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칼럼

[장새별의 한국술 칵테일 이야기] 고소리술로 만든 NUTTY & SAVORY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21-06-02
  • 조회수 143





사진출처: 인스타그램 @jeju_island_brewery

 

 

 

 


“한국 술로 칵테일을 만들 때 어떤 점이 어려워요?”

 

고백하건대, 이런 낯부끄러운 질문을 서슴없이 던지던 시기가 있었다. 어려운 점이라고 에둘러 썼지만, 주로 쌀과 누룩으로 빚는 한국 술 특유의 향을 나도 모르게 극복해야 할 지점으로 여기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면죄부를 하나 주자면, 한국 술 칵테일은커녕 서울에서 한국 술 전문점을 열 손가락과 열 발가락이면 충분히 셀 수 있을 정도의 시기였다.

 

생각에 변화가 생긴 건 여느 때와 같이 질문을 던졌을 때 돌아온 한 바텐더의 답변 덕분이었다. “감추려고 하면 단점이 되지만, 드러내면 ‘매력’이 돼요. 한국 술이기 때문에 어려운 점은 없어요.”

 

이후 한국 술 칵테일을 대하는 나의 질문도 달라졌고, 바의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백 바BACK BAR(바 뒤에 술이 진열되어 있는 곳) 한 편을 한국 술로 가득 채우고 바의 정체성으로 삼는 곳들이 제법 생겼는가 하면, 한국 술을 테마로 삼지 않은 곳에서도 메뉴 한두 개 정도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럴 때 확실히 저변이 확대되었음을 느낀다.

 

 

 

장새별 에디터 제공

 

 


그중 최근 나의 시선, 정확히는 입맛을 사로잡은 바는 청담에 위치한 <제스트>다. 새로운 곳을 다녀야 한다는 직업적 사명(?)을 뒤로하고 올해 봄철에만 내리 다섯 번을 방문했을 정도다. <제스트>는 지난해 12월, 바 업계에서는 학구파로 소문난 김도형, 우성현, 권용진, 박지수 바텐더가 합심해 문을 열었다. 학구파라고 하면 왠지 책 속에 파묻힌 모범생 이미지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그들의 공부는 비단 책 속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서양에서 기인한 바 문화에 한국적인 가치를 체화 시키기 위해 오픈 전부터 지역 농장으로, 양조장으로, 서울의 도시 양봉장으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 다녔다. 그렇게 제주 한라봉과 당근, 간장, 서울의 꿀, 식혜 등 로컬의 맛을 구석구석 녹여낸 다양한 메뉴들이 탄생했다.


하나하나 맛보는 재미로 다니는 와중에도 방문하는 동안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주문한 칵테일은 ‘Nutty & Savory’다. 본래 허브 증류주인 진과 이탈리안 허브 리큐어 등으로 만드는 클래식 칵테일 네그로니를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진 대신에 제주의 고소리술을 사용했는데, 마실 때마다 ‘감추려고 하면 단점, 드러내면 매력’이라는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고소리술을 단순히 ‘진’의 대체제로 생각하고 접근했다기 보다, 고소리술이 가진 그윽한 꽃 향과 좁쌀에서 오는 고소한 향을 장점 삼아 ‘결이 다른’ 네그로니 한 잔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였다. 본래 레시피에서 리큐어가 주는 단맛은 딸기를 인퓨징한 포트와인으로 대체했는데, 소줏고리로 술을 내리는 과정에서 고소리술에 입혀진 은은한 불향을 부드럽게 감싸주며 조화를 이루었다. 탈리안 허브 리큐어가 워낙 복합적인 맛과 향을 지니고 있어 그대로 사용했다면 고소리술의 매력을 이렇게까지 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인스타그램 @rain.0075, 인스타그램 @jeju_island_brewery

 

 


<제스트>가 이런 칵테일을 만들어 낸 데에는, 단순히 한국술을 사용하는 것 너머에 가치를 두고 있다. 지역과의 상생을 통한 지속 가능성이다. 업장명 ‘제스트’ 역시 음료에 향을 입히는 시트러스 껍질을 뜻하는 동시에 제로 웨이스트의 준말로, 칵테일에 사용하고 남은 과일이나 채소, 버터를 가니시로 적극 활용하는 등 지속 가능성에 속하는 다방면의 가치를 실현해 나가고 있는바. 앞으로 또 어떤 지역의 술을 제스트만의 스타일로 소개해 나갈지 기대해본다.

 

 

*칼럼 게재 후 일부 메뉴에 변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글: 장새별 (F&B 전문 에디터)

먹고, 주로 마시는 선천적 애주가다. 블루리본서베이, 식품 신문사를 거쳐 미식 매거진 <바앤다이닝>에서 오래 일했다. 퇴사 후에도 레스토랑과 바를 찾아다니며 일과 취미의 경계가 허물어진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