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칼럼

전통주 칼럼:: 탁재형 PD의 우리술 로드 | 복순도가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22-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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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콘'은 원래 기독교에서 성모나 성인들을 그린 그림을 뜻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뜻보다는, 컴퓨터 바탕화면에서 실행프로그램으로 바로 갈 수 있게 해주는 조그마한 픽토그램을 부를 때 더 많이 쓰인다. '아이콘'의 또 하나의 용례는, 'OO의 아이콘' 같은 형태로 쓰이는 것이다. 이 경우의 의미를 나름 정의해 보자면, '동시대에 존재하는 어떤 사물이나 직종의 카테고리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표상'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대표한다는 것의 의미는, 양이나 질로 압도한다는 것보다는 시대가 요구하는 맥락을 가장 잘 드러내 보여준다는 뜻이 될 것이다. 90년대 한국 대중음악 씬에서는 서태지가 그런 존재였고, 2천년대의 모바일 기기 씬에서는 아이폰이 대체 불가의 아이콘이었다. 이런 아이콘들은 인물과 사물을 막론하고 몇 가지 공통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일단 이들은 어디 하늘에서 툭 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서태지는 당시에 이미 미국에선 메인스트림 장르였던 힙합에 헤비메탈과 하우스뮤직을 가미해 자기류의 댄스음악을 만들어 냈다. 아이폰 이전에도 (물리적 키보드가 달린) 스마트폰과 휴대용 음원재생기, 그리고 무선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노트북 컴퓨터는 존재했다. 이것들을 하나의 기기로 통합한 것이 애플의 스마트폰이었을 뿐이다. 이들이 아이콘으로 등극할 수 있었던 요인은 통합과 재조합의 방향성에 있었다. 새로운 혁신의 화살표가 이전 세대부터 누적되어 온 변화의 에너지와 같은 방향을 가리켰을 때, 그 결과는 폭발적이었다. 서태지는 기성세대가 듣던 발라드와 트로트 음악과는 명확하게 구별되는, 좀 더 힙하고 신나는 음악을 필요로 하던 X세대의 취향을 저격했다. 아이폰은 이미 네트워크와는 떨어져 존재할 수 없게 된 디지털 유목민들이, 언제 어느 곳에서든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있을 수 있게 만들어준 최적의 솔루션이었다. 이런 아이콘들은 결국, 시장의 생태계 전체를 뒤집어 놓는 빅뱅을 일으켰다.

 

 

 

 

 

 

수십 년이 흐른 뒤에도 우리술의 커다란 도약기였다고 평가될 것이 분명한 2020년대, 시대의 아이콘으로 기억될 우리술 브랜드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떠오르는 이름들이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군에 속해 있는 것이 바로 울산광역시 울주군에 위치한 복순도가다. 2000년대 중반, 가장의 사업 실패를 딛고 재기하기 위해 조그마한 가족기업으로 출발했던 복순도가는 2022년 현재 가장 핫한 우리술 브랜드 중 하나로 성장했다. 알코올 도수 6.5%의 탄산막걸리 '복순도가 손막걸리'가 2012년 서울 핵안보 정상회의 만찬주로 깜짝 선정되어 이름을 알린 이래, 복순도가는 차츰 브랜드의 가치를 높여왔다. 2015년엔 영국 주류 품평회 IWSC에서 은상, LA 국제 와인 경연대회에서는 동상을 탔고, 2019년엔 '전통주 전문점 협의회'가 선정한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우리술 목록에 막걸리 부문 5위로 이름을 올리더니, 2021년에는 국내 최대규모의 전통주 전문점 '백곰막걸리'에서 선정한, '한 해동안 가장 많이 팔린 막걸리'가 되었다. 하지만 복순도가가 시대의 아이콘으로 등극할 수도 있겠다는 예감은 단순히 이런 유명세와 판매고에 바탕한 것이 아니다.

 

 

 

 

 

 

 

 

복순도가의 진정한 잠재력이 느껴지는 부분은, 자신들의 술을 중심에 놓고 벌이고 있는 다양한 프로젝트들이다. 2021년, 복순도가는 아모레퍼시픽과 협업해 '빨간쌀 진액 스킨' 한정판을 선보였다. 전통주 제조에 쓰이는 붉은 누룩, 홍국균을 이용한 화장품이다. 기존에 이미 판매되고 있었던 제품이지만 패키지 디자인에 복순도가의 브랜드명과 컨셉디자인을 반영하고, 구매자에게는 집에서 복순도가 막걸리를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홈 브루잉 파우더를 증정해 인기를 끌었다. 화장품업체 측에는 우리술 전문 브랜드의 전문성이 반영된 누룩곰팡이 함유 제품이라는 신뢰성을 더해 주고, 복순도가 측에서는 국내 최고 화장품 브랜드가 가지는 세련미와 프리미엄을 가져올 수 있는 윈윈 전략이었다.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도 '복순 화장품'이라는 브랜드명으로 직접 빚은 누룩에서 얻은 천연 효모와 아로마 오일을 이용한 기능성 화장품을 만들고 있다. 2022년엔 'MZ세대의 놀이터'로 통하는 유명 백화점 편집샵과 컬래버레이션 패키지를 선보였다. 벚꽃놀이 시즌을 맞이해 탄산막걸리가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는 디자인을 형상화한 피크닉 매트와 복순도가의 이름이 들어간 일회용 필름카메라, 그리고 특별한 디자인이 가미된 손막걸리 세 병에 이 모든 것이 들어가는 소풍가방이 구성품이다. 패키지 어디에서도 논두렁에서 밭일 하다 마시는 '농주' 막걸리의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다.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세대가 흩날리는 벚꽃잎 아래에서 크림치즈와 바게뜨 빵을 안주 삼아 마실 법한 청량한 '쌀 샴페인'의 이미지가 완성도 있게 담겨 있다.

 

 

 

 

 

이런 타 브랜드와의 협업 뿐만 아니라, 복순도가는 자신들의 술이 소비되는 공간과 그 안에서의 경험 자체를 디자인하는 것에도 관심이 많다. 2017년에는 부산의 폐공장을 인수해 'F1963'이라는 이름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으로 재탄생 시켰다. 술 빚는데 사용되는 소품들로 이루어진 인테리어를 감상하며, 복순도가가 위치한 울주의 어르신들이 직접 만든 장(醬)류가 들어간 음식과 복순도가 술의 페어링을 경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2019년엔 서울 한강대교 중앙의 노들섬에 음악과 전시, 술과 안주가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 '복순도가 노들섬'을 오픈했다. 손막걸리와 감자전같은 전통적인 메뉴 외에도 막걸리를 이용한 빙수와 직접 추출한 차를 이용한 '복순도가 밀크티' 같은 한정판 메뉴들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술빚는 것에만 집중해도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말까 한데, 규모가 그리 크지도 않은 지역 양조장이 거의 대기업 수준의 파생 프로젝트들을 척척 해내고 있는 이면에 김민규 대표가 있다. '복순도가'라는 이름의 출발점이 되는, 박복순 여사의 장남인 그는 아버지 김정식 공동대표, 동생 김민국 실장,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복순도가를 이끌고 있다. 그가 맡고 있는 업무는 전반적인 브랜드 관리와 마케팅, 그리고 제품 디자인이다. 울주군에 위치한, 복순도가 양조장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부모님이 술을 만드시는 걸 보니까 작업장에 턱도 높은데 무거운 항아리를 들고 나르고 계시더라고요. 어머님이 워낙 술 만드는 걸 좋아하시고 하니, 어떻게 하면 잘 하실 수 있게 도와드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건데 그 땐 이렇게 크게 사업을 하게 되리라고 생각도 못 했죠. 처음엔 하루에 막걸리 10 병 만드는 수준이었어요."

 

 

 

 

 

김 대표가 전공한 것은 건축이다. 미국 뉴욕의 쿠퍼 유니언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져 어머니 박복순 여사가 본격적으로 술을 빚기 시작했다. 원체 술 빚고 음식 만들어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것을 좋아하던 차에, 시어머니 때부터 집안에서 만들어 먹던 술을 재현해 팔면 살림에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김 대표가 한국으로 돌아와 군 복무를 마친 2008년 즈음엔 주변에 제법 소문이 나서 찾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김 대표는 기존의 막걸리 병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지금의 복순도가 병을 직접 디자인해 부모님의 새로운 도전에 힘을 실었다. 탄산이 풍부한 복순도가 막걸리의 특성을 살려, 병을 딸 때 안에서 내용물이 자연스럽게 뒤섞이는 것을 관찰할 수 있게 만든 이 병은 복순도가의 유명세에 톡톡히 역할을 했다. 본격적으로 판로를 개척하기 시작한 2010년엔 손막걸리 샘플을 몇 병 씩 가방에 넣고 KTX로 전국을 돌았다. 술에 들어가는 재료의 질과 만드는 정성을 생각할 때 원가를 낮출 수는 없었고, 경제력이 좀 있는 고객들을 확보해 보자는 생각으로 골프장과 호텔을 집중 공략했던 것이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경기도의 한 골프장으로부터 첫 주문을 따내는데 성공했다. 이러던 와중에 복순도가의 이름이 크게 알려지는 일이 생긴다. 2012년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 만찬 건배주로 복순도가 손막걸리가 선정된 것이다. 아버지는 총리실에서 전화를 받을 때까지도 장난전화인 줄만 아셨다고 한다.

 

 

 

 

그래도 이 때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높아진 덕에, 김 대표 입장에서는 미국으로 돌아가 학업을 마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다. 자신이 없어도 부모님이 술 제조와 판매를 병행하실 수 있도록, 주문과 배송 시스템을 구축해 놓은 뒤 뉴욕으로 돌아갔다. 그가 졸업 때 제출한 논문의 주제는 '발효건축' (Fermentation Architecture)이었다. 이것은 그가 창안한 개념으로, 주변의 여러 요소들이 건축물을 통해 인간에게 좀 더 유용한 것으로 변화하는 프로세스를 '발효'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이다. 그가 한국으로 돌아와 직접 기획하고 설계해 2015년에 완공한 복순도가 양조장은 이런 그의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한 작품이다. 벽에 칠해진 잿빛 도료부터 예사롭지 않다.

"예전엔 한 해 농사가 끝나면 빈 들에서 볏짚을 태웠어요. '화농'이라고 해서 1년 농사를 마무리 짓고 내년 농사가 잘 되기를 기원하는 정서적인 행위인 거죠. 그런 의미를 건물에 담으려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볏짚으로 새끼를 꼬고, 그것을 태운 재로 벽면을 칠했어요. 벽 안에도 새끼가 들어가 있죠. 일종의 금줄이라고 할 수 있어요."

건물의 구조와 내장재에도 이 양조장이 술빚기의 시간성과 지역성을 담아내는 그릇이길 바라는 김 대표의 생각이 가미되어 있다. 술이 익어가는 항아리들이 늘어선 발효실은 보통 양조장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복순도가에선 입구 근처에 배치해 이 곳을 찾는 사람들 누구나 발효의 과정을 향으로, 소리로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내부는 황토벽돌과 누룩 찌꺼기로 시공해, 계절에 따른 온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술을 숙성시키는 미생물들이 최대한 편안한 가운데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양조장은 술을 빚어 세상에 내보내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주변과 상호작용해 지역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도 김 대표가 이 양조장을 지을 때부터 염두에 두었던 부분이다. 양조장 바로 옆에 카페 형태로 지은 '복순도가 주막'은 이런 아이디어가 현실이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최근엔 지역 청년들을 위해 '365 발효마을'이라는 프로젝트를 만들었어요. 그들과 함께 지역을 알리는 컨텐츠를 만들기 위해 워크샵을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해나가려고요. 그런 것도 제가 추구하는 건축의 한 부분이고, 이 도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복순도가가 거침없이 해왔던 다채로운 영역의 활동들이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되는 느낌이 든다. 김 대표가 생각하는 '발효'란, 단순히 술이 익어가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술도가를 통해 인적, 환경적 자원들이 공통체에 더 도움이 되는 형태로 변화해 나가는 과정을 의미한다는 깨달음이었다. 그런 명확한 컨셉이 있었기에, 술과 공간, 술과 세대, 술과 시대를 잇는 분방한 작업들이 통일성 있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개별적으로 보이던 많은 프로젝트들이 하나의 세계관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나자, 복순도가의 술이 한층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술을 에워싼 이야기의 맥락을 알아 가는 것은 늘 즐겁지만, 이 정도로 잘 짜여진 세계관을 가진 술을 만나는 것은 드문 경험이다. 이야기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이 스토리의 정수가 담겨 있는 술을 입에 머금고 싶어졌다. 바쁜 일정 때문에 먼저 일어난 김 대표를 배웅하고, 느긋하게 시음을 해보기로 했다.

 

 

 

 

 

첫 잔은 뭐니뭐니 해도, 오늘의 복순도가가 있게 만들어준 6.5도의 '복순도가 손막걸리'였다. '샴페인 막걸리'를 표방하는 탄산 막걸리의 대표주자 답게, 마개를 여는데도 시간이 한참 걸린다. 병을 45도로 기울여 탄산이 위로 올라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나서도, 주의 깊게 마개를 여닫기를 반복해야 한다. 마치 금고의 문에 달린 다이얼로 스무 자리가 넘는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손막걸리는 언양과 울주에서 수확한 햅쌀과 직접 빚은 누룩을 이용해 이양주 방식으로 빚는다. 고급진 재료로 정성을 다해 빚지만, 그렇다고 맛이 지나치게 두텁거나 근엄한 인상을 주는 편은 아니다. 오히려 편안한 음용성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신맛과 단맛이 균형을 이루고 있고, 입에 머금은 뒤에도 한참 동안 혀와 입천장을 초여름의 빗방울처럼 두드리는 탄산이 깔끔함과 청량함을 더해 준다. 김 대표의 본가에서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다가 밀주 단속으로 인해 한동안 맥이 끊겼던 것을, 어머니 박복순 여사가 오랜 시행착오 끝에 완성시킨 맛이다. 어머니가 기억 속 술 맛을 더듬을 때 목표로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진하고 농후한 반가의 술보다는 동네 사람들이 한바탕 들일을 마치고 떠들썩하게 웃으며 돌려 마시던 농주 막걸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밀로 만들어 소박하고 텁텁하지만, 발효 과정에서 생겨난 탄산이 그 텁텁함을 가려주고 들녘의 후끈함을 가라앉혀 주었던 가벼운 농주의 느낌을, 지역에서 재배한 멥쌀과 전통 누룩을 가지고 재현한 상위 호환 버전이라는 것이 손막걸리에 대한 내 해석이었다. 이런 편안함과 진정성이 김 대표의 모던한 디자인과 치밀한 브랜딩을 만난 결과가 현재 복순도가가 누리고 있는 인기의 요체일 것이다.

 

 

 

 

 

 

 

​이어서 '복순도가 탁주'의 마개를 땄다. 발효 과정에서 생겨난 탄산이 다 날아갈 때까지 100일 이상 충분히 저온 숙성을 거친 삼양주 방식의 복순도가 탁주는 도수가 10도로 손막걸리보다 높다. 질감도 좀 더 두텁다. 2019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이 제품은 15년이 넘는 세월을 거치며 복순도가가 차츰 지니게 된 자신감을 의미한다. 원형 그대로 승부해도 소비자들이 알아 줄 것이라는 자기확신이 담겼다. 그만큼 탁주는 더 차분하면서도 풍부했다. 근거 있는 자신감을 가진 사람을 만날 때 엿보이는 흡입력과 안정감이 느껴졌다. 쌀의 진중함과 사과 혹은 복숭아 같은 과일의 발랄함이 기분 좋은 대비를 만들어 내고, 손막걸리에서도 살짝 느껴졌던 동치미 국물 같은 감칠맛이 후반부에 좀 더 강하게 올라온다. 빙수 같은 디저트의 킥으로 더할 나위 없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맛이다.

 

 

 

 

 

 

 

마지막으로, 2020년 출시된 '복순도가 약주'를 잔에 따랐다. 냉장고에서 꺼낸지 얼마 되지 않아, 잔 주변에 투명한 물방울이 맺힌다. 잔 속에 담긴 술도 투명한 황금색이다. 코에 가져가자, 빙그레 웃음을 머금게 된다. 울주군의 특산물, 미나리 같은 싱그러움과 풍성한 과일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입에 머금자, 앞서 마신 두 잔의 맛을 싹 지워 버리는 산미와 적당한 쌉쌀함이 느껴진다. 단맛의 여운이 느껴지는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다. '결국 이런 걸 하고 싶으셨던 거구만. 예술가는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어떻게든 하고 만다니까.'라는 생각이 들어 미소 짓는 것을 멈추기가 힘들었다. 아마도 손막걸리는, 어려워진 집안을 다시 일으키기 위한 부모님의 술이었을 것이고, 복순도가 탁주는 수학을 전공하고 가업에 합류한 동생 김민국 실장이 수많은 실험을 거쳐 만들어낸 술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에 마셔 본 복순도가 약주는, 누가 뭐래도 자기 하고 싶은 거 하고 마는 컨셉 아티스트, 김민규 대표의 술이었다. 영화의 결말을 채 알게 되기 전에 감독판 영화를 먼저 봐 버린 느낌이 들었다. 편안한 음용성에서 화이트와인을 방불케 하는 모던함까지 길게 이어진 복순도가의 화살표. 그 화살표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술의 2020년대가 하나의 컨셉으로 꿰어지게 되지 않을까. 그 시간 내내, '발효'의 과정을 거치며 술독을 두드리는 기분 좋은 탄산방울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에 기분이 좋아졌다.

 

 

 


 

 

 



글 : 탁재형 PD

탁재형 PD는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15년간 50개국을 취재하며, 세상의 넓음과 사람살이의 다양함을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2002년 ‘KBS 월드넷’을 시작으로 ‘도전! 지구탐험대’, ‘세계테마기행’, ‘EBS 다큐 프라임-안데스’ 등 해외 관련 다큐멘터리를 주로 제작했으며 2013년부터 여행 부문 팟캐스트 부동의 1위인 ‘탁PD의 여행수다’를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여행 산문집 『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어』김영사(2016), 세계 음주 기행기 『일은 핑계고 술 마시러 왔는데요?』시공사(2020)등이 있습니다.

*지나친 음주는 뇌졸중, 기억력 손상이나 치매를 유발합니다. 임신 중 음주는 기형아 출생 위험을 높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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