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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사] 한국 와인 날개를 달다
2019-08-07
 
한국 와인 날개를 달다
 
 
최근 고급 호텔에 비치된 한국 와인
와인 전문가도 주목하는 우리 술
20대도 온라인 쇼핑몰 통해 구매
양조기술 연구해 서양 와인 견줘 뒤지지 않아
한국 와인 생산 농가 전국 150여개로 추정
정상 회담 등 굵직한 행사에 초대돼
 
 
 
충북 영동군 매곡면에 있는 한국 와인 농장 ‘도란원’. 캠벨 얼리, 산머루 등 다양한 포도로 와인 ‘샤토 미소’를 만들고 있다. 박미향 기자
 
 
지난 5일, 제이더블유(JW) 메리어트 서울 뷔페 ‘플레이버즈’에 독특한 술 10종이 등장했다. ‘샤토 미소 로제’, ‘그랑티그르 엠(M)1998 레드’, ‘여포의 꿈 화이트’, ‘그랑꼬또 청수’ 등 이름만 들어서는 도무지 무슨 술인지 알기 어렵다. ‘샤토’, ‘로제’, ‘화이트’, ‘레드’가 힌트다. 정답은 와인. 주로 와인명에 붙이는 단어다. 하지만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등에서 생산하는 와인은 아니다. 충북 영동, 경기도 안산, 경북 영천, 강원도 등 우리 땅에서 키운 포도로 만든 와인이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더 플라자 지하 1층에 최근 문 연 바 ‘르 캬바레 시떼’에서도 한국 와인 13종을 맛볼 수 있다.
 
도대체 왜일까? 고급 호텔이 왜 지금 한국 와인 비치에 몰두하는 걸까? 수백만원대 고급 수입 와인을 모셔오기 바빴던 곳이 국내 특급 호텔이었다. 제이더블유(JW) 메리어트 서울 정하봉 소믈리에는 “2009년부터 지역 술 품평회를 다녔다. 한국 와인의 가능성을 봤는데, 최근 질이 엄청 좋아졌다”며 “호텔 고객들에게 충분히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한다.
 
이미 지난해 한국 와인 4만8000병을 판 곳도 있다. 경기도 관광 명소인 광명동굴이다. 2015년부터 한국 와인을 소개한 광명동굴은 올해 6월 기준 누적 판매량만 16만5000병에 달한다고 한다. 광명동굴 와인연구소 최정욱 소장은 “여행객 대부분 한국 와인의 존재를 처음 알고 신기해하면서 구매한다”고 말한다.
 
그동안 읽기도 어려운 외국 와인을 마시면서 식도락을 논했던 와인 애호가들도 관심 가지기 시작했다. 김상미 와인 평론가는 “예전보다 질이 좋아졌다”며 “계속 즐기고 알아가고 싶다”고 한다. 올해 상반기 ‘카카오톡 선물하기’ 전통주 판매 상위 6중 4개가 한국 와인이다. 한국 와인은 주세법상 전통주 범주에 든다. 2017년 7월 중순부터 전통주 온라인 판매가 허용됐다. 카카오 관계자는 “구매한 연령층도 다채로운데 그중 20대가 50% 넘는다”며 “혼술 문화가 퍼지면서 저도주에 가격도 4~5만원을 넘지 않는 한국 와인이 인기”라고 전했다. 중장년층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설탕 가득 담아 만든 포도주를 떠올리면서 추억에 잠긴다.
 
 

충북 영동군 매곡면에 있는 한국 와인 농장 ‘도란원’. 캠벨 얼리, 산머루 등 다양한 포도로 와인 ‘샤토 미소’를 만들고 있다. 박미향 기자
 
 
하지만 지금 한국 와인은 그 옛날 어머니표 포도주와는 다르다. 서양 양조장과 같은 제조 과정을 거친다. 카베르네 소비뇽, 멜롯 등 서양 양조용 포도 품종은 아니다. 캠벨 얼리, 산머루, 청수, 청향 등이 재료다. 어린 시절 여름날 대청마루에서 껍질을 까 알맹이만 쏙 빼먹고 씨는 마당에 훅 뱉어 버리던 그 포도다. 양조용 포도가 아니라 식용 포도인 것이다. 생과로 와인을 양조하는 기술은 간단치 않다. 양조용 포도는 당도가 22브릭스 이상이다. 식용 포도는 대략 12브릭스 정도. 전국 150여개로 추정되는 와인 생산 농가들이 지금도 연구 중이다.
 
지난달 25일 찾은 충북 영동군 양강면에 있는 ‘여포 와인 농장’. 개 오복이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딸 이방카 사진이 박힌 세움 간판 앞을 왔다 갔다 놀고 있었다. 사막 한가운데 선 듯한 생경한 분위기를 깬 이는 여인성(51) 대표였다. “지난해 이방카 환영 상춘재 만찬에 우리 와인이 사용돼 ‘이방카 와인 농장’이라는 별명 얻었지요.” 그는 와인계의 문익점으로 불린다. 외국 품종 포함해 40여종을 수년간 9917㎡(3000평) 밭에 심어 실험했다. 포도 품종 산머루를 심어 캠벨 얼리와 섞기도 하고. 머스캣과 알렉산드리아도 심어 와인을 만들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밭엔 일명 ‘고대 포도나무’로 불리는 ‘머스캣 오브 알렉산드리아’가 적당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본래 철도공무원이었던 그는 몇 년 전 정년을 앞당겨 퇴직했다. “부모님 농사를 이으려고 했는데, 포도 농사 수익은 계속 떨어졌다. 가격 결정권을 내가 가질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 포도 가공에 나섰다. 그게 와인이었다”고 말한다.
 
 
충북 영동군 매곡면에 있는 한국 와인 농장 ‘도란원’. 캠벨 얼리, 산머루 등 다양한 포도로 와인 ‘샤토 미소’를 만들고 있다. 박미향 기자
 
 
실제 한국 와인 생산자가 늘어난 데는 한칠레자유무역협정(2004년)이나 한미자유무역협정(2012년) 등의 영향이 있었다고 한다. 국립농업과학원 정석태 연구관은 “수입 포도가 쏟아지면서 생과 판매가 감소하고 가격이 폭락하자 포도 가공 연구가 시작됐다”며 “2006년부터 시작된 연구 결과로 청수 같은 품종도 개발됐다”고 한다. 이어 “국산 와인 품평회도 자주 열어 소믈리에들을 초대했다”고 말한다. 정하봉, 최정욱, 노태정, 김협, 최정원 등 지금은 한국 와인 전도사가 된 소믈리에 모두 품평회 단골 초대 손님이었다.
 
한국 와인의 맛은 가벼운 바디감(물 머금었을 때 느낌)과 달콤한 맛, 진한 과일 향이 특징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뜨거운 태양 아래 산골 깊숙한 곳에 ‘포도밭 사내와 아낙’이 주렁주렁 달린 포도송이를 손질하면서 드라이하고 묵직한 한 잔의 ‘신의 물방울’을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 ESC가 그들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로마네콩티(프랑스산 최고급 와인)와 승부를 겨뤄도 되는지 맛 평가도 해봤다.
 
2019-08-07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출처 한겨레es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