은 매우 소극적이다. 자, 그렇다면 이런 미묘한 레벨의 단맛을 굳이 추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도 실력도 있는 양조장이니, 이것이 최적의 밸런스였다는 판단이 분명 있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그저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 모두를 넣고도 이 정도 말끔한 막걸리를 만들 수 있는 양조장이라면, 되레 오직 쌀과, 공기 중을 떠다니는 효모와, 지역의 물로만 만든 재래식 막걸리도 한 번 청해 맛을 보고 싶다. 오로지 그렇게 만든 것이 얼마나 맛이 없었기에 재료비가 추가로 드는 레시피를 짰는지 호기심이 생겨서다.

 

개인적인 호기심이나 의문은 차치하고, 꽤나 마시기 좋은 막걸리였다. 밥과 같은 재료로 만든 음료이니 밥 반찬이라면 뭘 놓고 먹어도 잘 어우러진다. 시장에서 육전 한 판을 사와 가자미 식해와 먹으니 한 끼니 기분 좋게 넘어간다. 쌀밥 대신 막걸리를 마시자면 김치 한 쪽 올려놔도 어울리는 법이다. 꿀꺽꿀꺽, 한 끼 분량의 쌀을 뚝딱 소비했다.

 

 

 

다음날, 구불구불 남산 길을 오르는데, 밤이 유난히 밝았다. 새하얀 달이 하늘 하나를 다 쓰고 있었다. 수퍼문이라나. 평소보다 더 크고, 더 밝고, 더 선명한 달을 바라보며 어두컴컴한 밤에 입맛을 다셨다. 처음에 밥그릇에 부어 마셨던 새하얀 막걸리 한 잔이 다시 당기는 쩌렁쩌렁한 달이었다. 집에 가서 또 막걸리 한 끼 해야지, 하며 걸음을 서둘렀다.

 

 

 

 

 

 

이해림(푸드 칼럼니스트)

 

> 한국술을 이제는 좀 맛으로 이야기해보고자, 오로지 술의 맛을 이야기하고 어울리는 안주를 망상한다. 알 수 없는 효능이나 지루하게 반복되는 역사 이야기는 배제한다. 한국 음식 문화의 하나로서 현재의 한국술이 가진 본질적이고도 참된 가치에 집중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