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칼럼
술술 Talk
[심현희 기자의 우리술 시음기] 완벽한 밸런스 속에 우아함, 좋은술 ‘천비향’
2019-10-07

 

문득 주변을 돌아보게 되는 날이 있다. 과음한 다음날, 오전 내내 숙취로 누워있다 공허함이 밀려올때, 갑자기 저녁 약속이 취소돼 누군가를 만나고 싶을때,

회사에서 일어난 일로 분노와 억울함을 느낄 때, 카카오톡 친구리스트를 쭉 훑어본다. “오늘은 누구랑 한잔 할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술 친구를 찾는 일에 어려움을 겪은 적은 거의 없다.

그동안 나름 착하게 살아왔고, 직업 특성상 아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라며 거창한 의미 부여를 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은 결국 끼리끼리 어울리게 돼 있다. 술꾼 주변엔 주변 천지가 다 술꾼이다.

술 마시다 결국 술집차린 사장들, 술 마시려고 취직한 주류 회사 직원, 외국 가서 마신 술이 너무 맛있어서 수입사를 차려버린 사람 등등.

 

오랫동안 이들을 관찰한 결과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달콤한 술을 선호하지 않으며 군것질도 잘 하지 않는다는점을 발견했다. 아마 음용성 때문일 것이다.

달콤한 맛은 순간 행복감을 주지만 많이 마시기는 쉽지 않다. 술을 좋아하는 이들은 한두잔에서 끝나지 않기에 많이 마셔도 질리지 않는 술을 원한다.

이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사실 좋은술 ‘천비향’을 입에 대기 전 선입견이 있었다. 술을 와인잔에 따랐는데 강렬한 꿀향과 사과, 멜론 등의 과일향, 약간의 누룩향이 코를 찔렀다.

전체적으로 달콤한 아로마가 강해 “이 한잔을 다 마실 수 있을까”하는 걱정을 하며 첫 모금을 들이켰다.

결론부터 말하면 천비향은 밸런스가 완벽한 술이다. 첫 터치는 분명 달콤한데 이 스윗함을 술 전체에 잔잔히 흐르는 산미가 받쳐주고 있다.

그 사이에 곡물의 고소함이 올라오고 마지막엔 약간의 쌉쌀함이 감돈다.

단맛과 산미의 조화, 드라이한 마무리. 적당한 바디감. 한잔을 비워낸 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우리 약주가 이렇게 우아할 수 있구나”였다.

 

 

천비향과 함께할 여러 음식도 떠올랐다. 천비향의 맛을 세세하게 파악하기 위해 공복에 천천히 음미했던 탓에 ‘페어링 상상력’도 극대화됐다.

워낙 밸런스가 좋은 술이라 한식 뿐만 아니라 외국 음식과도 잘 어울릴 것 같다.

다양한 채소와 해산물을 피시소스로 버무려 새콤, 달콤, 짭잘한 맛을 내는 태국식 누들 샐러드 얌운센과 함께 마시면 천비향의 산미는 더욱 잘 살아날 것이다.

달콤한 향을 충분히 즐기려면 식중주로 써야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디저트 약주’로 즐겨보자.

 

각종 과일이 올라간 타르트, 생크림 한 스푼 얹은 파운드케이크와 함께 먹으면 여느 고급 디저트와인 부럽지 않을 것 같다.

술꾼은 좋은 술을 발견했을 때도 술 친구를 찾는다. 천비향을 마시고 스마트폰을 들어 카카오톡 리스트를 쭉쭉 내려본다.

 

“오늘은 누구랑 한잔 할까?”

 

 

 

 

 

 

 

 

심현희 서울신문 기자 macduck@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