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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샘 미르 시음기 : 나를 감싸안는 부드러움
2019-09-10

 

 “다시는 과음하지 말아야지…”
 ‘술꾼의 삶’을 살다보면 음주한 다음날 아침에 종종 자괴감을 느끼곤 한다.

술을 좋아하는 모든 이들에게 숙취는 숙명이자 참고 견뎌야 하는 고행이지만

그 순간 만큼은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온갖 생각들이 스쳐지나가기 마련이다.

물론 부질은 없다. 그래도 이때 후회하고 성찰하며 다짐한 것들만 지키며 살았더라면 내 인생은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고백하면 미르를 시음하기 전날 나는 중국집에서 고량주를 들이 붓는 매우 ‘빡센 회식’을 가졌다.

다음날 오전 내내 몸에선 싸구려 향수와 알콜을 섞어 뿌린 듯한 농향형 백주 냄새가 진동했고 역시나 숙취의 고통이 찾아왔다.

후회-성찰-다짐. 예정된 수순을 밟고 나니 몸도 마음도 한결 나아졌지만, 미르를 맛있게 즐길 자신은 없었다.

혹여나 미르의 진가를 놓칠까봐 걱정이 됐다.

 

 

 

기우였다.

25도 짜리 빨간 미르의 병 뚜껑을 열고 싱글몰트 잔에 붓는 순간 기분 좋은 누룩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약간의 솔향과 과일향이 옆에서 받쳐주는데 전체적으로 아로마의 조화로움이 기대 이상이었다.

진정한 마법은 미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 이후 시작됐다.

 

고급 캐시미어처럼 부드러운 질감을 가진 미르를 꿀꺽 삼키자 평소 자극적인 술과 음식에 지쳐있던 내 간을 감싸안아주는 기분이 들었다.

“괜찮아, 오늘 많이 힘들었지?” 그렇게 빨간 미르에게 위로를 받고 40도짜리 블랙 미르를 만났다.

 

 

 

블랙 미르는 보통의 고도수 증류주에서 오는 알콜 부즈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 과연 ‘좋은 술’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25도 미르보다 향은 조금 더 강해졌지만 뒷맛은 오히려 깔끔하게 떨어지는 밸런스가 인상적이었다.

풍부한 향과 부드러움, 그리고 드라이한 마무리. 술을 좋아한다면 블랙 미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바로 54도로 넘어가기가 아쉬워 한 잔을 더 부었다.

이 맛있는 술을 혼자 마시는 게 아쉬웠다.

하지만 나는 아직 지인들에게 오글거리는 카톡이나 전화를 날릴 정도로 취하진 않았다.

“그래, 나는 시음을 하고 있다.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거 왜이렇게 맛있는 거지…”

 

 

 

 

약간의 흥분 상태에서 베이지색 라벨의 54도를 땄다. 이전 버전과는 확연히 다른 캐릭터였다.

중간에 달큰한 맛이 치고 올라올때 술을 넘기면 잔잔한 불꽃으로 변해 속을 데워준다.

무엇 하나 자극적이거나 인위적인 부분이 없었다.

덩달아 차분하고 평온한 마음이 들었다.

 

과음한 다음날 미르를 시음했다는 죄책감과 미안함은 어느 순간 사라졌다.

미르에서 나를 감싸주는 부드러움을 느꼈다면,

그래서 힐링을 받았다면 충분히 즐긴 것이 아닌가.

“다시는 과음하지 말아야지…”로 끝날 줄 알았던 이날의 후회-성찰-다짐 코스는

“다음에는 부드러운 생선회와 먹어봐야지”라는 구체적인 계획으로 마무리됐다.

이게 다 미르 덕분이다.

 

 

 

 

 

 

 

 

서울신문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