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칼럼

전통주 칼럼:: 장새별의 한국술 칵테일 이야기 너브내 와인이 바텐더를 만났을 때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21-07-29
  • 조회수 942

“괜찮은 한국 와인 좀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퍽 난감한 질문이었다. 다른 주류에 비해 한국 와인에 대한 경험이 적었을뿐더러, 한두 번 맛본 기억으로 추천을 해도 될까 조심스러웠다. 질문을 던진 이가 바텐더라 더욱 그랬다. 그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나는 ‘칵테일로 만들기 괜찮은’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 것이라 짐작했기 때문이다.  

 

 

마실 때마다 짤막하게 적어 둔 기록물을 뒤져 하나를 건져 올렸다. ‘청향 품종. 황금빛. 응축된 청포도 아로마. 씨가 없는 품종인데 특이하게 포도씨의 맛과 향이 은은하게 느껴짐. 마무리가 깔끔하고 온화함. 겨울에 맛이 찬 등 푸른 생선 요리와 먹기 좋은 와인’ 정도로 적혀 있는 내용을 전달하면서, 출시를 앞두고 맛만 본 것이라 장담은 못 한다고 발을 살짝 뺐다. ‘너브내 화이트 드라이’에 대한 기억이다. 발을 뺀 것치고는 이 와인에 대한 나의 호감은 분명했다. 시음 당시 멀찍이 떨어져 있던 임광수 메이커를 부러 찾아가 인상적이었다고 인사를 건네고 돌아왔으니까. 칵테일로 만들기 좋은 술을 추천해야 한다는 필요 이상의 의무감이 와인을 덜 빛나게 한 것 같아 내심 미안했다. 나는 그렇게 주춤했고, 바텐더는 내가 물러선 만큼 한 뼘 더 적극적이었다. 내친김에 홍천에 위치한 양조장을 가보자고 한 것도 그, 바 <참>과 <뽐>을 운영하고 있는 임병진 바텐더다. 

 

 

현장에서 맛을 본 바텐더는 “버무스처럼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전했다. 버무스는 와인에 브랜디나 당분을 섞어 주정 강화한 후 향료나 약초로 특색 있는 향을 가한 리큐어로 바에서는 필수품이다. 맛과 향에 기반해 용도를 정한 실용적 평이었는데, 내심 내가 기대하는 바는 따로 있었다. 그와 바의 크루들은 틈이 나면 지역 양조장과 칵테일에 사용하는 1차 농산물이 재배되는 현장을 찾고 있다. 그리고 돌아와 단순히 맛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느낀 이미지들을 체화 한 결과물을 내놓곤 한다. 그간 그런 칵테일들을 설명으로만 들어왔다면, 이번엔 양조장을 함께 방문한 만큼 그 결과물이 더욱 기다려졌다. 

 


 인스타그램 @osteria_pomelo

반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 <참>에서는 넓은 천을 뜻하는 홍천의 옛 지명이자 와인의 이름을 딴 ‘너브내’ 칵테일이, <뽐>에서는 ‘비탈펀치’라는 이름의 칵테일이 완성됐다. 완전히 다른 느낌의 두 가지 칵테일이지만 이미지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론부터 요약해보면 ‘얕은 비탈길을 내려와 만난 냇가’랄까. 

 

 

먼저 <뽐>의 ‘비탈 펀치’는 상큼한 청포도 향을 기반으로 한 기분 좋은 산미가 가장 먼저 반겨주고 발효된 차에서 느껴지는 흙 향의 여운도 느껴진다. 보성 홍차와 진, 너브내 와인, 사과 코디얼, 꿀 시럽과 레몬의 조합으로 재료 각각의 풍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셰이킹 시간을 짧게 줄였다고 한다. ‘완만한 경사’의 과일나무가 있는 산비탈을 걸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홍천 양조장의 풍경이 떠오르는 한 잔이었다. 

 

 

반면, <참>의 ‘너브내’는 냇가에 발을 처음 담글 때 느껴지는 ‘쨍한’ 차가움이 밀려온다. 단순히 온도를 말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칵테일이 서브되는 온도가 ‘비탈펀치’보다 낮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보다는 테이블 위에 놓이자마자 사방으로 퍼지는 민트 향, 마실 때 끼치고 들어오는 오이향, 압생트의 강렬한 허브향이 주변의 온도와 확연히 다른 곳으로 입장하는 느낌을 준다. 그 온도에 익숙해지고 나면 너브내 와인이 가진 포도씨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 

 

 

생산지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빚은 아름다운 결과물이었다. 


 (좌) <뽐>의 비탈펀치, (우) <참>의 너브내

글: 장새별 (F&B 전문 에디터)

먹고, 주로 마시는 선천적 애주가다. 블루리본서베이, 식품 신문사를 거쳐 미식 매거진 <바앤다이닝>에서 오래 일했다. 퇴사 후에도 레스토랑과 바를 찾아다니며 일과 취미의 경계가 허물어진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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