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칼럼

[장새별의 한국 술 시음기] 너브내 스파클링애플 라이트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21-01-27
  • 조회수 1007

 

 

 

6년 전, 프렌치 레스토랑에 취재를 갔을 때 주류 리스트에서 시드르를 발견했다. 당시만 해도 매우 드물었던 일이라, 오너에게 잘 팔리느냐 물었더니 말하지 않아도 알 법한 웃음을 내보였다. 그는 “그래도 1-2년 안에 시드르 시장이 엄청 커질 거라고 생각해요”라는 말을 덧붙였지만, 나는 남몰래 고개를 가로 저었다. 프랑스어로 시드르, 영어로 사이더라 불리는 이 음료의 정체는 사과 발효주다. 당시 한국에 수입되고 있던 몇 안 되는 제품들이 알코올 도수는 2-5% 남짓.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취향은 주로 고도수에 몰려 있고, 그렇지 않으면 아예 마시지 않는 사람들로 양분화 되어 있다시피 했던 국내 시장에서 시드르가 설 자리는 없어 보였다. 저도주에 대한 관심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고 있긴 했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저도주 영역에 한참 밑도는 데다 낯선 장르였던 탓도 있다.

 

그런데 이것이 와인으로 소개되면 얘기가 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땅에서 한국 농부가 재배한 과실을 파쇄, 발효한 양조주’라는 한국 와인의 임의적 정의에 따르면 요즘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는 시드르는 ‘사과 와인’으로 ‘부연 설명’이 가능하다. 그렇게 대중과의 접점을 점점 늘려가면, 시드르라는 독자적인 장르도 힘을 키워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여정에서 홍천 샤또 나드리의 ‘너브내 애플스파클링 라이트’가 톡톡한 역할을 해줄 것이라 기대해본다. 지난해 12월 출시된 이 사과 와인은, 사실 여름에 한 차례 맛을 봤다. 와이너리에 방문했을 때 임광수, 이병금 부부가 테스트 제품이라며 맛을 보여주었던 것. 시음 적정 온도가 아니었음에도 입 안을 채우는 산미에 눈을 반짝거리며 마셨던 기억이 있다. 설명에 따르면, 홍천 사과 와인 베이스에 돌배로 부족한 산도를 보강했다고 했다. 홍천 지역 내 잉여 농산물에 대한 고민이 이 사과 와인의 시작이었고, 1년 여 간의 테스트를 거쳐 완성한 결과물이었다. 과정까지 듣고 나니 두 부부가 공부도 잘 하고 성격도 좋아 반 친구들이 따르는 반장 같았다. 혼자 난 척 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반 평균을 올릴 수 있을지 고민하는, 대놓고 활발하기 보다는 오히려 수줍은 매력으로 친구들을 불러 모으는 숨은 인사이더의 느낌이랄까. 그리고 다년 간의 취재력으로 내린 ‘아주 비과학적 결론’은 ‘술은 대체로 양조자를 닮는다’는 것이다.

 

 

 

 

 

 

반 년의 시간이 지나 다시 맛을 본 ‘너브내 애플스파클링 라이트’는 안정화 기간을 거친 덕인지 처음 맛봤을 때처럼 직관적인 산도는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에 한국 사과에 충실한 단맛, 개인적으로 시드르의 핵심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발효향이 더욱 진해졌다. 잔에서 쉴 새 없이 자글자글 피어 오르는 기포는 의외로 입 안을 적당히 자극하고 금세 사라진다. 꿀떡 꿀떡 시원하게 마시기 좋고, 잠시 멈추면 옅디 옅은 쌉쌀함, 수줍은 산미의 매력도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단맛을 부르는 술이기도 하다. 시나몬 파우더를 뿌린 애플 파이라든가, 바닐라 크림을 듬뿍 올린 밀푀유라든가. 평소 즐기지 않는 온갖 단 맛의 음식들이 머리로 그려진다. 단 술을 즐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취향을 넘어서는 맛이 존재함을 또 한 번 깨닫는다. 한 잔 쯤은 누구나 마시기 좋다는 뜻이다.

 

 

 


 

글: 장새별 (F&B 전문 에디터)

먹고, 주로 마시는 선천적 애주가다. 블루리본서베이, 식품 신문사를 거쳐 미식 매거진 <바앤다이닝>에서 오래 일했다. 퇴사 후에도 레스토랑과 바를 찾아 다니며 일과 취미의 경계가 허물어진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