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칼럼
술술 Talk
[전통주 칼럼] 알곡, 열매, 꽃,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은 술이 된다
2020-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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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은 술이 된다.” 강의에서 술 원료의 다양성을 이야기할 때 하는 말이다. 이 말은 주류업체 국순당을 창업한 배상면 회장이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책에는 다양한 술 원료와 제조방법이 기술돼 있다. 가장 많이 술 재료로 사용되는 쌀뿐만 아니라 옥수수, 수수, 기장, 감자 등으로 만든 술에 대해서도 적혀있다. 쌀만 술 원료라는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책이다.

술 제조는 기본적으로 농업이 바탕이 된다. 지역에 따라 다른 잉여 농산물이 술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식량이 부족하다면 술은 발달할 수 없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남유럽은 포도 생산량이 많아 자연스럽게 와인 제조가 발달했다. 이 지역을 와인 벨트라 부른다. 영국, 아일랜드, 독일 등 중부 유럽은 맥주의 재료인 보리가 많이 생산된다. 이 지역이 ‘비어 벨트’가 된 이유다. 북유럽은 ‘보드카 벨트’라고 부르는데, 짐작하겠지만 보드카의 재료인 감자 등의 곡물 생산량이 많아서다.

한편 아시아는 쌀이 다른 대륙에 견줘 생산량이 많다. 그런 이유로 쌀을 이용한 술도 많다. 쌀로 만든 대표적인 우리 술은 막걸리다. 일본 니고리자케, 중국 미주(米酒), 베트남 껌즈어우넵 (cơm rượu nếp), 네팔 창(Chhyang) 등이 우리 막걸리와 유사한 쌀 술들이다. 쌀이 아닌 다른 농산물로 만든 유명한 술도 많다. 수수를 이용한 바이주, 사과를 이용한 시드르, 사탕수수를 이용한 럼, 용선란을 이용한 테킬라 등이 대표적이다. 술은 종류가 다양해도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발효 과정에서 효모는 당을 이용해서 알코올을 만든다. 단 과일은 당을 가지고 있기에 바로 발효가 되지만, 쌀과 같은 곡물은 당화 과정을 한 번 더 거쳐야 발효가 진행된다. 그러기에 당이 있거나 당을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술의 원료가 될 수 있다. 여기에 술의 개성을 부여하는 것은 부재료다.

당이 술의 주춧돌이라면 향신료와 한약재, 꽃 같은 부재료는 예쁜 창호지 같은 것이다. 맥주의 맛과 향을 만드는 대표적인 부재료는 홉이다. 홉을 맥주 제조에 첨가하면서부터 쓴맛과 향이 다양해졌다. 밀, 옥수수 같은 곡물을 주원료로 사용해 만드는 진도 비슷하다. 증류할 때 주니퍼베리(노간주열매·두송실), 코리앤더, 레몬 껍질 등의 향신료 향을 첨가한다. 결국 맥주나 진의 특징을 만드는 것은 향신료들인 셈이다. 우리나라 전통주는 한약재와 꽃을 많이 사용한다. 구기자를 넣은 구기자주, 인삼을 넣은 인삼주, 진달래를 넣어 만든 두견주, 국화를 넣어 만든 국화주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약재는 발효에는 영향을 주지 않지만, 술의 개성을 창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언제부터인가 술의 주원료가 한가지로 통일되고 있다. 정부가 농산물의 수급 조절 창고로 양조산업을 활용하면서부터다. 현재 대부분의 주원료는 쌀이다. 양조의 독창성이 사라져 가고 있다. 아쉬운 지점이다. 찹쌀, 보리, 수수, 조 등을 주원료로 사용한 전통주가 많이 나오면 소비자 선택의 폭도 넓어질 것이다. 거기에 향신료까지 다양해진다면 우리는 더 다채로운 술을 즐길 수 있다.

 

 

 

 

 

 

 

 

 

 

글 이대형(경기도농업기술원 농업연구사·

전통주갤러리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