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칼럼

[탁PD의 우리술 로드] 풍정사계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21-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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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거 삼각대 하나는 짱짱한 거 들고 다니는구먼.”

 

 

인터뷰를 녹화하려고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던 나에게 풍정사계 이한상 대표가 건넨 말이었다. 혼자서 카메라 두 대를 활용해 녹화를 하다 보니, 가벼우면서도 신뢰성 있는 장비가 필요해 이탈리아제 삼각대를 사용하고 있던 차였다. 그걸 알아보는 이 대표의 한마디에서 ‘아, 이 분이 예전에 사진관 하시던 분이었지’라고 새삼 떠올리게 된다. 이 대표는 청주 시내에서 18년이라는 세월 동안 사진관을 운영했던 이력이 있다.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으로 현상과 인화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진관 비즈니스가 차츰 내리막길을 걷게 되자, 이 대표는 업종 전환을 고민하게 되었다. 그 때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우리 술이었다. 종가집 어른들을 위해 할머니가 빚던 술을 맛보며 자랐던 터라, 어떤 것이 좋은 술인지 구분할 정도는 되었다. 더군다나 어린 시절부터 방금 떠온 물과 솥단지에 담은 뒤 시간이 지난 물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미각이 예민했다. 나름의 확신과 열정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자리를 잡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다. 일단은 ‘자기 누룩’을 만들어야 했다.

 

 

 

 

 

 

 

 

 

 

 

“내 누룩이 있어야 내 술이 있다고 술 선생님에게 배웠어요. 그래서 어떤 누룩을 선택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향온곡’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조선시대 내의원에서 제사에 쓸 술을 빚을 때 쓰던 누룩인데, 밀 말고도 보리와 녹두가 들어가요. 저는 그것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데까지는 못 미쳤고, 밀과 녹두를 섞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누룩과 함께 완성되어간 술이 바로, 2017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 당시 청와대 만찬주로 쓰였던 약주, ‘풍정사계 춘’이다. 처음 누룩을 디딘 것이 2006년이고 술을 완성한 것이 2015년이니, 햇수로는 10년이 걸린 셈이다. 약주 하나에 그렇게 긴 시간을 투자한 이유가 궁금했다.

 

 

 

 

 

 

 

 

 

 

 

 

 

“다른 술보다 약주가 제일로 힘들어요. 제대로 되었는지 아닌지 티가 대번에 나거든. 그래서 약주를 완성시키고 나면 다른 술들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겠다 싶어서 약주부터 만들게 된 거죠.”

 

 

 

(글을 쓰면서도 내내 아쉬운 것 하나는 여기서 말하는 약주가 사실은 우리 고유의 청주라는 점이다. 주세법상으로 일본식 가루누룩을 쓰고 전통 누룩은 1% 이하로 써야먄 ‘청주’라는 명칭을 쓸 수 있고, 우리 전통 방식대로 만들면 아무리 쌀, 누룩, 물만 가지고 만들고 아무런 약재가 들어가지 않아도 ‘약주’가 된다. 읽는 분들이 이 글 내내 반복되는 ‘약주’라는 명칭은 사실 우리 고유의 ‘청주’임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풍정사계 춘의 향은 새큰하면서도 달큰하다. 무겁지 않은 누룩의 향이 잘 익은 과일향 속에서 우아하게 고개를 쳐든다. 주된 향은 과일인데 볏짚과 이끼의 냄새가 아련하게 풍겨 온다. 춘의 향기는 살짝 에로틱한 느낌마저 들었다. 향수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지만, 그 향을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시키는 것은 사람의 체취다. 과일향 속에서 나 여기 있다고 속삭이는 이끼의 냄새. 이런 은밀한 파격을 표현하는 데 ‘섹시하다’는 것보다 더 나은 표현이 있다면 좀 가르쳐 주시길.

 

 

 

입 속에서 춘은 조금 복잡한 원을 만든다. 달콤함으로 시작해 새콤함이 일어나다가 난데없이 구수함이 노크를 해온다. 끝에 남는 것은 희미한 쓴맛. 그리고 그 쓴맛은 다시 달콤함으로 꼬리를 문다. 네 가지 색깔의 색상환. 사태극(四太極)이라고나 할까. 정갈하게 머리를 빗고 스타일리쉬하게 단색 정장을 차려입은 느낌의 니혼슈에서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복합적인 향이다. 이 대표의 10년 공부가 이 한 잔에 담겼다. 수제 맥주의 향을 다양한 홉이 살려 주듯, 누룩을 만드는 곡물과 작용하는 미생물의 종류를 다양화하는 게 우리 술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시키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룩향이 많이 나면서도 어느 것 하나가 되바라진다는 느낌이 없는데, 비결이 있을까요 ”

 

 

 

“다른 건 모르겠고 저는 술 만들기 전에 누룩을 법제(法製)하는 과정을 꼭 거쳐요. 누룩을 빻아서 3, 4일 손으로 뒤적여서 속까지 햇볕에 말리는 거죠. 그렇게 하면 자외선에 의해서 소독이 이루어져 잡균이 없어지고 곰팡이 냄새가 사라져요. 그러면서 공기 중에 있는 자연 효모가 누룩 위에 앉게 되는 거죠. 이 과정을 거쳐야 잡내가 없는 술이 돼요.”

 

 

 

풍정사계 춘은 달다. 그리고 구태여 그 단 맛을 숨기려고 하지도 않는다. 누룩의 냄새도, 식사 내내 두고 먹기엔 조금 달게 느껴지는 맛도 굳이 가리려는 시도 없이 그대로 내놓는다. 이 대표의 자신감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우리 술이 60년대 이후 감미료가 많이 쓰이면서 달아졌다고들 하는데, 풍정사계의 단맛은 설탕이 들어오기 이전의 단맛이거든요. 저는 이것이 우리 술 본바탕에 있는 맛이라고 생각해요. 밥을 오래 씹으면 나오는, 그런 은은하고 자연스러운 단맛이야 말로 우리 술이 가지고 있는 경쟁력이자 매력입니다.”

 

 

 

풍정사계의 커다란 강점 중의 하나는 네이밍이다. 춘(약주)-하(과하주 過夏酒)-추(탁주)-동(소주)로 이어지는 라인업을, 계절에 매치시켜 배치했다. 겨울을 나고 봄이 올 때 빚는 술, 풍정사계 춘을 마셔봤으니 여름을 나는(過夏) 술, 과하주 풍정사계 하를 마셔볼 차례였다.

 

 

 

 

 

 

 

 

“유럽 술 중에 강화(强化)와인이라는 게 있잖아요. 말하자면 이 과하주가 우리 조상들이 마시던 강화와인인 셈이예요. 약주를 만드는 과정에 소주를 첨가해서 알콜 도수를 높입니다. 그러면 여름 동안에도 술이 상하지 않아요. 여름을 나면서 계속 곁에 두고 마실 수 있는 술이 되는 거죠.”

 

 

 

독일에는 일반 맥주보다 더 강하게 양조한, 복(Bock) 맥주가 있다. 그 복 중에서도 5월에 만드는것을 ‘마이복’(Mai Bock 5월의 복)이라고 부른다. 여름 동안 맥주가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도수를 높인, 독일판 과하주다. 세계 어딜 가든, 주어진 조건 속에서 더 좋은 술을 마시기 위해 사람들은 비슷한 생각과 노력을 한다. 이것만 깨우쳐도 술꾼끼리는 국적을 묻지 않고 친해질 수 있다.

 

 

 

풍정사계 하의 맛은 춘에서 설정한 방향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똑같이 생긴 총알이라 하더라도 화약의 양과 총신의 구경을 다르게 하면 다른 성격을 가진 무기가 되기 마련이다. 풍정사계 하에선 춘과는 다른 박력으로 입 안으로 쇄도해 오는 운동에너지가 느껴진다.

 

 

“춘이 ‘스르륵’하고 넘어갔다면 이 하는 마지막에 ‘찌릿’하고 채 주면서 넘어가는 맛이 있네요. 펀치감이 달라요.”

 

 

 

질감 뿐만 아니라 향에 있어서도, 춘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느낌이었다면 하는 마지막에 살짝 모아주는 견고함이 느껴진다. 다만 도수 면에 있어서, 현재의 18도에서 조금 더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다면 이 술의 매력을 좀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대표는 그 부분에서 세금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20도가 넘어가면 일반증류주에 속하게 되어서 가격을 더 높게 받아야 하거든요. 약주의 세율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과하주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도수를 고민하다 보니 18도가 된 것인데, 원래 우리 조상들이 드시던 과하주의 도수는 그것보다 훨씬 더 높았어요. 이 부분은 저도 아쉽습니다.”

 

 

 

잔을 입에 가져가며, 아직 변화와 발전의 여지가 많은 술의 부활 드라마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살짝 벅찼다. 조상들이 마시던 과하주가 문헌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오늘날의 장인들이 만들어가는 과하주는 한국 술꾼들의 커져가는 우리 술에 대한 관심과 함께 술독 속에서 부글거리고 있는 것이니까. 아무쪼록 과하주의 팬이 많아져서, 가격 면의 제약을 뛰어넘어 조상들이 먹던 맛 그대로의 과하주를 경험할 수 있게 되길 바라 본다.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온다. 오곡이 익어서 추수를 기다리는 계절에 어울리는 술. 곡식의 향이 가장 잘 살아있는 탁주, 풍정사계 추를 마셔볼 차례다. 잔을 좀 더 넓적한 것으로 바꿨다. 아무래도 술 속의 건더기가 살아있는 탁주의 맛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혀 끝에 올려놓고 굴리는 것보다 한 입 크게 베어 물어 입 안을 넉넉히 채워 주는 편이 좋다. 풍정사계 추의 맛은, 쌀 그대로의 색에 가까운 밝은 빛깔만큼이나 깔끔했다. 덧술로 찹쌀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끈끈한 질감없이 상쾌하게 입 안에서 사라졌다. 풍정사계의 컨셉이, 질펀하게 흐드러지는 것보다 깔끔하게 갈무리하는 것에 촛점이 맞춰져 있음을 느끼게 하는 맛이었다. 탁주에서 이 정도의 상쾌함이라니. ‘밥으로 만든 과일’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릴 듯 했다.

 

 

 

“제가 추구하는 맛은 복숭아 같이 물 많은 과일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나는 맛이예요. 잘 익은 딸기나 사과를 먹을 때 입 안에 과즙이 고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제대로 된 약주를 만들고 나면 나머지 술은 쉬워진다는 이 대표의 말이 이제 와 이해가 갔다. 애당초 제대로 된 방향으로 길이 하나 나 있으면, 거기에 아스팔트 도로를 닦을지 철로를 놓을지 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궁금한 것이 있었다. 우리 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쌀을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원하는 술의 질감에 따라 더러는 밥을 짓기도 하고, 더러는 죽을 만들기도 하며, 더러는 떡을 앉히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쌀이 누룩을 잘 품을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 우리 술의 출발점이다. 풍정사계는 떡에서 시작한다. 이렇게 하면 술맛이 부드러워지지만, 덧술에 찹쌀이 들어가는 이상 자칫 질감이 지나치게 뻑뻑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풍정사계 추는 그런 느낌 없이, 입 안에서 맑다 싶을 정도로 가볍게 휘돌았다. 어떤 방법을 쓰는 것인지 궁금했다.

 

 

 

“일반적으로 막걸리는 술이 아직 끓고(발효되면서 가스를 뿜어내고) 있는 상태에서 내는 게 많아요. 그렇게 되면 청량감이 더 느껴지죠. 하지만 나는 완전히 발효가 끝난 다음에 술을 내요. 그 편이 사람 몸에 더 이롭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하는 거예요.”

 

 

이 대표의 관점에서 보자면, 아직 끓고 있는 술은 누룩의 효모들이 한창 일을 하고 있는 작업장이다. 바닥에는 자재와 공구들이 널려 있을 수 밖에 없고, 작업의 결과물도 아직 최종적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다. 그 작업을 잘 마치고 주변정리까지 할 시간을 효모에게 주고, 물조절을 섬세하게 하는 것이, 이런 깔끔함을 가능케 하는 비결인 듯했다.

 

 

 

 

 

 

 

 

 

가을 단풍이 지면 서리가 내리고, 처마에는 고드름이 매달린다. 투명하게 언 고드름을 연상시키는, 풍정사계의 42도짜리 소주 풍정사계 동을 맛볼 차례다. 최근 이 대표는 기존의 양조장 인근에 제 2 양조장을 열었다. 여기서는 당분간 소주만 생산할 예정이다. 그동안 증류설비의 능력이 수요를 충당하지 못해 언제나 공급이 달리는 상황이었는데, 제2양조장의 완공으로 상황이 나아지게 되었다. 그만큼 이 대표가 소주에 들이는 정성은 남다르다. 한 해의 살림살이가 겨울을 맞아 완결을 맺듯, 춘-하-추-동으로 이어지는 시리즈의 정점에 위치하면서 앞서의 세 술이 지니는 가치를 하나로 꿰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소주이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한국 식당을 하시는 분이 전통 소주를 매장에 내놓고 싶으시다며 저희를 찾아온 적이 있었어요. 제가 미리 말씀을 드렸죠. ‘저는 누룩으로 술을 빚고 저희 소주에서는 누룩 향이 많이 납니다.’라고요. 저도 막연히 외국 분들은 누룩 냄새를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예요. 하지만 그 분이 ‘술에서 누룩 냄새가 나지 않으면 그게 어디 우리나라 술인가요 ’라고 말씀해 주셔서 너무 큰 힘이 되었어요.”

 

 

코 끝에 가져간 풍정사계 동에서는 농축된 과일과 꽃의 향, 그리고 여기에 달콤한 쌀엿의 느낌까지 더해진  복합적인 향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입 안에 던져 넣자, 화악 피어나는 꽃향기 뒤편으로 갓 지은 흰 쌀밥의 구수한 냄새가 잠깐 머물다 사그라졌다. 타고 있는 모닥불을 뒤적였을 때 날리는 불티와 같은 강렬함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흰 눈을 뒤집어쓴 겨울 정원같은 서늘함과 단아함이 남았다.

 

 

 

“정말 좋네요. 코에서는 꽃인가 싶더니 입 안에서 과일이 되었다가 밥이 되었다가… 정신 없습니다.”

 

 

 

“사실 이 술도 처음 내렸을 땐 거친 맛이 훨씬 더 많아요. 지금 드시는 것은 1년을 숙성시킨 것이예요. 지금은 물량이 딸려서 겨우 겨우 1년을 채워 판매하는데, 제 2 양조장이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하면 여유가 좀 생겨서, 더 오래 숙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한 해에 생산된 술은 10%씩만 판매하고 나머지는 계속 숙성시킬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렇게 하다 보면 10년 넘게 숙성된 것도 나올 테니까. 저 스스로도 2년 후, 3년 후에 어떻게 변할지 많이 기대가 돼요.”

 

 

 

 

 

 

 

 

 

전통주 중에서는 그래도 과하주까지 포함하는 양조주-증류주의 짜임새 있는 라인업을 갖췄고, 청와대 만찬주에 선정되면서 충북 청주를 대표하는 술로 알려지게 되었지만, 이한상 대표는 여전히 힘겹게 보릿고개를 넘는 중이다. 제대로 된 숙성 소주를 내놓기 위해서는 생산량이 받쳐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설비에 큰 투자를 했고, 여기 들어간 돈이 판매 수입으로 회수되려면 아직 한참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이런 시기를, ‘죽음의 계곡’이라고 부른다.

 

 

 

“저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 중에는, ‘양조장을 어쨌든 열심히 운영해서 종국에는 대기업에 팔아먹어라’라고 하는 분들도 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아… 이 길이 잘못 선택한 것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대기업들도 필요성과 가능성은 느끼고 있는데 자신들이 직접 뛰어들 조건이 안되니 이 길을 가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잖아요. 사람이 극한 상황에까지 몰리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얘기지만, 지금으로서는 조금 더 미련을 떨어서 이 길을 계속 가 보고 싶어요. 사람들을 속이지 않고, 제대로 된 소주를 내리고 숙성해서 판매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뭐든 다 해볼 생각입니다.”

 

 

 

웃음 띤 얼굴로 나직하게 말했지만, 이한상 대표의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자기 누룩 하나에 10년을 쏟아부었던 충청도 사람의 고집이 묻어있었다. 그 고집에선 여러 번 덧술을 하고, 고리에 넣고 끓여도 사라지기는 커녕 더욱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잘 마른 향온곡의 냄새가 났다. 남은 잔을 털어 넣고, 서둘러 다음 잔을 청했다.

 

 

 

 

 

 

 

 

 


 

 

글 : 탁재형 PD

 

 

탁재형 PD는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15년간 50개국을 취재하며, 세상의 넓음과 사람살이의 다양함을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2002년 ‘KBS 월드넷’을 시작으로 ‘도전! 지구탐험대’, ‘세계테마기행’, ‘EBS 다큐 프라임-안데스’ 등 해외 관련 다큐멘터리를 주로 제작했으며 2013년부터 여행 부문 팟캐스트 부동의 1위인 ‘탁PD의 여행수다’를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여행 산문집 『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어』김영사(2016), 세계 음주 기행기 『일은 핑계고 술 마시러 왔는데요 』시공사(2020)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