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칼럼

[장새별의 한국술 시음기] 제주어멍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21-01-12
  • 조회수 1637

이미지출처: 칵테일하이 

 

 

바에 자주 간다.

 

집 문턱 넘듯 찾는 단골 바가 몇 있고, 한 번 가면 칵테일 네다섯 잔은 기본이다. 이렇다 보니 종종 조주기능사 공부를 해볼 생각은 없냐는 질문을 받고는 한다. 그러면 나는 아주 단호하게 대답한다. “아니요. 없어요.”

 

잘 만드는 사람이 뻔히 존재하고, 나는 그걸 사 먹는 게 좋다. 엄밀하게는 칵테일 한 잔을 마시며 바텐더와 대화를 나누고, 바에 흐르는 공기의 온도 같은 것들을 느끼는 시간이 좋다. 사람들이 ‘너무 쉽게’ 비싸다고 말하는 칵테일 가격에는 그런 것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것에 그렇게까지 열심이고 싶지 않다. 직업상 먹고 마시는 일을 단순 취미로만 둘 수 없는 노릇이지만, 적어도 칵테일 마시는 시간만큼은 공부의 영역에 두고 싶지 않은, 마지막 보루랄까.

 

 

 

 

 

 

 

 

이번 칼럼을 위해 손수 DIY 칵테일 키트를 골라 놓고, 직접 만들어 먹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참 길게도 썼다. 이렇게 단호했던 마음이 움직인 데에는 코로나로 인한 상황들이 한몫 했다. 바의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시기, 혈당 칵테일 수치를 채워줄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요리용 밀키트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이 주류는 과연 어떨까 하는 호기심도 있었다. 바텐더와의 대화가 없는 칵테일이라면 이것이야말로 100% 맛으로 승부를 봐야 하지 않겠냐며, 단단히 벼르기도 했는데 막상 키트를 받아 들고나니 뭐 그렇게까지 비장한 마음이었나 싶다.

 

요리를 포함한 키트의 세계에서 제1의 덕목은 ‘편리함’이다. 몇 년 전, 10단계에 가까웠던 밀키트 조리 과정이 최근에는 2-4단계까지 줄어든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런 점에 비추었을 때 ‘칵테일 하이’ 키트의 첫인상은 만점에 가깝다. 술과 시럽, 가니시용 과일 등 칵테일의 재료뿐 아니라 셰이커와 지거, 컵, 일회용 나이프까지 살뜰하게 담겨있다. 얼음 외에 따로 준비물이 필요 없고, 심지어 레몬은 세척까지 해서 보내준 터라 잘만 하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힐 수 있다. 공부의 영역에 들여 놓지 않고도, 레시피 카드만 순차적으로 따라하면 칵테일이 뚝딱 완성된다.

 

내가 만든 칵테일은 ‘제주 어멍’. 예천에서 단수수즙으로 만든 ‘럼 PHAT 42’, 커피냑, 파인애플 주스, 코코넛 시럽, 레몬 주스를 배합한 달콤한 술이다. 말린 오렌지와 커피 원두까지 얹어내면 꽤 그럴싸하다. 기주(基酒)인 럼 PHAT 42만 따로 마셔보니 다소 인공적이나 살구 등의 과실 향이 지배적인데, 완성된 칵테일에서도 그 특성이 잘 드러나 있다. 그렇게 총 6잔을 만들 수 있는 3만원 대의 칵테일 키트. 삼삼오오 모일 때, 유희적 요소로 합당한 맛과 가격이다.

 

 

 

 

 

 

 

다만, 베이스로 사용하는 술에 대한 간단한 설명 정도는 곁들여졌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구매자 스스로 찾아보게 하는 효과를 노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더불어 이 칵테일의 이름이 왜 ‘제주 어멍’인지 여전히 궁금증으로 남아있다.

 


 

글: 장새별 (F&B 전문 에디터)

먹고, 주로 마시는 선천적 애주가다. 블루리본서베이, 식품 신문사를 거쳐 미식 매거진 <바앤다이닝>에서 오래 일했다. 퇴사 후에도 레스토랑과 바를 찾아 다니며 일과 취미의 경계가 허물어진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