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칼럼

향신료와 한주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21-01-22
  • 조회수 1170

 

 

 

 

단언컨데 앞으로 한동안은 향신료의 시대다. 술이든 음식이든.

 

오랫동안 ‘미식’이란 사치스런 것이었다. 오랫동안 미식의 최고봉으로 인정받아온 프랑스 요리는  버터와 설탕을 비롯한 당시로서 비싼 식재료들을 사치스럽게 과용하는 것으로 기본을 삼고, 부러움을 샀다.

 

2차대전 이후, 냉장고와 콜드체인 유통이 집집마다 가능해지면서 사람들은 좋은 식재료는 어떤 비싼 조미료보다 더 맛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3대 요소가 ‘버터, 버터, 버터’ 라던 프랑스 요리도 다이어트를 해서 신선한 재료를 살리고 가벼운 맛을 낸 누벨뀌진(새로운 요리)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런 흐름은 역사적으로 훨씬 지방분권적이고 지역 특색이 강한 요리문화를 가지고 있던 이탈리아로 미식의 주도권이 옮겨가게 했다. 더하여 비슷한 지역분권 문화와 ‘생식’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일본이 21세기 초반까지 미식의 주도권을 잡았다(물론 프랑스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과학을 앞세운 분자요리가 21세기 들어 아주 잠시 대세를 이룬 적도 있었으나 식재료와 지역성에 대한 강조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덴마크의 ‘노마’로 대표되는 이 흐름은 단순히 지역 식재료를 추구하는 정도가 아니라 셰프가 주방을 박차고 산으로, 들로 나가서 생산자들을 만나고 직접 채집을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페루의 ‘센트럴’ 같은 경우는 안데스 산맥의 다양한 높이에 따른 4000여 종의 야생 감자 등 다양한 동식물을 연구해서 요리를 내고 있다는 정도니 이 정도면 셰프는 박물학자에 가깝다고 보겠다.

 

예약을 두어달 전에는 해야 한다는 이런 식당들은 이제는 돈이 있어도 갈 수가 없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사람들은 전세계적으로 요리에 새롭게 눈을 뜨고 있다. 처음에는 나가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해먹던 집밥에 취미를 붙인 사람들은 이제 집에서도 미식을 본격적으로 추구하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잠깐의 유튜브 검색으로 장벽이 거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지식이나 기술이 아니라 점점 설비와 재료, 요리는 자본이 되어가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하지만 돈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아마추어가 자랑스럽게 뽐낼 수 있는 자기만의 소스나 양념은 단연코 이 향신료에 대한 공부에서 나온다.

 

 

< 한국의 다양한 향신료 >

냉이나 달래는 단군신화에도 나오는 토종 향신료다. 하지만 우리나라 풍토에서 자생할 수 없는 후추, 정향, 육두구 같은 향신료는 단번에 우리를 이국의 정취에 빠져들게 해주는 마술을 부린다. 이런 향신료들의 조합은 무궁무진하고, 곁들여 쓸 수 있는 식재료와의 조합은 더욱 그렇다.

이제는 그런대로 만만한 가격에 다양한 향신료를 구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 감홍로 >

향신료가 엄청난 사치였던 시절, 우리의 전통 한주가 이국의 향신료들을 마음껏 사용한 경우가 있다. 바로 평양의 명주 감홍로다. 용안육, 계피, 진피, 생강, 정향…. 호화의 극을 달린다. 진짜로 감홍로 마셔본 사람은 극상류층 아니면 별로 없었을 것이다. 이러니 별주부전에서 토끼를 용궁에 꾀어 갈 때도 감홍로, 춘향이가 한양 가는 이몽룡과의 이별의 마지막 밤에 마시는 술도 감홍로, 황진이가 서화담을 빗대어 이르는 물건도 감홍로다. 한마디로 감홍로가 빠지면 뭔가 허전한 것이 이 시대 드라마의 설정이다. 이 감홍로는 현재 문화재로 지정되어 파주에서 이기숙 명인에 의해 내려지고 있다.

 

출처: 네이버지식백과

 

 

 

< 초화주 >

영양 청기면 영양장생주의 초화주도 있다. 후추와 꿀이 들어가 초화주이다. 임증호대표는 고려시대 국순전의 저자인 임춘의 후예라고 한다. 문화재 지정은 안 받았어도 가전의 술을 기본으로 만들었다. 인터넷쇼핑몰에서는 구하기 힘들고 요즘 많이 생겨나는 한주 보틀 숍에서 구입하거나 증류소를 직접 방문해야 한다.

 

초화주

 

 

 

< 만남의 장소 >   

‘전통’과는 별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향신료를 도입한 술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 젊은이들이 창업한 한주 양조장들은 대다수라고 해도 좋을 만큼 향신료 사용에 관심을 보이는 추세다.

서울 구수동의 구름아 양조장에서 만드는 ‘만남의 장소’는 생강, 후추에 레몬과 건포도, 꿀도 들어가 있는 술이다. 생산량이 적어 품귀현상을 겪는 술이다.

따지고 보면 갖가지 향신료는 어느 나라 음식에서나 중요한 역할을 해온 ‘오래된 미래’ 중 하나인 것이다.

 

만남의 장소

 


 

 

글: 백웅재 작가 / 한주 전문점 얼터렉티브 마켓(Alteractive Market)’ 대표

백웅재 작가는 주문진에서 한주(韓酒) 전문점 ‘얼터렉티브 마켓을 운영하며 사라져 가는 우리술과 먹거리를 찾아, 다양한 한주 상품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네이버에서 ‘허수자’라는 파워블로거로 활동하며 전국의 맛집과 한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 국가대표 전통주 소믈리에 경기대회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저서로는 『술맛 나는 프리미엄 한주』 따비(2016), 『우리 술 한주 기행』창비(2020)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