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Talk
여름을 나는 술, 과하주
2020-06-30

여름을 나는 술, 과하주

 

 

 

 

 

음식을 하는 사람으로 술 한두 가지는 담글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지리산으로 살러 내려올 무렵에 그 생각을 실행에 옮겨 1년 정도 술을 배우러 다녔다. 일단 재미가 있었다. 만드는 재미도 있고 마시는 재미도 있고 무엇보다 술이 발효되면서 보여주는 변화의 미묘한 순간들이 너무 흥미로웠다. 우리의 장이나 김치처럼 술도 발효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지니고 있기에 재미를 넘어 기쁨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술을 담그지 않는다. 너무나 좋은 전통주들이 쏟아져 나올 뿐 아니라 다양함에 더해 맛이 좋은 술이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다양한 우리술에 어울리는 제철 식재료를 연구하고, 그에 어울리는 음식을 매칭해서 술을 마시며, 그 경험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나의 길이라 여긴다.

 

 

서서히 더워지는 지금 이 계절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술이 ‘과하주’이다. ‘여름을 나는 술’이라는 뜻을 지닌 과하주(過夏酒)는 봄과 여름 사이에 쌀로 빚은 술을 발효시키다가 알코올 도수가 높은 증류주를 넣어 저장성을 높인 술이다. 즉, 냉장시설이 없던 시절에 여름에도 변질되지 않는 술을 만들기 위해 약주를 빚는 과정에서 30도 이상의 소주를 넣어 23도 전후의 술로 만들었다

 

 

과하주를 만드는 방법을 살짝 들여다보면 매우 과학적이다. 술을 담가 놓고 발효 도중에 소주를 넣어 도수를 높이면 알코올로 변하지 못한 당이 남아서 달콤한 술이 되기도 하고, 이 시점을 달리하면 산미가 좋은 술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빚는 사람이나 마시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맛의 술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원하는 맛을 찾아갈 수 있는 유일한 술일지도 모른다.

 

 

한여름으로 향해가는 7월, 더위와 과습이 나를 지치게 할 때, 이런 날들엔 여름을 나는 술 ‘과하주’로 가볍게 한 잔 하는 것도 꽤 괜찮은 선택이다. 알콜 함량이 높은 술이니 안주는 좀 시원한 것으로 준비해 마시면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맛있는 술로 이 여름을 보낼 힘을 얻을 것이다.

 

 

마음먹은 김에 당장 여름 과일의 제왕인 수박을 몇 조각 썰고 오미자청 살짝만 끼얹어 앞에 놓고 과하주 한 모금 넘기고 수박 한 조각 입에 문다. 목이 뜨거워지다가 곧 식고 수박의 달달함에 세상 뭐 별 거 있나 싶다.

 

 

글쓴이: 고은정 음식문화운동가는 지리산 뱀사골 ‘맛있는 부엌’에서 제철음식학교, 시의적절 약선학교, 우리 장학교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시의적절 약선음식>, <장나와라 뚝딱>, <밥을 짓다, 사람을 만나다>, <반찬이 필요 없는 밥 한 그릇>, 어린이책 <김치도감>, <우리 학교 장독대> 등이 있다.

 

 

 

 

 

글 고은정 요리연구가

(제철음식학교 교장/올해의장 추진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