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Talk
술만 마셔도 병이 낫는 시절을 꿈꾸며
2020-06-03

 

 

한의학의 고전인 ‘황제내경’은 춘추전국시대부터 진나라 그리고 한나라 초기까지의 의학이론을 모아 황제의 이름을 빌어 편집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황제와 신하들의 문답 형태를 취한 이 책은, 의학지식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자연과 인간 그리고 세계를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파악하는 데 유용한 텍스트다. 출간된 지 2천년도 더 지났지만, 삶의 본질이 달라지지 않은 탓인지 지금 읽어도 생생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중 술에 관한 한 구절을 살펴본다.

 

“옛날 성인들은 탕액요례湯液醪醴를 만들어 놓고도 안 썼다던데, 왜 그랬대?

 

“상고시대의 성인들은 혹시 몰라 준비만 해둔 거예요. 그런데 그 후로 도덕이 점차 해이해지고 환경이 때때로 좋지 않아졌어요. 그래도 탕액요례 정도만 써도 병이 다 나았어요.

 

“근데 요즘은 왜 이 모양이야?

 

“요새는 도덕은 무너지고 환경도 엉망이라 그런 걸로는 턱도 없어요. 독약으로 안을 공격하고 침과 뜸으로 밖을 다스리지 않으면 낫질 않는다니까요.

 

‘탕액요례’를 곡식으로 빚은 청주와 탁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한 자씩 구분하면 좀 더 분명하다. ‘탕湯’은 곡식을 끓인 물로 숭늉이나 미음 혹은 누룽지로 볼 수 있고, ‘액液’은 맑은 액체 상태의 술인 청주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요醪’는 막걸리와 같이 거친 술인 탁주를, ‘예醴’는 단술을 의미하는 글자인데, 식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탕액요례’는 곡식을 주재료로 한 음료를 총칭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몸이 힘들거나 병이 나면 곡식을 끓인 물로 속을 부드럽게 달래고, 소화하는 힘이 좀 더 떨어졌을 때는 오곡을 삭혀서 감주를 만들어 먹게 한다. 도덕과 자연환경이 예전 같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받고 몸에 노폐물이 쌓이고 순환이 잘 안될 때는, 좋은 술 한 잔으로 울체된 것을 풀어낸다. 상고시대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세상이 살 만 할 때는 이렇게만 해줘도 병이 나았는데, 황제의 시대가 되면 이제 더 이상 이런 것으로는 병이 낫지 않는 경우들이 발생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독성이 있는 약재들을 달여 탕약을 복용하고, 침과 뜸을 써서 안팎을 치료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럼 현대인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강호의 도는 떨어진지 오래고,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는 여섯 번째 생물의 대멸종을 가속화하고 있다. 다른 생물종과 미래세대의 에너지까지 빼앗아 쓰고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갈수록 사나워지고 욕망으로 불안을 잠재우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황제가 이 시대에 왔다면, 철로에 선 어떤 사내처럼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칠 것만 같다.

 

이런 시절에는 마음의 환기와 연대가 무엇보다 훌륭한 처방이다. 혼을 빼놓는 세상의 흐름에서 잠시 벗어나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이 거칠고 무례한 시절을 견뎌내는 데 큰 힘이 된다. 한 걸음 더 나가, 느슨하고 느린 운동을 통해 작은 부분부터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면, 구호 뒤에 숨어서 사익을 챙기는 요란한 이들보다 더 훌륭한 혁명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마음의 처방에 좋은 술 한 잔을 더한다면 그 효과를 배가하고 화기和氣와 의기義氣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글  김형찬 한의사 (다연한의원 대표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