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칼럼
술술 Talk
세주불온(歲酒不溫)
2021-01-13

 

 

이미지 출처: 인스타그램 @muldwinda_

 

 

 

 

 

찬술 한잔으로 봄을 마중하자.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몸을 병들게 하고 마음에 불안과 공포를 더한 것 외에도 시간 감각마저 무디게 만든 것 같다. 새해가 되고도 여러 날이 지났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코로나 시대의 연장선에 있다. 묵은해를 제대로 보내지도 못하고, 새로운 시간을 활짝 열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한 채로 새해를 맞고 말았다.

 

『동지 설상雪上 삼척 냉돌에 변변치도 못한 이부자리를 깔고 누웠으니, 사뭇 뼈가 저려 올라오고, 다리팔 마디에서 오도독 소리가 나도록 온몸이 곱아 오는 판에, 사지를 웅크릴 대로 웅크리고 안간힘을 꽁꽁 쓰면서 이를 악물다 못해 이를 박박 갈면서 하는 말이, “요놈, 요 괘씸한 추위란 놈 같으니! 네가 지금은 이렇게 기승을 부리지만, 어디 내년 봄에 두고 보자!”하고 벼르더란 이야기가 전하지만, 이것이 옛날 남산골 「딸깍발이」의 성격을 단적으로 가장 잘 표현한 이야기다. 사실로 졌지만, 마음으로 안 졌다는 앙큼한 자존심, 꼬장꼬장한 고지식,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을 안 쬔다는 지조, 이 몇 가지가 그들의 생활신조였다.』

이희승의 ‘딸깍발이’ 중에서 –

 

남산골 선비 딸깍발이의 신조처럼, 시절이 험할수록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마음의 균형을 잃으면 풍문에 휘둘리다 어느새 자신을 잃고 넘어지거나 휩쓸리고 만다. 그럼 어떤 결심이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 시대에 필요할까? 그 답을 2021년에 붙여진 ‘신축辛丑’이란 이름에서 찾아 본다.

 

신축년을 흰소의 해라고 한다. ‘신辛’은 오행 중 금金에 속하는데, 이 속성의 색이 흰색이어서다. 그런데 2020년 경자년 또한 흰쥐의 해였다. ‘경’과 ‘신’ 모두 오행의 속성이 ‘금’에 속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금’이라도 그 성격은 다르다. ‘경’이 가공되지 않은 원석이라면, ‘신’은 가공을 거친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금속이다. 금광석이 ‘경’이라면, 금반지는 ‘신’인 것이다.

 

오행 중 ‘금’은 계절로는 가을에 속하고, 생의 주기에서는 중년에 해당한다. 원기왕성하게 성장하고 확장하던 여름과 청춘의 에너지를 잘 갈무리해서 결실을 맺는 힘이다. 칼과 같은 마음으로 세상의 일들을 파악하고, 내가 가야 할 길을 찾는 단계. 공자가 말한 불혹不惑과 지천명知天命의 과정이 바로 ‘금’이 상징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신축년의 ‘신’은 보다 정밀하고 정확하게 세상과 나를 파악해야 함을 의미한다.

 

 

 

 

출처: 인스타그램 @hey_you_mori

 

 

 

‘소’는 부모의 마음으로 포용하고, 자기 일을 묵묵히 알아서 잘 처리하는 사람과 비유된다. 하지만 과묵하던 사람이 화를 내면 무서운 것처럼, ‘소’는 엄격한 내면의 기준을 상징하기도 한다. 속이 깊고 강하기 때문에 타인에게 관대하고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신축년은 마음을 단단히 다지고, 의혹들을 떨쳐내고, 자신을 길을 묵묵히 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는 듯 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어려운 시절, 심기일전으로 새해를 여는데 도움이 될 술은 무엇일까?

 

설날에 데우지 않은 찬술을 마시고, 봄을 맞이하고 일할 준비를 했던 세주불온歲酒不溫의 전통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좌)출처: 배상면주가 홈페이지 (우)출처:인스타그램 @muldwinda_

 

 

 

 

설에 마시는 대표적인 술은 도소주屠蘇酒로, 육계, 산초, 백출, 도라지, 방풍과 같은 약재를 넣어 담는다. 도소주에 들어간 한약재들은 기의 순환을 활성화하고 몸속 노폐물의 배출과 염증을 없애는 데 효과적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깨우는 봄바람과 같은 술이라고 할 수 있다.

 

‘세주불온’의 전통은 설날부터 취하지 말자는 경계의 의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자연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봄기운을 담은 차가운 술 한 잔으로 몸과 마음에 봄을 마중하자는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사는 일이 늘 그렇겠지만, 어쩌면 신축년 한 해는 나를 흔드는 의혹과 어려움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 잘 넘기고 웃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찬술 한잔으로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고, 신축년 한해를 향긋하게 시작해보자!

 

 


글 : 김형찬 한의사 / 다연한의원 대표 원장

김형찬 한의사는 생각과 생활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믿음으로 아픈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진료를 하며 느끼고 생각한 사람과 병, 사회에 관한 이야기들을 ‘동네한의학’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에 연재중입니다.

저서로는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뜻하지 않게 오래 살게 된 요즘 사람들에게』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