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칼럼

전통주 칼럼:: 눈 보며 마시는 술 I 백웅재 작가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21-12-24
  • 조회수 1248

 

 

 

 

올해 겨울은 바쁘다. 지방에 거주한 지 5년 차. 그 첫해부터 연말 송년회 시즌에 사람 만나는 것은 서울살이 하던 때보다 벌써 많이 줄었었다. 그런데 올해는 벌써 매주 하루 이틀씩 서울 오는 날 일정표가 빼곡하다. 코로나로 거의 2년간 사람 만남을 자제해와서 얼굴 못 보고 지낸 사람들이 워낙 많기도 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된 순간 오미크론이라는 초강력 변이가 등장했다는 말에 조바심이 나서이기도 할 것이다. 당장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우리나라에도 이 변이가 상륙했다는 오피셜이 떴다. 글이 나갈 때쯤 되면 어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기회 있을 때 볼 사람은 봐두자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요리를 하고 술을 소개하는 것이 직업이다 보니 만남의 장소 섭외는 대개 필자에게 배당되는 임무이다. 서울에 안 산지 오래되어서 요즘 핫하다는 집들은 안 가본 곳이 많으니 조금은 당혹스러운 임무이기도 하다. 다행히 근래에는 주요 상권뿐 아니라 서울시내 어디라도 지하철역 한두 개 거리 안에는 괜찮은 한주 전문점들이 있어서 그런 곳들을 위주로 장소를 정하고 있다. 코로나로 외식업이 역사적인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새로운 한주들도, 한주 전문점들도 풍성하게 생겨난 한 해였다. 2020년을 기점으로 한주(전통주)의 전체 주류시장 점유율이 1%를 넘었다고 하니 말이다.

 

 

 

 

 

 

 

 

강릉, 주문진에 돌아가면 볼 사람은 훨씬 적지만 그래도 모임은 이어진다. 타향에서 이주해와서 강릉에서 만나 친해진 사람들, 현지에서 사귀게 된 강릉 토박이들, 그리고 더러는 여행 왔다가 찾아주는 반가운 손님들. 혹은 조용히 혼술.

누구와든 눈 보며 술 마시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강릉은 눈이 많기로 유명한 고장, 한 번 오면 발목까지 빠지는 눈은 예사다. 그렇게 쌓여도 ‘소복소복’한 수줍은 소리를 내며 조용히 내려온다. 그 눈이 땅이 아니라 바다에 떨어질 때는 소리도 없고 흔적도 없다. 눈을 보고 있으면 차분해진다. 같이 술을 마셔도 어딘가 말수가 적어지고 생각이 많아지는, 눈으로 배경음악 삼고 안주도 삼는 술자리.

 

 

 

 

 

 

 

 

술은 무얼 마실까. 문득 떠오르는 것이 양평 아이비 영농조합의 허니문와인이다. 10도라는 도수, 걸리는 것 없이 매끈하고 유연한 단맛에 살짜기 엑센트를 주는 감귤향. 담백한 눈 안주에 딱 어울리는 느낌이다. 깨끗한 눈 뭉쳐서 작은 유리잔에 넣고 따라 마시면 운치가 그만일 것이다. 연인들의 연말 여행이라면 이렇게 마셔보는 것도 좋겠다.

 

 

 

 

 

 

 

 

울산 운곡도가의 토끼구름 막걸리는 어떨까. 이 술은 구름 같은 부드러움이 포인트다. 마셔보면 정말 토끼구름을 느낄 수 있다. 술맛이 소복소복하다. 혼자 참선하듯 눈멍 때리다가 문득 정신이 들어 한 모금씩 마시기에 좋을 것 같다.

 

 

 

 

 

 

 

 

정읍의 송명섭 막걸리는 어떨까. 이 술은 특히나 늦가을에 빚은 버전이 조용하고 안정적인 편이다. 눈으로 빚은 듯 담백한 술이지만 술맛의 미묘한 부분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눈이 오는 줄도 모르고 열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오미크론은 전파율이 높지만 백신 접종자들에겐 증상은 가벼운 편이라는 남아공 현지 의사의 인터뷰가 들어왔다. 부디 다들 무사히 이 겨울을 날 수 있기를.

내년은 만남이 자유로운 사회가 되길 기원한다.

 

 

 

 


 

 

 

 

글: 백웅재 작가 / 한주 전문점 ‘얼터렉티브 마켓’(Alteractive Market)’ 대표

백웅재 작가는 주문진에서 한주(韓酒) 전문점 ‘얼터렉티브 마켓’을 운영하며 사라져 가는 우리술과 먹거리를 찾아, 다양한 한주 상품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네이버에서 ‘허수자’라는 파워블로거로 활동하며 전국의 맛집과 한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 국가대표 전통주 소믈리에 경기대회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저서로는 『술맛 나는 프리미엄 한주』 따비(2016), 『우리 술 한주 기행』 창비(2020) 등이 있습니다.

 

 

 

 

*지나친 음주는 뇌졸중, 기억력 손상이나 치매를 유발합니다. 임신 중 음주는 기형아 출생 위험을 높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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