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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즐기는 연초만찬엔, 한국 빈티지 와인
2021-01-19

 

 

 

 

코로나 때문에 이번 연말연시는 모임 없이 조용히 지냈습니다. 제가 일하는 업장을 포함해 모든 외식업장들은 견디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9시까지 영업이라고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모임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지속되다 보니 초저녁부터 손님들의 발걸음은 뚝 끊겨 매출이 반 토막, 아니 예년에 10분의 1로 줄어든 곳도 심지어 문을 닫은 곳도 생겼습니다.

 

관광업이 얼어붙어 버리면서 지역의 와이너리도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가을에 진행하던 행사나 축제도 취소되고, 찾아오던 손님들조차 뜸해져 체험 운영도 멈춘 상태입니다.

 

사람에게 잔인한 이런 상황에서도 2020 빈티지의 와인들은 숙성의 깊이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새 빈티지의 와인들이 숙성을 마치고 출시되어 나오기도 하고, 오크통이나 병에 담겨 긴 잠을 자고 있기도 합니다. 테이스팅을 요청하며 와이너리에서 보내주시는 와인은 매년 더 날카롭게 벼리어져 수준이 높아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코로나 상황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배달이나 포장으로 매출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한국와인을 포함한 전통주는 온라인 판매로 매출을 이어나가고 있고, 몇몇 음식 업장은 주문이 밀려있어 평소보다 바쁘기도 하고, 방문하는 손님들이 배달, 포장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부러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작년 우리나라의 와인 수입량은 사상 최대치였다고 합니다. (약 2,616억 5,720만 원, 관세청 자료, 소믈리에타임즈 인용) 레스토랑 판매는 줄었지만 마트에서 판매가 늘었는데, 집에서 혼자 혹은 가족끼리 마시는 혼술과 홈술 영향이라고 합니다. 한국와인도 온라인 판매가 가능하다보니 몇몇 와이너리는 판매가 더 늘어난 곳도 있습니다. 바야흐로 홈술과 혼술의 시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코로나 상황에서 오히려 판매량이 늘어난 와이너리는 다른 곳과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우선 술의 맛이 뛰어나다는 것, 오프라인에서도 인기상품이었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돌파구를 잘 모색하는 젊은 마인드를 가진 제조자라는 점입니다.

 

맛있는 음식, 맛있는 술은 홍보하지 않아도 손님들이 찾게 됩니다. 맛이 뛰어나다는 것은 맛을 잘 유지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어제는 맛있었는데 오늘은 맛없고, 내일은 다시 맛있는 술이라면 좋은 품질이 아닙니다. 와인도 빈티지마다 (수확한 연도마다) 맛의 차이가 조금씩 있을 수 있지만, 어느 해는 맛있고 또 어느 해는 맛이 없을 수 없습니다. 술을 잘 만드는 양조장은 병이나 탱크마다 균질한 품질을 매년 유지할 수 있는 곳입니다.

 

좋은 품질의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에서 얼마 전 상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이전 빈티지와 새 빈티지 와인의 맛 차이가 좀 있어 걱정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마셔본 새 빈티지의 와인은 충분히 좋은 와인이었기에 걱정 마시고 출시하셔도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와이너리의 와인은 이미 팬층이 두텁게 형성되어 있고, 고객들은 새 빈티지의 와인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빈티지의 차이를 인식할 수 있는 좋은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고, 그 차이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와인의 주질이 많이 향상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 편의점에 한국와인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홈술과 혼술을 즐기게 된 상황에서 한국와인이 소비자에게 좀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으리라 기대됩니다. 다만, 편의점에 전국적인 물량으로 납품할 만한 와인은 그리 많지 않아 규모가 큰 와이너리의 와인이 먼저 소개될 듯 합니다. 먼저 소개된 와인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면 수량은 적지만 좋은 와인을 생산하는 작은 와이너리에게도 납품기회가 올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샤토미소와인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 연말연시 모임은 없었지만 좋은 술들을 쌓아놓고 매일 한 병씩, 예년보다 더 많은 혼자만의 만찬을 가졌습니다. 배달해주는 좋은 음식과 한국와인 덕에 집에서도 일류 레스토랑 못지않은 만찬이 가능했습니다.

 

잘 알려진 유명한 한국와인도 좋지만, 아직 알려지지 않은 한국와인을 드셔보는건 어떨까요? 내추럴 와인 방식의 경주 예인화원과 프랑스 농부가 직접 만드는 레돔, 우리나라 최초의 오렌지 와인이라할 수 있는 담양의 고서와인, 매실로 만드는 에델와인, 강원도 화천 블루베리로 만드는 채향원 등 매년 새 빈티지의 좋은 와인을 테이스팅 해 볼 생각에 설레게 되실 겁니다.

 

혼자 연초 다짐을 하시는 분들에게 작고 알려지지 않았지만 품질 좋은 한국와인들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원래 연말연시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기쁨도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새해를 맞아 평소에 자주 드시던 큰 주류회사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양조장의 술을 즐기면 어떨까 싶습니다. 보석과 같은 한국와인들을 발견하는 재미에 흠뻑 빠지게 되실겁니다. 같이 한 잔 하실까요?

 

 


 

 

글: 최정욱 소믈리에최정욱 와인 연구소장, 오산대학교 겸임교수

최정욱 소믈리에는 최정욱와인연구소 소장으로, 와인에 대한 연구를 하며 오산대학교 외식사업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한국와인의 우수성과 대중성을 널리 알리고자 경기도 광명에 위치한 광명동굴에서 소믈리에로 활동했고, 아시아 와인 트로피 심사위원을 역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