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칼럼

[탁재형 PD의 우리술 로드] 제주 '제주술익는집'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21-07-02
  • 조회수 166

 



 

 


"태곳적에 설문대라는 이름의 할망(할머니라는 뜻의 제주어)이 있었다. 이 할망은 몸집이 어마어마하게 크고 힘 또한 장사였다. 어느 날 문득 뜻한 바가 있었는지, 할망은 치마폭에 흙을 퍼다 바다 한가운데에 붓기 시작했다. 이렇게 몇 번 반복하자, 바다 위에 커다란 섬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흙을 퍼나르는 중간에 치마의 틈으로 떨어진 흙덩이들은 그대로 오름이 되었고, 가운데에 높이 솟은 봉우리는 한라산이 되었다. 한라산 꼭대기는 원래 은하수에 닿을 만큼 높았는데, 너무 높은 산마루가 좀 정 없어 보였는지 설문대 할망은 꼭대기를 툭 하고 꺾어서 바다에 던져버렸다. 이렇게 바다로 날아간 산꼭대기는 산방산이 되었고, 한라산 정상은 지금과 같이 움푹 팬 백록담이 되었다.”

 


이렇게 시작하는 제주의 창조설화 속에는, 옛사람들이 직관에 의해 터득한 자연에 대한 통찰이 가득하다. 과학적 지식이 전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상상한 세계 속에는 바다가 불을 뿜고 산이 물 위로 솟아오르고, 그 아래 둥그스름한 오름들이 튀김옷의 표면처럼 격렬하게 부풀어 오르던 천지개벽의 장면들이 생생히 표현되어 있다. 한라산의 정상이 격렬한 폭발로 인해 바다까지 날아가 박히는 장면은 정말이지 엄청났을 것이다. 그 시간, 그 하늘 아래 없었다는 것이 무척이나 다행스럽게 여겨지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장관을 놓친 것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하다못해 천 년 전 협재 앞바다에만 살았어도, 어느 날 갑자기 비양도가 폭음과 함께 바다 위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을 텐데.

 


이렇듯 제주라는 섬은 시작부터 요란했다. 그런 폭발적인 에너지를 품은 땅이기에, 지금도 제주의 풍광은 그 어느 곳과도 다르다. 하기에 낯선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육지 사람들이 끝없이 몰려드는 것일 터다. 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에게는, 섬이 가진 거친 성정에 맞서 그에 지지 않는 에너지로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 숙명이 되었다. 제주 어르신들이 입버릇처럼 말하곤 하는 “살암시라, 살암시민 살아진다.”(살아라. 살면 살아진다.)는 표현에는 이런 운명을 묵묵히 감내하며 살아가는 섬사람들의 철학이 담겨 있다.

 

 

 

 

 

 

 

 

 


제주의 토양은 화산암이 풍화되어 만들어졌다. 그래서 빗물이 고이지 못하고 바로 지하로 스며든다. 이런 땅을 제주어로 ‘뜬땅’이라고 한다. 뜬땅에서는 자랄 때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벼를 키우기 힘들다. 그보다 생명력이 강해서 비탈지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조와 보리가 제격이다. 특히 제주어로 ‘오메기’라고 부르는 조는 제주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곡식이었다. 제주의 양가집에서는 좁쌀의 가루를 내어, 뜨거운 물로 반죽하고 잘 치대서 떡을 빚었다. 낱알의 크기가 작아 전분이 많지 않으므로, 물 온도를 잘 맞추고 반죽을 섬세히 다루지 않으면 이 단계에서 망쳐 버리기가 십상이다. 이렇게 만든 떡을 오메기떡이라고 불렀다. (지금 제주의 면세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팥고물이 묻어 있는 오메기떡은 이것과는 다른, ‘오메기 경단’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할 물건이다.)

 


오메기떡은 그대로 손님에게 대접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더 귀한 쓰임이 있었다. 바로 이 떡을 바탕으로 해서 제사와 잔치에 쓸 술을 만들었던 것이다. 오메기떡을 삶아서 절굿공이로 잘 짓이긴 뒤에, 누룩가루를 섞어 술항(술 항아리)에 앉히고 물을 부어 온도를 맞춰 주면, 며칠 안으로 발효가 시작된다. 여기에 조와 보리를 섞어 지은 고두밥을 넣어주고 20일가량 기다리면, 노랗고 진하면서 도수가 높은 술이 뜬다. 이를 떠내 거른 것이 제주식 청주인 ‘오메기 맑은술’이다. 이 오메기 맑은술을 옹기로 만든 고소리(제주식 증류기)에 넣고 끓여서 받은 것이 ‘고소리술’이다.

 

 

 

 

 


 

 

 

 

 

제주시 표선면 성읍마을에서 3대를 이어 술을 만들어 왔고, 이제 아들 내외에게 4대째를 물려줄 채비를 하고 있는 김희숙 <제주술익는집> 대표(대한민국 전통식품명인 84호(고소리술))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밤늦도록 술을 만들고 들어와 곁에 눕던 때의 몸 냄새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옛날엔 다 한 방에서 잤잖아요. 어머니가 새벽녘에 일을 다 마치고 방에 오셔서 살며시 누우시면 어머니 몸에서 술 향기가 풀풀 풍겼어요. 그래서 고소리술을 다른 이름으로 ‘모향주’(母香酒)라고 부르기도 해요. 유년시절에 어머니가 부엌 아궁이에서 고소리술을 만들던 모습, 고소리 코(증류된 술이 나오는 주둥이)에서 술이 ‘살그랑 살그랑’ 내려오던 때의 향기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요. 술을 빚을 때 그 기억을 최대한 되살려서 만들고 있기 때문에, 저에게는 굉장한 도움이 되죠.”

 


제주어로는 술을 증류하는 것을 ‘술 닦은다’라고 표현한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술 닦는 것을 보고 자란 김희숙 대표는 성읍마을에 시집와서 고소리술 초대 기능보유자인 김을정 여사의 며느리가 되었다.


 

 

 

 


 

 

 

 

 

“저희 시할머니가 마을에서 주막을 하시면서 두 아들을 일본에 유학 보내실 정도로 총명하셨고, 손맛이 좋으셔서 깔끔하게 술을 빚으셨어요. 가끔씩 저에게 몰래 숨겨놓은 돈을 용돈으로 내어 주실 정도로 저를 아껴 주시다가 102세를 일기로 돌아가셨죠. 이런 집안 내력을 시어머니께서 이으셔서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가 되셨고, 제가 시어머니를 도와 술을 빚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막내아들이 10년째 아주 열심히 술을 빚고 있어요. 4대 째죠. 얼마나 마음이 든든한지 몰라요.”

 


김희숙 대표의 목소리가 발랄하게 한 톤 높아졌다. 사실 술빚기는 지난한 작업이다. 무거운 재료를 옮기고, 더 무거운 기물들을 깨끗이 씻고, 정돈하는 것만으로도 뼈마디가 삐걱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특유의 밝은 에너지로 제주의 술을 이어온 김희숙 명인은 여전히 술 빚을 때가 제일 기쁘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아들 녀석도 술 만드는 일이 너무 행복하대요. 그래서 정말 다행이에요. 왜냐하면 일이 재미있어야 결과도 좋게 나오잖아요. 술 빚는 사람이 긍정적이고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런 마음들이 술 속에 녹아서 마시는 분에게도 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인스타그램 @jeju_island_brewery

 

 

 

 


<제주술익는집>에서 만드는 제품의 근간이 되는 ‘오메기 맑은술’(16도)에도 어머니와 아들의 이런 마음이 담겨있을 터. 서둘러 맛을 보기로 했다. 빛깔 면에서, 일반 청주와는 달리 밝은 연둣빛에 가까운 녹색 기운이 돈다. 조의 껍데기에서 우러나온 색깔인 듯했다. 향은 산뜻하면서 풋풋했다. 곡물로 만든 술이라기 보다 과실주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입안에 머금자, 가벼운 단맛이 발 빠르게 지나가고 싱그러운 풀 향과 함께 맵싸하고 새콤한 맛이 뒤따른다. 귀 아래의 침샘이 저릿할 정도로 자극되고, 입안에선 타액이 범람한다. ‘싱그러움’ 면에서는 지금껏 마셔본 전통 청주 중에서 단연코 탑 클래스다.

 


“이 술은 와인과 성격이 비슷해요. 식사하실 때 와인잔같이 넉넉한 잔에 따라 놓고 함께 드시면 술도 음식도 더 맛있게 느껴지죠. 그래서 각종 행사나 만찬에 건배주로 많이들 쓰시고 계세요.”

 


하지만 싱그러움이 끝이 아니다. 아, 이거 재미있다. 산뜻함의 끝에서 살짝 기름지다고 느껴질 정도의 부드러움과 감칠맛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민다. 첫인상이 지나가고 나자, 쌀 술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레이어가 두세 개 더 나타난다. 마냥 순박하고 친절한 듯하지만 그 안에 강인하고 억척스러운 품성을 담고 있는 제주 사람들과도 닮았다. 자기 이야기를 한 번에 풀어놓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기량과 이해의 폭을 가늠해 가며 한 대목씩 던져주는 의뭉스러움. 이런 것이 바로 생존의 기술, 즉 생명력 아닐까.

 


사실 조는 한반도에서 기장 다음으로 재배된 역사가 길다. 특별히 가꾸는 데 신경을 쓰지 않아도 잘 크고, 영양면에서도 벼에 손색이 없다. 한의학에서는 몸속의 열을 내리게 하는 약재로 친다. 지금이야 우리가 쌀을 주식으로 삼고 있지만, 옛사람들에게 그것은 꿈과도 같은 소리였다.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쌀은 평야를 차지한 일부 귀족들의 전유물이었고, 평민들의 주식은 조였다. 술에서 풍기는 향도, 어찌 보면 이렇게 살짝 더 복잡하고 와일드한 쪽이 우리 조상들이 늘 맛보던 것의 원형에 근접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스타그램 @rain.0075, 인스타그램 @jeju_island_brewery

 

 

 

 


‘오메기 맑은술’을 끓여서 얻는 것이 40도의 ‘고소리술’이다. 시어머니에게서 며느리에게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고소리술의 역사는 8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12세기 말, 제주는 고려와 몽골 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삼았던 곳이다. 그 후엔 몽골 황제에게 헌상하기 위한 말을 키우는 목마장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몽골인들이 유입되어 거주하게 되었다. 그들이 가져온 것 중 하나가 중동에서 발명되어 실크로드를 타고 전파되었던 증류 기술이다. 제주는 물론이거니와, 몽골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주했던 개성, 안동 같은 지역들이 소주의 명산지로 알려지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시로선 최신 과학기술이었던 증류법이 일찍부터 도입되었기에, 제주의 고소리술은 800년 동안 숙성될 수 있었다.

 


담청색 도기 병에 담긴 고소리술을 잔에 따르자, 창가로 새어들어온 햇살이 ‘과랑과랑’(볕이 쨍쨍 내리쬐는 것을 표현하는 제주어) 맺혀 넘실댄다. 코에 가져다 대자, 고소하면서도 살짝 낯선 향이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화려하다’보다는 ‘잘 생겼다’가 어울리는 향이다. 굳건하면서도 세련됐다.

 


“좁쌀로 술을 빚는 게 원체 어려워요. 가격도 비싸고, 알갱이가 자잘해 전분이 얼마 없으니까 술빚기가 까다롭죠. 하지만 손으로 치대서 술을 짜내 보면 좁쌀에서 풍겨 나오는 풍미가 그렇게 오묘할 수가 없어요. 사람의 마음을 두근두근하게 만드는 향과 맛이 있죠. 술 만드는 작업을 다 마치고 씻고 잠자리에 들어도 손에서 그 향이 올라올 때가 있어요. 자면서도 너무 좋아서 강아지처럼 킁킁 맡곤 한답니다.”

 


김희숙 대표의 말처럼 두근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역시, 제주는 단순하지 않다. 고소리술의 술맛을 멜로디라고 하면, 단음으로 이어지는 구간이 많지 않은 화음 위주의 음색이 될 것이다. 그 화음도 정직한 장 3도, 단 3도가 아닌 중간에 샵이나 플랫이 하나 툭 하고 끼어드는 변칙적인 구성이다. 하지만 조화롭다. 그리고 신선하다. 처음 입안에 넣었을 땐 진중하게 무게를 잡는가 싶더니, 이내 산비탈을 뒤덮고 너울대는 샛노란 조 이삭들 같은 채도 높은 발랄함이 피어난다. 보통의 소주가 친근함 아니면 화려함 둘 중 하나의 길을 택해 밀고 나가는 피지컬 좋은 강속구 투수라면, 고소리술은 체격에선 조금 밀려도 다양한 구질의 변화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언더핸드 투수 같은 느낌이다. 산과 밭과 바다를 오가며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살 수 없었던 제주 사람들처럼, 한 가지 향에 머물지 않고 그 경계를 분주히 오간다. 마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호사다. 가만히 혀뿌리에 머금고 들숨 날숨을 얹어 주기만 하면 된다. 그것만으로 입안에서 ‘과랑과랑’했다가 ‘살그랑살그랑’해지는 맛의 그라데이션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

 

 

 

 

 

 

 

 

 


이렇게나 입과 코를 사로잡는 술이지만, 빚는 것이 죄를 짓는 것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여염집에서 술을 빚는 것이 금지되어 버렸고 해방 이후에도 사정은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수많은 가양주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고, 제주의 술도 하마터면 같은 운명이 될 뻔했다. 하지만 풍전등화였던 제주 술의 명맥을 이은 것도 제주 사람들, 정확히는 제주 여성들의 생명력이었다. 술을 닦아 허벅(물 또는 술을 담아 등에 지고 운반할 수 있는, 옹기로 만든 항아리)에 담고, 이를 장에 내다 파는 것은 제주 아낙네들에겐 놓칠 수 없는 돈벌이의 기회였던 것이다. 그리고 못난 권력이 이들의 행동을 일일이 제지하기엔 설문대 할망이 펼쳐 놓은 한라산의 주름치마가 너무나 넓고도 깊었다. 그 품 안에서 제주 술은 원형이 유지될 수 있었고, 마침내 김희숙 대표 대에 이르러 육지에서도 소문난 명주로 대접받기에 이르렀으니, “살암시민 살아진다”는 제주 격언에 담긴 제주 사람들의 통찰력에 다시 한번 혀를 내두를 뿐이다.

 


“옛날에는 전통주 하면 올드하신 분들이 명절에나 한 병 들고 댁에 가시는 거였는데, 지금은 저희 술의 주 고객이 20-30대예요. 그만큼 제주의 신선하고 깨끗한 술로 이름이 난 거겠죠. 저희 술은 도수가 높아도 맛이 깊고 다채롭고 풍부해요. 누룩 속에 있는 다양한 미생물들이 술 되는 과정에서 맛과 향을 내거든요. 그래서 누룩으로 빚어도 누룩향은 많이 나지 않고, 누룩을 많이 쓰지 않아도 돼요. 조상님들이 물려주신 술 만드는 법을 잘 이어받아 재현하면, 그렇게 맛있는 술이 돼요. 그걸 우리가 잘 발전시켜서 세계적인 문화상품으로 만들어 가야죠.”

 


여전히 미래에 대한 꿈을 꾸고 있는 소녀 같은 표정으로 김희숙 대표가 말했다. 밖에는 벳(볕)이 과랑과랑했다. 고소리술 한 병을 사서, 숙소로 가는 길에 벵에돔 회를 떠서 들어가면 딱 좋을 시간이었다. 못내 아쉬워하는 김희숙 대표님에게, 마지막 인사는 이렇게 하고 싶었다.

 


“고소리술이영 오메기 맑은술이영 몬딱 좋으신디, 간드랑 호니 호로록 먹엉 감수다.”

 

(고소리술도 오메기 맑은 술도 모두 좋아서, 시원하게 호로록 마시고 갑니다.)

 

 

 

 

 


 

 


글 : 탁재형 PD

 

탁재형 PD는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15년간 50개국을 취재하며, 세상의 넓음과 사람살이의 다양함을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2002년 ‘KBS 월드넷’을 시작으로 ‘도전! 지구탐험대’, ‘세계테마기행’, ‘EBS 다큐 프라임-안데스’ 등 해외 관련 다큐멘터리를 주로 제작했으며 2013년부터 여행 부문 팟캐스트 부동의 1위인 ‘탁PD의 여행수다’를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여행 산문집 『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어』김영사(2016), 세계 음주 기행기 『일은 핑계고 술 마시러 왔는데요?』시공사(2020)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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