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칼럼

전통주 칼럼:: 아는 만큼 느끼는 한주의 맛 - 테이스팅 노트 써보기 I 백웅재 작가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21-11-18
  • 조회수 1673

 

 

 

 

 

“아는 만큼 보인다.” 는 유홍준 작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제1권 서문의 명문장이다. 이는 다시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게 된다.”

 

더술닷컴의 칼럼을 찾아보는 정도라면 한주 러버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한주를 사랑하면 더 알게 되고 그 앎에서 또 새로운 맛이 느껴지니 그때 느끼는 것은 그전과는 같지 않게 되는 경험을 해보셨는지? 아는 만큼 맛도 느껴지고 느끼는 만큼 더 알게 되는 행복한 상승의 과정이다.

 

 

 

 

 

 

 

 

 

와인업계에는 소믈리에란 직업이 존재한다. 이 소믈리에란 말의 대안이 없을까 꽤나 고민을 한 적이 있었는데 결론은 그냥 소믈리에란 말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다양한 업무를 처리하고 전문성을 갖춘 주류업계의 직업이 달리 없다. 실제로 얼마 전부터 생겨나고 있는 한주 판매 전문가 과정도 거의가 소믈리에란 단어를 쓰고 있다.

 

와인 소믈리에가 하는 일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무거운 와인 케이스를 옮기고 와인잔을 광내는 허드렛일도 결코 빠질 수 없는 작업이다. 와이너리, 혹은 수입사를 컨택해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은 소믈리에 업무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미지는 깔끔한 정장 차림에 정중한 매너로 음식이나 손님의 취향에 맞는 술을 추천하는 사람, 와인에 대해서 뭐든 물어보면 척척 대답하는 사람이다.

 

이 ‘척척 대답함’은 실로 대단한 일이다. 전 세계에는 수십만 종의 와인이 있는 데다가 어지간한 와인 전문점이면 그 점포에서 취급하는 것만도 몇백 종이다. 이것을 술의 품종, 생산지, 스타일별로 다 인지하고 음식과 상황과 손님의 성향에 따라 응대한다는 것은 그저 달달 왼 얄팍한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마스터 소믈리에가 되기 위해서는 실기평가와 일정 경력이 필수인 이유이기도 하다.

필자는 고급 레스토랑이나 와인 전문점에 가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소믈리에와 대화를 나누어 본다. 분명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점을 알려줄 것이다. 민감한 음식과의 충돌을 피하게 해줘서 한숨 놓은 적도 있다. 꼭 지식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품위 있고 수준 있는 소믈리에와의 대화는 즐겁다. 이야기하다 보면 와인 취향도 비슷하고 같은 와이너리를 방문한 적도 있어서 반가움이 더해졌던 일도 있다. 술쟁이들끼리 술 이야기하면 무엇보다 즐겁다.

 

 

 

 

 

 

 

 

 

 

 

와인을 공부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인터넷을 뒤져도, 책을 봐도 정보가 넘쳐난다. 이에 비하면 한주의 경우는 아직도 대형서점에서 서가 몇 줄을 채우기 힘들다. 인터넷에도 자료가 와인만큼 많지는 않다. 공부를 하자면 조금은 갑갑한 환경이기는 하다. 하지만 공부의 범위를 남이 해둔 것을 배우고 익히는 것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것을 만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한국인에게 한주 공부의 환경은 아주 좋다. 전국 어디에나 가볼 만한 양조장이 즐비하고, 그중 일부는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지정이 되어있다. 더술닷컴의 찾아가는 양조장 섹션만 뒤져봐도 주변에 갈만한 곳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요즘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보틀숍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서 술을 구하기도 많이 쉬워졌다. 술을 마시고 나면 테이스팅 노트를 써보는 것은 모든 콘텐츠의 기초가 된다. 역사의 기초는 하루하루의 기록이듯이.

 

필자는 막걸리의 경우 산미, 감미, 탁도, 탄산의 네 가지 범주를 스타일을 분류하는 기준으로 해서 테이스팅 노트를 쓰고 있다. 청주(약주)는 탁함과 탄산이 없으니 점도와 감칠맛으로, 증류주의 경우는 탁함, 탄산에 더해서 산미도 큰 변수가 아니라 점도, 감칠맛, 고미(쓴맛)을 네 가지 기둥으로 해서 쓴다. 대개 이 네 가지 기준으로만 제시해도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인 수준이 되면 스타일이 딱 집힌다.

 

스타일은 뼈대다. 좀 더 자세한 개성은 코멘트를 통해서 이야기한다. ‘신의 물방울’ 같은 작품에 나오는 화려한 스타일이 될 수도 있고 한두 줄의 건조한 것이 될 수도 있다. 대개 코멘트의 길이와 자세함은 감정의 총량에 비례한다. 아주 좋고 감동받은 술이 있다면 코멘트는 절로 길어지고 문학적 표현이 흘러나온다. 관심 있는 분들은 녹색창에 ‘허수자 블로그’를 검색해 보면 한주 관련된 700여 개의 테이스팅 노트와 수많은 양조장 방문기를 접할 수 있다.

 

 

 

 

 

 

 

 

술 마시면서 술 얘기 하는 것이 제일 즐거운 게 술쟁이들이라고 했다. 이야기하면서 술이나 양조장에 대한 정보도 나누고 서로의 감상을 통해서 내가 발견 못한 술의 여러 가지 면도 발견하고, 또 술에 얽힌 재미난 개인사나 해프닝도 이야기하고 말이다. 한마디로 술맛을 더 좋게 해주는 콘텐츠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콘텐츠의 맛이, 맛의 콘텐츠가 필요하다. 모든 일에 고수가 되려면 ‘자기 것’이 있어야 한다. 술맛이 좋아지는 콘텐츠가 부족함을 탓하지 말고 스스로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한주산업은 직업적 전문가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집단지성을 필요로 하고 있다. 한주가 세계인의 주류가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단계, 바로 ‘아는 만큼’을 넓히는 단계다.

 

 

 

 


 

 

 

 

 

글: 백웅재 작가 / 한주 전문점 ‘얼터렉티브 마켓’(Alteractive Market)’ 대표

백웅재 작가는 주문진에서 한주(韓酒) 전문점 ‘얼터렉티브 마켓’을 운영하며 사라져 가는 우리술과 먹거리를 찾아, 다양한 한주 상품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네이버에서 ‘허수자’라는 파워블로거로 활동하며 전국의 맛집과 한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 국가대표 전통주 소믈리에 경기대회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저서로는 『술맛 나는 프리미엄 한주』 따비(2016), 『우리 술 한주 기행』 창비(2020) 등이 있습니다.

 

 

 

 

*지나친 음주는 뇌졸중, 기억력 손상이나 치매를 유발합니다. 임신 중 음주는 기형아 출생 위험을 높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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