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칼럼

내가 예전의 그 막걸리가 아니라니까!|편성준 작가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21-07-16
  • 조회수 1004

 

 

 

스무 살, 대학생이 되고 나서 가장 좋았던 것은 '실수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는 점이었다. 지금이야 각박한 사회 분위기에 코로나 19 팬데믹 사태까지 겹쳐 대학생이 되어도 낭만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해야 하지만 그땐 좀 실수를 해도 '에이, 학생이니까' 하고 약간 봐주는 분위기가 있었다. 여덟 살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공부해라 공부해라 소리만 듣고 살았는데 해가 바뀌자 갑자기 밤을 새워 책을 읽어도 되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도 되는 자유가 주어졌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가장 먼저 나를 반긴 건 술과 담배였는데 그중에서도 술은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손잡이 같은 것이었다. 신입생 환영회부터 술 잘 마시는 친구가 칭찬을 받았고 방과 후 친구들과 몰려가는 곳도 결국은 학교 앞 술집이었다.

그런데 대부분 평등하게 가난한 청년들이다 보니 안주는 부실했고 주종은 언제나 소주였다. 당시 시내에서 팔던 희석식 소주가 값이 싸고 보편적이기 때문이었다. 술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던 우리는 자신의 주량도 모른 책 벌컥벌컥 소주를 받아 마시다가 만취하는 바람에 번갈아 담벼락 앞에 가서 토하고 들어오기를 반복했지만 그런 것도 모두 청춘의 통과의례려니 하고 웃어넘겼다. 막걸리를 마시는 경우도 가끔 있었는데 당시에는 내가 막걸리에 대해 잘 모르기도 했고 막연히 '중장년이 마시는 술'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서 더욱 가까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졸업을 하고 광고 회사에 들어가 카피라이터로 일하며 술·담배·외박을 인생 3대 지표로 삼고 살던 시절에는 소주뿐 아니라 맥주와 양주에도 손을 댔지만 여전히 막걸리나 전통주와는 친해질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일제강점기에 여염집에서 술 빚는 것을 금지하는 바람에 명맥이 끊겼던 전통주는 해방 이후에도 사정은 변하지 않아서 수많은 가양주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고 그 영향을 받고 자란 나도 '막걸리는 나의 술이 아니다'라는 관념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백마 타고 온 또또』 라는 책에서 영화 <바보들의 행진>을 만든 하길종 감독은 위가 약해서 막걸리를 즐겨 마셨다는 내용을 읽고 ‘아, 막걸리가 소주보다는 순한 술이구나’ 하는 정도의 인식에서 그쳤던 것이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면서 살살 막걸리의 인기가 다시 생겨나기 시작했다. 예전에 마시던 것보다 훨씬 좋은 재료와 제조과정을 거친 고급 막걸리가 등장해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라는 소식이었다.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에서도 막걸리가 각광을 받는다는 말을 듣고 나도 조심스럽게 막걸리를 다시 마셔보기 시작했다. 복순도가의 전통주들을 만났고 송명섭먹걸리와 해창 막걸리에도 맛을 들였다. 마셔보니 막걸리는 소주나 위스키와 달리 또 다른 매력이 있는 술이었다. 쌀의 영양분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은 물론이고 도수가 낮아 몸에 가해지는 충격도 적은 편이다. 오죽하면 '알코올 중독자가 최후까지 마실 수 있는 술'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옛날에는 전통주라고 하면 나이 든 사람들이 명절에나 한 병 들고 고향집으로 가는 이미지가 그려졌으나 이제는 전통주 바틀샵에서 20~30대가 즐겨 마시는 핫한 술이 되었다. 최근엔 전통주 소믈리에 교육 코스도 여러 곳에서 열리고 있다는 기분 좋은 소식까지 들려왔다.

이런 와중에 마침 '더술닷컴'에서 전통주에 대한 칼럼 의뢰가 들어왔다. 술을 보내줄 테니 글을 써보라는 말에 나는 환호작약했다. 최신 전통주를 가장 먼저 맛볼 수 있는 확실한 통로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맨 처음 받은 술은 '아임프리 6.0'과 '말이야 막걸리야'라는 탁주였다. 이름부터가 톡톡 튀는 '말이야 막걸리야'는 전남 곡성에 있는 ‘시향가’라는 이름의 술도가가 판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곡성 토란 농가들의 고민을 해결해주고 싶어서 빚은 막걸리였다. 곡성은 영화 제목으로만 알고 있다가 최근에 김탁환 작가의 에세이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덕분에 개인적으로 몇 번 방문하기도 했던 아름다운 고장이다. 곡성의 토란으로 만들어져 '토막'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이 술은 'MZ세대에게 신선한 재미와 차별화된 이미지를 주기 위해' 한 손에 딱 잡히는 200ml 버전이 제작되면서 '말이야 막걸리야'라는 이름을 따로 얻었다고 한다.

아내가 "이런 술에는 이 안주가 제격이지." 하고 내온 열무김치와 오이소박이에 곁들여 마셔보니 부드럽고 은은한 산미가 입안을 감싸고 목 넘김이 깔끔해서 누구나 좋아할 것만 같았다. 잔이 필요 없는 편리함은 물론 다 마신 막걸리 캔은 쉽게 라벨을 뜯을 수 있어 재활용도 편하니 환경을 생각하는 요즘 트렌드에도 딱이었다. 나는 신기한 마음으로 새로운 막걸리를 바라보았다. "내가 예전의 그 막걸리가 아니라니까!"라고 외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세상의 많은 시인과 예술가들이 창작활동을 하면서 얻은 스트레스를 술로 풀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 술을 왜 마시냐고 물으면 '사는 게 힘들어서'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이왕 마시는 술이라면 좀 더 좋은 술을 마시는 것도 삶의 지혜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4회에 걸쳐 전통주에 대한 글을 연재하게 되어 기쁘다. 다음 달엔 막걸리의 좋은 점과 더불어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이유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써보아야겠다. 오늘은 일본의 승려 시인이 쓴 귀여운 시를 소개하면서 칼럼을 마칠까 한다. 모두들 좋은 술 마시고 건강하시기 바란다.

 

술통

 

내가 죽으면

술통밑에 묻어줘

운이 좋으면

밑둥이 샐지도 몰라

 

-모리야 센얀

 

 

 

 

 

말이야 막걸리야 아임프리 6.0                        
주종: 탁주 주종: 탁주
양조장: 시향가 양조장: 농업회사법인 주식회사 술샘
도수: 6% 도수: 6%
용량: 500ml 용량: 500ml
원재료: 물, 쌀, 건조토란, 젖산, 누룩, 효모, 경제효소제 원재료: 정제수,  쌀, 국, 오미자, 효모

 

 

 

 

 

글 : 편성준 작가

MBC애드컴, TBWA/Korea 등의 광고대행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서든리', '2월31일' 등의 프로덕션에서 기획실장으로 일했습니다. 2020년에 '좀 바보 같이 살아도 큰일 안 난다' '미루지 말고 지금 놀자'라는 이야기를 담은 첫 에세이집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를 출간했습니다. 현재 글쓰기에 대한 책 집필과 글쓰기·책쓰기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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