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칼럼
술술 Talk
취이불취(取而不醉)
2020-12-23

 

 

 

 

시간의 흐름은 사람의 사정을 봐주지 않아서, 어느덧 올 한 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각자 새로운 포부를 안고 시작했을 2020년은 뜻하지 않은 코로나-19란 복병을 만났다. 니체는 ‘죽지 않을 정도의 고난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라고 했지만,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전염병의 시대는 어떤 시련보다도 혹독한 것 같다.

 

이즈음의 달력은 약속들로 촘촘히 채워지기 마련이다.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었다. 친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지 못했던 이들과의 관계를 확인하는 시간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이 당연함을 잠시 미뤄둬야 한다.

 

 

 

 

 

 

 

겨울은 본래 ‘침잠’의 계절이다. 한의학의 고전인 ‘내경’에서는 겨울에는 잠을 많이 자고, 마치 남모를 뜻을 품거나 귀한 것을 얻은 사람처럼 마음을 안으로 감추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이 문장을 밖으로 치닫던 몸과 마음을 잠시 멈추고 내면에 집중하란 의미로 해석한다. 차고 어두운 계절은 이유를 알 수 없이 바쁜 속에서 점점 잃어가는 나를 회복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환경이다.

 

올 연말은 세상으로부터 잠시 떨어져 내 안으로 들어가 보면 어떨까? 어수선했던 사람들과의 관계도 조금은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마음에 걸린다면 영상통화를 해도 좋고, 친구들끼리 화상을 통해 만나 수다를 떨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오랜만에 마음을 담은 손편지를 써보는 것도 좋고, 작은 선물로 감사함을 표해도 좋을 것이다.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전염병 시대의, 차가운 침잠의 시절을 달래 줄 술은 무엇일까?

 

 

 

좌) 추사40 우)추성주

 

 

 

나는 좋은 증류주 한 잔이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술의 원료가 가진 무거운 부분은 버리고 그 기운만을 취한 증류주는 맑고 독하고 뜨겁다. 피를 덥히고 마음의 한기를 몰아내는 데는 이만한 약이 없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크기의 잔에 술을 채우고, 홀로 혹은 랜선 친구와 함께 딱! 한잔을 마시고 짧은 한마디 말로 담백하게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그립고 다정한 마음과 뜨거운 술의 기운 그리고 나의 본 모습은 취取하되,

원망하고 후회하는 마음과 과음의 유혹 그리고 흔들리는 내 모습에 취醉하지는 말자,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불안과 상처를 남긴 한 해와 이별하자.

 

2020년 경자년이여 안녕!!

 


 

글 : 김형찬 한의사 / 다연한의원 대표 원장

​김형찬 한의사는 생각과 생활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믿음으로 아픈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진료를 하며 느끼고 생각한 사람과 병, 사회에 관한 이야기들을 ‘동네한의학’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에 연재중입니다. 저서로는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뜻하지 않게 오래 살게 된 요즘 사람들에게』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