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Talk
가을을 타는 사람들을 위한 약주
2020-10-23

 

 

 

 

 

 

아~ 가을이구나!’라는 문장이 마음에 들어오는 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유난히 맑고 푸른 하늘이 눈에 비친 날 일수도 있고, 산책길에 색색으로 물든 나뭇잎을 만난 날 일수도 있다. 누군가는 샤워기의 물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진 날이 그 해 가을의 첫날이다. 자연의 변화는 한결같지만, 계절이 마음에 들어와야 비로소 사람의 가을은 시작된다.

 

가을이 되면 해가 짧아지고 차가워진 바람은 몸을 움츠리게 만든다. 습기를 머금고 있던 공기는 건조해져서, 봄에 넣어 뒀던 가습기를 다시 찾게 된다. 이것은 환절기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이 변화의 흐름을 잘 타지 못하면 몸과 마음은 몸살을 앓는다.

 

떨어지는 나뭇잎에 눈물이 나고, 불면과 고독감으로 밤을 지새우며, 사 두고 읽지 않던 책을 꺼내 본다. 입맛은 없고, 소화도 잘 되지 않으며, 하는 것 없이 피곤하다. 시쳇말로 가을을 타는 것이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지만, 코로나 시대는 이 또한 허락지 않는다. 이럴 때 몸과 마음을 달래줄 무언가를 찾고 있다면, 좋은 약주 한잔이 답이 될 수 있다.

 

 

가을밤에 향긋한 술아 국화주

 

 

 

 

 

마음이 부대끼는 사람들에게는 국화주를 권한다. 국화는 가슴 이상의 열을 내리고 머리와 눈을 맑게 하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을을 타는 사람들은 심란함이 원활한 기의 소통을 방해하니 잠도 오지 않고 잡다한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온갖 상념이 끓어오르는 가을밤에 향긋한 국화주 한 잔을 벗 삼아 보자. 술에 약하다면 따뜻한 물에 희석에서 차처럼 마셔도 좋다. 편안함과 차분함이 마음을 채워, 더 이상 가을바람이 고독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몸에 생기가 차오르는 청양둔송구기주

 

 

 

 

 

가을이 되면서 체력이 떨어진다고 느껴진다면 둔송구기주를 반주로 즐기면 좋다. 구기자의 산지로 유명한 청양지역의 가양주로 구기자와 감초 그리고 두충이 들어간 약주다. 간장과 신장을 보하는 약재들로 빚은 약주 한 잔은 겨울을 준비하는 가을의 몸을 채우는데 제격이다. 가을의 산이 내어 준 송이버섯이나 능이버섯을 안주로 구기주 한 잔을 기울인다면, 무기력한 몸에 생기가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따뜻한 제주산 귤의 향 니모메 약주

 

 

 

 

어디 크게 문제는 없는 듯한데, 왠지 속도 좀 불편하고 몸도 찌뿌듯할 때가 있다. 이럴 땐 ‘니모메’ 약주가 도움이 될 수 있다. 진피는 귤의 껍질로, 한의학에서 기의 소통을 돕는 대표적인 약재다. 속을 편하게 하고 담을 없애는 효능이 좋은데, 따뜻한 진피차는 가벼운 감기기운이 있을 때도 효과적이다. 서늘함이 스며들어 자꾸 움츠러들게 되는 가을날, 제주산 귤껍질을 넣어 빚은 약주는 몸과 마음에 편안한 소통을 선물할 것이다. ‘니모메’는 제주 방언으로 ‘너의 마음에’란 의미이다. 따뜻한 사람의 곁이 그리워지는 가을, 술 한 잔에 마음을 담아 전할 수 있다면 깊어 가는 가을이 조금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글 : 김형찬 한의사 / 다연한의원 대표 원장

김형찬 한의사는 생각과 생활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믿음으로 아픈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진료를 하며 느끼고 생각한 사람과 병, 사회에 관한 이야기들을 ‘동네한의학’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에 연재중입니다.

저서로는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뜻하지 않게 오래 살게 된 요즘 사람들에게』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