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칼럼

고기와 술, 그 무한한 변주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21-01-07
  • 조회수 1788

이미지출처: 인스타그램 @gwangmo_9

 

 

 

고기와 술, 그 무한한 변주

 

“한국인은 고저 이밥에 고깃국”이다. 이밥은 입쌀밥의 줄임말이고, 입쌀은 보리쌀, 메밀쌀 등에 대하여 쌀을 이르는 말이다. 요즘은 식생활이 다양화되었지만 그래도 윤기 하얀 쌀밥에 쇠고기가 들어간 무국이나 미역국, 그리고 빨간 배추김치는 한식 밥상의 성삼위일체다. 누가 뭐래도 이 조합은 밥상의 단단한 초석이다. 이 중 고기와 쌀의 관계가 술상에서 어떻게 변주되는지 생각해보자(김치의 역할도 다양한데, 지면의 한계상 오늘은 밥상이든 술상이든 김치는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정도만 이야기하자)

 

 

 

출처: 인스타그램 @3jan4

 

 

 

한국인은 밥상에 술을 곁들이는 반주도 하지만 술상을 따로 보아 술을 마시는 경우가 더 많다.  서양의 펍(Pub)이나 바(Bar) 문화는 애초에 인(Inn)같은 숙박시설의 부속 ‘식당’으로 시작한 경우라서 술의 역할은 부차적이었고, 19세기나 들어서야 ‘술집’으로서 역할이 정립되었다. 그러다 보니 서양의 문화에서는 술을 마실 때에는 따로 안주를 시키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펍에서 이런저런 음식을 시켜 먹는 것이 일반적인 문화가 된 것은 20세기도 한참이나 지나서의 일이다. 그나마도 안주라기보다는 술집에서 식사도 가능하게 한다는 개념이다. 일본의 이자카야도 말 그대로 ‘선술집’에서 시작한 문화라서 안주를 요리해서 파는 개념은 아니었다. 이자카야에 요즘같이 다양한 다이닝 문화가 도입된 것은 길게 잡아도 경제의 고도성장기 때 부터라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따로 술상을 봐서 술을 마시는 ‘안주’ 문화는 근대 이전은 물론이고 아직까지도 한국에서 가장 크게 꽃 피고 있는 것 같다. 그럼 한식 밥상의 성삼위일체는 안주문화에서 어떻게 변주가 되는가 술상의 경우는 밥상과는 다른 역발상의 전환이 필요하고, 또 가능하다. 

 

고기구이, 특히 생고기의 숯불구이는 한국인의 식육문화의 한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생고기를 양념 없이 구우니 고기의 품질이 그대로 느껴지고, 그러다보니 육질에 민감해서 자연히 고급육으로 취향이 발전한다. 달달한 양념맛으로 고기 먹는 것은 옛날 이야기다. 요즘은 고기 좀 먹는다면 고급 한우를 생으로, 그것도 숯불에 구워 먹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고, 가장 사치스러운 것도 이 경우다.

 

사치스러운 경우라는 것은 담백한 고기에 곁들임 음식이 다양해지고 있다. 근래에는 ‘한우 오마카세’, ‘소고기 다이닝’ 같이 소고기를 중심으로 다른 음식들이 코스나 한상차림으로 거하게 나오는 고급음식점들이 성업이다. 상의 중심이 밥이 아니라 고기인 것이다. 밥과 고기의 역할이 전도되는 크로스오버가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쌀밥의 역할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고기상차림에서 쌀밥은 마시는 쌀, 즉 술로 자기 자리를 잡는다. 밥상에서는 기본이자 중심으로 모든 찬의 밑바탕 역할을, 하얀 캔버스 같은 역할을 해야 했던 쌀밥이다. 이제 고기가 그 역할을 대신해주는 상에서는 술로서도 다양한 개성을 뽐낼 수 있다. 생고기구이가 ‘궁극의 술상’이 될 수 있는 이유다.

 

 

 

 

C막걸리 시그니처 큐베

 

 

 

 

고기에 어울리는 술은 끝도 없지만 노간주나무 열매와 건포도가 들어간 C막걸리의 시그니쳐 큐베는 어떨까 화려한 향과 달콤함이 녹진한, 이국적 외모의 화려한 주연배우다.

 

좀 더 미묘하고 난이도 높은 궁합은 담백한 고기와 담백한 쌀막걸리다. 고기가 소의 개체와 도축후 경과 시기 등에 따라 미묘하게 맛이 달라지듯이 살균하지 않은 생주도 한 병 마다, 그리고 출고된 시기에 따라서 맛이 조금씩은 다르다. 정말 미묘한 경지를 논하자면 고기도, 술도 단 한번도 똑같지 않은 유일한 궁합이 매번 성립하는 것이다. 백지불경이 가장 수준이 높은 불경이라는 것은 말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언어도단의 경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송명섭 막걸리

 

 

 

필자는 일찍이 송명섭 막걸리를 백지불경에 비유한 적이 있는데, 음식에 대해서 경지가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라면 생고기에 송명섭막걸리를 즐겨 보시라. 밋밋한 것 같지만 사람의 주의를 끊임없이 잡아 끌고 상상은 만다라 같이 퍼져간다.

 

이제 배경과 주연의 구별이 없이 하나의 큰 무대가 펼쳐지게 되었다.

 

 


글: 백웅재 작가/한주 전문점 얼터렉티브 마켓(Alteractive Market)’ 대표

백웅재 작가는 주문진에서 한주(韓酒) 전문점 ‘얼터렉티브 마켓을 운영하며 사라져 가는 우리술과 먹거리를 찾아, 다양한 한주 상품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네이버에서 ‘허수자’라는 파워블로거로 활동하며 전국의 맛집과 한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 국가대표 전통주 소믈리에 경기대회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저서로는 『술맛 나는 프리미엄 한주』 따비(2016), 『우리 술 한주 기행』창비(2020)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