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칼럼

[탁PD의 우리술 로드] 삼해주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21-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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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통에서 꽈배기를 만들어 파는 분이든, 중화만두 전문점에서 딤섬을 빚는 분이든, 달인의 몸짓 손짓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오랜 기간 동안 한 가지 작업에 몰두해 온 사람의 동작이 아름다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군더더기를 모두 제거해 버렸기 때문이다.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양질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최소한의 동선. 그것이 달인이 범인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비록 그런 개인적인 성취들이 한 사람의 생애와 함께 전성기를 맞이하고, 이내 사라져 버린다 하더라도 달인들이 대를 이어 축적한 ‘제법’(製法)은 시간을 뛰어넘어, 아니 오히려 시간이 지날 수록 안에 담긴 우아함을 뽐낸다. 한때 가장 많이 만들어졌고, 많은 사람들에 의해 향유되었던 품목의 제법 안에는 한 시대를 빛냈던 명인들의 지혜와 정신이 켜켜이 쌓여 있는 것이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8호에 등재되어 있는 ‘삼해주’(三亥酒)는 그 좋은 예다.

 

삼해주는 특정한 양조장이 독점할 수 있는 브랜드명이 아니다. 매해 정월에 밑술을 안쳐 첫 번째 돼지날(亥日)에 첫 덧술을 하고, 36일을 기다려 다시 돌아오는 돼지날에 두 번째 덧술을, 그리고 또 돌아오는 돼지날에 마지막 덧술을 하는 제법의 이름이다. 세 번의 돼지날에 걸쳐 나누어 만드는 술이어서 삼해주(三亥酒)다. 밑술을 안치는 날부터 맑은 술을 뜨기까지 최소 115일(밑술 후 일주일 + 덧술마다 36일씩 세 번)이 걸린다. 이 술에 대한 기록은 고려시대 때부터 찾아볼 수 있지만, 본격적으로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조선시대 때 부터다. 왕조실록을 찾아보면, 흉년이 들었을 때 신하들이 단골 대책으로 건의하는 것이 ‘시중의 삼해주 빚기를 금하라’는 것이었다. 세 번을 덧술하는 고급술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곡식이 많이 들어갔던 것이고, 그러다 보니 나라의 살림이 쪼들릴 때 점잖 빼는 유생들의 1차 타겟이 되었던 것이다. (모름지기 그들도 상소문을 올리고 집에 가서 꼬불쳐 놓은 삼해주를 마셨을 것이라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 정조 때의 기록을 보면, 이렇게 삼해주 빚는 것을 금하자는 한성판윤(지금의 서울시장)의 건의에 임금이 이렇게 답을 한다. ‘삼해주가 이미 다 익었는데 그럼 기왕에 빚어놓은 술을 그냥 내다 버리자는 말이냐 ’ 여기서 알 수 있는 두 가지 사실이 있다. 정조대왕께서 삼해주가 언제 빚어 언제 출하되는 술인지 이미 알고 계셨다는 것과, 이 술을 못 먹게 되는 것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긴 장원에 급제한 유생들을 모아 놓고 잔치를 시작하며, ‘옛 사람의 말에 술로 취하게 하고 그 덕을 살펴본다고 하였으니, 너희들은 모름지기 취하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을 줄 알아라’라고 했던 애주가 임금이셨으니 한양 장안의 술꾼들이 가장 사랑했던 술, 삼해주를 모르셨다는 편이 오히려 더 이상하다.

 

삼해주에 들어가는 곡식의 양과 정성을 생각하면, 경제력이 뒷받침 되었던 서울 지역을 대표하는 술로 남아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현재 서울시엔 삼해주 명인이 두 분 계시다. 삼해 약주(청주) 기능보유자인 권희자 명인과 삼해 소주 기능보유자인 김택상 명인이다. 김택상 명인이 삼해주의 전통 제법을 보급하고 애호가를 양성하는 데 힘을 쏟고 있는 북촌의 삼해소주가를 찾았다. 현재 몸이 불편한 명인은 뵐 수 없었고, 2016년부터 삼해소주가와 아카데미의 모든 실무를 도맡아 해오고 있는 김현종 대표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김 대표는 과거 중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대륙의 술을 폭넓게 맛본 경험이 있다. 그런 그의 이력과 삼해주에 대한 애정이 합쳐지니, 술에 대한 설명이 시간과 공간을 넘나든다.

 

 

 

 

 

“조선시대 때 다른 술에 비해 생산량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것이 삼해주입니다. 가양주는 아무리 유명한 것들이라도 해마다 10-20 항아리 정도 빚었을 것 아녜요. 하지만 삼해주는 기본적으로 전문 업자들에 의해 생산되던 술입니다. 조선시대 때는 마포 쪽에 양조장이 많았는데, 기록에 보면 많이 빚는 업자들은 한 해에 수천 독을 담았다고 합니다. 수천 독이면 2천은 아닐 것이고, 최소 3천은 되지 않겠습니까 보통 한 항아리에 300-400리터가 들어가는데, 그렇게만 계산해 봐도 업자 한 명의 연간 생산량이 100만 리터가 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많이 만들다 보면 기술의 발전이 있었을 수 밖에 없죠.”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얼른 술이 마시고 싶어지는 것을 참기 힘들다. 서둘러 첫 을 따랐다. 삼해주의 기본, 삼해 약주였다. (실제로는 맑은 술이니, 삼해 청주가 맞을 것이다. 우리 전통 제법으로 만든 청주를 약주라 부를 수 밖에 없는 주세법은 속히 개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흰 잔에 술을 붓자, 채도 낮은 노란 빛깔이 섬세하게 어른거린다. 코에 가져가니, 한 가지로 표현할 수 없는 복합적인 향이 술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향 안에는 과일도 있고, 밥도 있고, 김치도 있고, 향신료도 있다. 입에 머금으니 두 갈래로 정리가 된다. 살포시 날아오르는 바닐라의 향, 그리고 뒤를 개운하게 정리하는 옅은 동치미의 맛이다. 이 두 가지가 순하고 둥글게 혀를 쓸고 간다. 깨끗하다.

 

“먹어 본 어떤 약주와도 다르네요. 누룩의 향도 가리려고 하기 보다는 더 살려서 좋은 향을 남기는 정공법으로 가는 것 같아요.”

 

“처음 제가 합류했을 때만 해도 누룩의 양이 쌀 양의 50%까지 들어갔어요. 지금은 25%까지 줄였습니다. 그래도 다른 전통주에 비해 굉장히 많이 쓰는 편이죠. 누룩을 많이 쓰게 되면 그 안에 오만가지 미생물이 활동을 하게 돼요. 그것들이 다 저마다 뭔가를 만들어 내는 거죠. 효모균만 딱 넣어서 만들어지는 건 술이 아니라 알콜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술을 마시고 싶은 거지 알콜을 마시고 싶은 건 아니잖아요.”

 

누룩은 미생물과 효소의 복합체다. 누룩을 띄우는 장소에 살고 있는 곰팡이와 효모균을 불러들이는 초대장이자, 그들이 술덧과 만날 수 있도록 운반해 주는 교통수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주변 환경과 교감하는 방식의 전통 누룩을 많이 쓰게 되면 빚을 때마다 일정한 맛을 내기가 힘들어 지기도 하고, 워낙 다양한 맛과 향이 나는지라 그런 술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에겐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음용성을 강조하며 우리 누룩보다 일제시대에 전해진 개량 누룩, 입국(粒麴)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누룩을 많이 썼으면서도 잡스러운 향이 없는 깔끔한 술을 마주하게 되면 뭔가 저릿한 쾌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한 발만 헛디디면 떨어지는 아득한 낭떠러지 위를, 평온하기 이를 데 없는 표정으로 사뿐히 뛰어다니는 아이벡스 산양의 걸음걸이를 보는 기분이다.

 

바로 이어서 45도의 오리지널 삼해 소주 맛을 보기로 했다. 삼해 약주를 완성한 뒤 이것을 증류해 얻는 술이다. 원주가 17도를 넘다 보니, 한 번의 증류로 45도에 너끈히 도달한다. 원주의 도수를 높여봤자 7-8도인 서구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효율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아직은 생산량이 적어 충분히 숙성시킨 소주를 맛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평균잡아 두 달 정도 기다려서 병입을 해요. 더 오래 묵히면 당연히 더 맛있어지죠. 그래도 숙성 기간에 비하면 굉장히 부드러운 맛을 냅니다.”

 

 

 

 

 

코에서부터 다른 전통 소주와 결이 다르다. 꽃이나 과일같은 향이 먼저 올라오기 마련인데, 갓 지은 밥의 냄새가 느껴진다. 벨기에의 고도수 맥주 중에는 구운 빵냄새가 나는 것들이 많아 ‘액체 빵’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렇듯 사람들이 늘 먹는 먹거리와 술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부분의 감성을 터치할 수 있는 술이야 말로, 오래 사랑받는 술이 된다. 삼해 소주는 그런 면에서 우리의 ‘소울 푸드’가 아니라 ‘소울 스피릿’이 될 자격을 충분히 갖췄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데, 향부터 밥의 정취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소주라면 더 이상 말해 무엇하겠는가.

 

입에 머금은 삼해 소주는 한층 더 복잡한 색깔로 변화한다. 양조주 상태에서부터 맛과 향의 레이어가 많기 때문에, 그것을 증류단계에서 농축시켰다가 입 안에서 한 방에 ‘촹’하고 폭발시켜 주는 느낌이다. 누룩을 많이 쓰지 않고 정순한 맛을 추구한 소주가 현악 4중주의 고급스러움을 목표로 한다면, 삼해 소주는 정규 편성의 오케스트라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곡물향이 많이 나는 소주가 구수하게 흘러가다가 마지막에 중심을 잃으면 역하게 탁 하고 혀끝을 치는 경우가 있는데, 삼해 소주는 구수하게 시작해서 화사하게 터뜨렸다가 둥글게 가져가는 느낌으로 피니쉬를 맺어요. 너무 부드러워서 살짝 위험할 정도네요.”

 

“이 소주를 드시면서 마리아쥬나 페어링에 대한 것들을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럴 때마다 말씀드립니다. 식사 다 하시고 이것만 드시라고요. 우리가 아는 일반 소주처럼 시뻘건 아구찜 같은 것과 함께 드시기엔 취하는 거야 똑같지만 아깝잖아요. 식사 마치신 후에, 위스키잔 같은 데다 얼음 하나 넣으시고 술 자체를 즐겨 주십사 말씀드리곤 하죠.”

 

삼해 소주를 마시다 보니, 일본 술과 비교되는 지점이 많이 보였다. 일제 시대 이래, 일본식의 술제법은 전통주 양조에 여전히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1916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주세령이 제정된 이래, 일본식의 흩임누룩(입국 粒 ))을 쓰지 않고 전통 방법대로 만든 ‘맑은 술’은 ‘청주(淸酒)’라는 자연스러운 이름을 쓰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대신 허락받은 이름이 ‘약주(藥酒)’다. 일본 식의 ‘세이슈(청주 淸酒)’와 우리 고유의 청주가 혼동되지 않도록, 우리술의 족보에서 ‘청주’라는 이름을 파내 버린 셈이다. 물론 약주라는 명칭이 맑은 술을 높여 부르는 명칭으로 사용되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은유적 표현에 해당했다. 직관적으로 탁주(濁酒 흐린술)에 대비되는 청주라는 명칭을, 우리의 전통 양조 방법을 지키는 한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발전된 청주, 니혼슈(日本酒)와 우리술은 그 특성과 추구하는 바가 너무나 다르다. 일본의 니혼슈가 예리한 칼로 참치 대뱃살만을 도려내 간장에 살짝 찍은 단품 사시미라면 우리의 청주는 상추쌈이다. 그 안에는 참치 대뱃살은 물론이거니와, 약간의 밥도, 마늘 한 쪽도, 쌈장도, 원한다면 갈치속젓도 들어갈 수 있다. 그 쌈이 입 안에서 터질 때의 기분 좋은 파열감처럼, 복합적인 맛과 향을 낼 수 있게 해 주는 존재가 누룩이고, 누룩을 쓰는 것이 우리술이다. 이것은 크래프트 맥주에서 미국 홉이 해주는 역할과 유사하다. 술의 다양성이 극한까지 다다를 수 있게 해주는, 쌈밥의 속재료와 같은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삼해 소주는 그 누룩의 향을 소주 단계까지 끌고 와 폭발시키는 폭죽 같았다. 일본의 ‘쇼츄’가 쌀이면 쌀, 고구마면 고구마, 한 가지의 색을 가지고 높게 올라가 터지는 폭죽이라면, 삼해 소주의 향은 훨씬 컬러풀하게 여러 번 터지는 불꽃이었다. ‘으흥 이런 색깔이 원래 불꽃놀이에 등장하던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당신이 한강변 불꽃놀이 달력을 쳐다보기 게을리 한 탓이다.

 

 

 

 

 

 

 

 

수도권 제일의 전통주를 잇고 있다는 자부심에서 오는 자신감일까. 삼해소주가의 제법에는 미국의 크래프트 양조장을 방불케 하는 실험적인 것들도 많다. 원주가 우리 술 역사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삼해 소주라는 것만 남기고, 나머지 재료들을 다양하게 바꿔 가며 진행하고 있는 실험은 지금도 계속 진행중이다. 밑술을 담글 때 물 대신 포도즙을 사용한 삼해 포(캠벨포도즙 첨가 증류소주. 50도)나 삼해 귤(제주 감귤 및 진피 첨가 증류소주. 50도), 삼해 국(국화차 첨가 증류소주. 50도), 삼해 고(누룩에 상황버섯 분말 혼합 증류소주. 50도) 같은 일반 증류주들이 그 실험의 결과물이다. 심지어는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생성된 지 100만년이 넘은 물질을 넣은 소주도 있다.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삼해주가의 시음행사에 참여해 보도록 하자.) 하지만 이런 배리에이션은 아카데미에 참여한 수강생들을 상대로 레시피를 전수할 뿐, 상품화에 이르지는 못했다. 촘촘한 전통주 관련 법규를 통과하기에 벅찼기 때문이다. 김택상 명인이 가장 좋아하는 사자성어는 연암 박지원의 책에 나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고 한다. 공자가 이야기한 ‘온고지신(溫故知新)’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개념이다. 옛 법을 지키면서도, 그에 뿌리를 둔 새로운 것들을 계속 시도해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미국식 크래프트 맥주의 열풍이 ‘금지된 것 이외의 모든 것은 허용된 것으로 본다’는 법 정신 위에서 출발한 것임을 감안할 때, ‘허용된 것 이외의 모든 것은 금지한다’는 식의 우리 식품위생법이 과연 K 푸드, K 스피릿의 발전과 보급에 도움이 되는지 재고해 볼 시점이라는 생각이다.

 

마지막 순서는 삼해 소주를 한 번 더 증류해 얻는, 71.2도의 삼해 귀주(鬼酒)를 마셔볼 차례였다. 이중증류의 제법이라고는 하지만, 그 사이에 뭔가 밝힐 수 없는 비법이 하나 들어간다는 김 대표의 설명이었다. 비밀을 품은 귀신의 술. 우리술의 네이밍에 이 정도의 결기와 자신감이 들어간 작품이 있었던가. 그 실체가 궁금했다. 코에서 느껴지는 향은 삼해 소주에 비해 오히려 더 단순하고 침착했다. 실체를 이미 알기에, 그 과묵함이 오히려 더 오싹하게 느껴졌다.

 

입술만 축였을 뿐인데, 온 몸이 차오른다. 단 한 모금, 아니 한 번의 접촉으로 0에서 1이 된다. 입을 대기 전이 차안(此岸)이었다면 댄 후는 피안(彼岸)이다. 한 방울로 삼도천이 뒷전에 있다. 사람과 귀신을 가르는 술. 사람이 마시면 귀신이 되고, 귀신이 마시면 사람이 된다는 술 이름의 뜻이 어질한 머릿속을 맴돌았다. 제일 가벼운, 순수한 알콜만 날아와 앉았을 것인데 난데없는 시나몬의 향이 스쳐간다. 이것마저 귀신의 조화일까. 아랫배에서는 어느새 더운 기운이 몽글몽글 올라오기 시작한다. 몸이 피어나는 느낌이다. 말이 없어진 나를 향해 김 대표가 말을 건넸다.

 

“예전에 호주 사람이 시음하러 온 적이 있어요. 자기 아버지가 해준 이야기가 있는데, 나쁜 위스키는 속을 갉으며 내려가고 좋은 위스키는 내려간 뒤에 좋은 열기를 뿜으며 올라온다고 하셨대요. 이 귀주가 자기 아버님이 말씀한 좋은 술에 딱 맞는 술이라고 하더라고요.”

 

귀주의 열기를 느끼며, 니혼슈의 발전을 부러워했던 지난날을 반성했다. 통제 불가능해 보이는 변수들을 아무렇지 않게 조화시키며, 그 안의 정수를 날카롭게 벼려 한 점으로 집중하는 화엄(華嚴)의 세계가 술잔 속에 있었다. 술의 울림이 계속되는 동안, 귀신이 나고 내가 귀신이었다.

 

 

 

 


 

글 : 탁재형 PD

 

탁재형 PD는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15년간 50개국을 취재하며, 세상의 넓음과 사람살이의 다양함을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2002년 ‘KBS 월드넷’을 시작으로 ‘도전! 지구탐험대’, ‘세계테마기행’, ‘EBS 다큐 프라임-안데스’ 등 해외 관련 다큐멘터리를 주로 제작했으며 2013년부터 여행 부문 팟캐스트 부동의 1위인 ‘탁PD의 여행수다’를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여행 산문집 『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어』김영사(2016), 세계 음주 기행기 『일은 핑계고 술 마시러 왔는데요 』시공사(2020)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