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칼럼
술술 Talk
[심현희 기자의 우리술 시음기] 남자의 술, 동몽
2020-01-16

 

 

 

 “술의 맛을 어떻게 일일이 기억하느냐”라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일이니까 그렇다”고 쿨하게 대답하긴 하는데 사실 세상의 온갖 다양한 술들을 전문적으로 시음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리면 대단히 인상적인 캐릭터의 술 아니고서야 마셨던 술맛을 일일이 기억하기란 불가능하다. 좋은 사람들하고 필름 끊길때까지 마시고 난 다음날 아침에는 “술을 마셨다”는 팩트 외에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 불상사가 종종 벌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러 술들의 개성을 캐치하고, 기억하는 것에 있어 꾀 능한 편이다. 비결 가운데 하나는 각각의 술을 이미지화하는 것이다. 가령, 캐시미어처럼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질감을 가진 와인을 마시면 화려한 커리어우먼이 연상된다. 숙성 기간이 짧은, 막 나온 달콤하고 가벼운 막걸리를 마시면 이제 종알종알 말하기 시작하는 뽀얗고 귀여운 친구 아들이 생각난다.

 

 

 이런 이미지가 어느정도 쌓이면 새로운 술을 마실때마다 자연스럽게 머리 속에서 파일링이 되면서 나만의 ‘뇌피셜‘한 데이터베이스가 생성된다. 그러니까 이 단계쯤 오면 술 마시는 것이 좀 지겨워져야하는데 오히려 술을 시음하는 일이 더욱 재밌게 느껴지니 “이번 생은 영 안되겠다” 싶다가도 세계적인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의 저자 아기 타다시 남매도 같은 방식으로 술의 맛을 기억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웬지 모르게 안심이 되고 위안도 받는다. 글로벌 주류업계의 공인된 ‘술 기억법 혹은 분류법’인 것 같아서다.

 

 

 이 방법으로 약주 ‘동몽’을 시음했다. 한 잔을 마시자마자 “남자의 술이다.”라는 말을 가장 먼저 했다. 근육질의 카리스마 넘치는 파워풀한 남성이 떠올랐다. 이 남성은 힘이 엄청 세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맨손으로 사과를 반쪽내고 장작을 후드려패면 도끼질 한번에 나무가 시원하게 갈라질 것 같다. 하지만 대화를 하면 상대를 배려하는 매너나 부드러운 반전 매력을 갖추고 있을 것 같다.

 

 

 술은 육안으로 맑은 노란색을 띄는데 한 모금 들이키니 바디감이 아주 묵직해 입 안을 가득 메웠다. 달큰하고 새콤한 누룩향은 매력적이며 뒷맛은 드라이해서 잔당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동안 우아하고 여성적인 느낌의 약주를 많이 마셨는데 동몽은 다른 약주들과 달리 파워풀한 개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확연히 차별화된다. 프라이드치킨이나 삼겹살 등 기름진 음식을 먹을때 깔끔하게 입을 씻어줄 수 있을듯 하다. 보통은 약주의 향을 즐기기 위해 와인잔에 따라 마시지만 소주잔에 따라 원샷을 해도 나쁘지 않을 술이다. 심현희 뇌피셜 데이터베이스에 ‘파워풀한 최고급 약주’ 1순위로 동몽 저장 완료. 어서 이 술에 어울리는 TPO(Time·Place·Occasion)를 찾아 좋은 사람들과 이 술이 가진 에너지를 나누고 싶다.

 

 

 

 

 

서울신문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