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칼럼

전통주 칼럼:: 탁재형 PD의 우리술 로드 I 양촌양조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22-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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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년대 이후 우리 쌀 100%에 우리 누룩을 쓰고, 감미료를 넣지 않은 막걸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시장의 주류(主流)는 밀과 입국, 그리고 감미료가 들어간 막걸리다. 이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술을 사랑하는 대한민국 술꾼의 깊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기존의 막걸리와는 다른 프리미엄 막걸리에 열광했고, 그것이 오히려 우리의 전통에 더 부합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은 희열이 우리술에 다가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이른바 ‘재래식 막걸리’는 우리술 유니버스에서 빌런의 자리로 밀려날 뿐이다. 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에 대해 최근까지도 생각이 뚜렷이 모이지를 않았다. 물론 쌀도 좋고 밀도 좋고 입국도 좋고 전통누룩도 좋다는 화엄의 경지로 눈 앞에 있는 잔을 족족 비워 버리는 것도 방법이겠으나, 좋은 술꾼은 모름지기 술을 대하는 자신만의 줏대도 갈고 닦아야 하는 법이다.

 

 

 

 

 

‘재래식 막걸리’가 시장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이유 중 큰 부분은 서민들과 함께해 온 시간일 것이다. 끼니를 때울 양곡도 모자라던 시절, 1961년 주세법 개정으로 탁주와 약주에 백미의 사용이 제한되고, 1966년에는 백미의 사용이 전면적으로 금지되면서 막걸리는 오로지 밀로만 빚게 되었다. 밀로 만든 막걸리는 쌀막걸리보다 단맛이 적고 텁텁하며 시큼한 맛이 있었다. 이를 가리기 위해서 사카린, 아스파탐 등의 합성감미료가 들어가게 되었고, 생산시설들이 통폐합되며 대량생산 과정에서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하기 쉬운 일본식의 흩임누룩(입국)이 전통적인 떡누룩을 밀어내게 되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이렇게 만들어진 밀, 입국, 감미료 막걸리는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그 긴 시간 동안 술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현대사의 질곡을 타넘었다. 60년대에서 최근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한국 현대사를 관통해 우리 곁에 존재해 오고 있는 것이다.

충남 논산시 양촌면에 자리잡은 양촌양조는 이러한 막걸리의 여정을 살펴보기에 가장 알맞은 곳이다. 1923년에 가내수공업으로 시작해 1931년에 지금의 자리에 양조장을 차렸고, 그 후 계속 같은 곳에서 술을 빚어오고 있기에, 양촌양조의 역사가 곧 우리술의 현대사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일제시대였음에도 일본풍 가옥이 아닌 전통 한옥으로 지은 양조장 건물은 당시로서는 술빚기와 관련된 작업을 일관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최적의 구조였다. 2층에서 고두밥을 만들었고, 큰 창을 내어 자연풍으로 이를 식혔다. 마루에 나 있는 좁다란 틈은 식은 고두밥을 1층의 발효조로 바로 내려줄 수 있는 창구였다. 반지하 구조로 되어 있는 1층은 상대적으로 외부 온도와 습도에 영향을 덜 받아서 안정적인 발효가 가능했다. 온도조절을 더욱 원활히 하기 위해 벽과 지붕 틈은 왕겨로 메웠다. 지금은 2층을 전시체험장으로 꾸며 더 이상 위층에서 만든 고두밥을 아래층으로 내리는 풍경은 볼 수 없지만, 발효조는 여전히 같은 곳에서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술을 품었다가 내어 놓기를 반복하고 있다.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한 소나기를 뚫고 도착한 양촌양조의 뜰에는 ‘소화(昭和)’라는 일제시대의 연호가 또렷이 찍혀 있는 술단지들이 오도카니 늘어서서 빗방울을 튕겨내고 있었다. 할아버지인 故이종진 창업주의 뒤를 이어 3대째로 가업을 잇고 있는 이동중(70) 대표는 1978년부터 아버지를 도와 양조를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혼란스러운 것이 많았어요. 원료, 제조 방법을 정부가 일률적으로 정하다 보니 처음엔 쌀로 만들던 것을 밀가루로 만들어라, 옥수수 가루로 만들어라, 그러다가 쌀 생산량이 많아지니 다시 쌀로 만들어라… 그러다 보니 술 맛도 안정되지 않고 변화가 많았죠. 품질도 일정하지 않다 보니 제대로 발효되지 않은 술이 출고되는 일도 있었는데 특히나 여름철엔 그런 술이 달구지나 자전거에 실려가다가 후발효가 일어나는 바람에 터져 버리는 일도 많았죠.”

양조장 건물에서 뜰을 지나쳐 안쪽으로 들어가면 시멘트 건물 하나가 있다. 다 된 막걸리를 커다란 탱크에 넣어놓고 팔던 판매장 자리다. 지금은 카페처럼 꾸며져 있는데, 테이블을 둘러싸고 의자처럼 앉게 되어 있는 시멘트 구조물이 바로 과거에 술탱크를 떠받치던 지지대다. 벽면에는 그 때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7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정겹게 느껴 질만 한 모습들이 가득이다. 탱크 앞에 길게 줄지어 있는 들통들, 그 사이사이에 섞여 있는 양푼 주전자,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호스로 그 통에 술을 채우는 일꾼, ‘양촌’이라고 쓰여진 막걸리 들통을 싣고 기다리는 소달구지와 자전거… 막걸리가 본격적으로 병입되어 판매되기 시작한 것이 1978년이니, 그 이전의 풍경일 것이다. 배고팠던 시절을 다루는 드라마에서 어머니가 아들에게 주전자를 내어 주며, “오늘 손님 오신다고 하니 양조장 가서 막걸리 좀 받아와라”라고 하던 바로 그 시기의 모습이다.

 

 

 

 

 

이동중 대표가 술을 내 왔다. 양촌양조에서 가장 오래 전부터 만들어 왔고 가장 많이 팔리기도 하는 제품인, ‘양촌생막걸리’다. 아마도 뒤편에 걸린 그림 속의 사람들이 마시던 술도 이 술과 그렇게 다른 것은 아니었을 게다. 입맛이 당겼다.

“우리 논산 지역 분들은 워낙에 이 술에 적응이 되어서, 계속 많이들 찾으십니다. 탄산감이 좋아서, 힘들게 땀 흘려 일하고 마시면 더 상쾌하다고들 하세요. 쌀과 밀을 혼합해서 만드는데, 쌀은 담백한 맛을 가지고 있고 밀은 좀 묵직한 맛이 있거든요. 그 둘을 조화시키기 위해 이런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입 안에 들어간 술은 농담 좋아하는 충청도 아저씨같은 인상을 풍겼다. 탄산감이 발랄하지만 단맛이 너무 도드라지진 않고, 깔끔한 쌀의 맛 뒤편으로 밀의 묵지근한 무게감이 지나가는 재미있는 이중주가 펼쳐졌다.

“사람들 입맛이 그동안 단맛에 적응하다 보니, 술 만드는 사람들이 감미료를 과하게 넣는 경우가 있는데 요즘은 단맛을 기피하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쓴 맛만 가릴 정도로 넣습니다. 들어가는 감미료도 자연에서 추출한 효소 처리 스테비오사이드이고요.”

60년대 후반들어 쌀을 막걸리 제조에 쓰지 못하게 되고 밀로만 만들게 되면서 양조업자들이 해결해야 했던 가장 큰 과제는 밀이 가진 텁텁함, 그리고 짧은 발효 과정에서 생기게 되는 쓴 맛을 가리는 일이었다. 원료로 찹쌀을 쓰고, 시간을 충분히 들여 발효를 하게 되면 술 맛이 쓰게 될 일이 없건만, 나라에서 법으로 정한 테두리 안에서 술을 만들어야 하는 업자들의 입장에선 좋던 싫던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동안 우리 막걸리에 필수 성분처럼 들어가던 감미료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고, 초기의 사카린에서 좀 더 천연물질에 가까운 아스파탐으로, 그리고 아예 스테비아라는 식물에서 추출한 자연물질 스테비오사이드로 변화해 왔다. 그것을 넣는 함유량은 시대별로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춰 계속 변화해 가고 있는 중이다. 이것을 넣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논쟁은 음식에 MSG를 넣는 것이 맞냐 틀리냐 하는 것과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옳고 그름 보다는, 어느 정도의 가격대에 맞춰 어떤 제품을 선택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양촌생막걸리의 출고가를 들어 보면 이런 긴 말이 부질없다는 것을 단박에 깨우치게 된다.

“출고가가1500원입니다. 많이 싸죠. 막걸리의 종류가 워낙 많다보니 가격조정을 하려 해도 어렵습니다.”

기존의 막걸리가 ‘서민의 술’이라는 지위를 굳건히 지켜온 데에는 이렇듯 서민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한 가격정책과, 그 가격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던 양조업자들의 노력이 있었다. 양촌양조에서 부리는 가격의 마술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술은 ‘양촌생동동주’다. 이것 역시 선대 때부터 만들던 것을 꾸준히 생산해 오고 있는 것인데, 밀을 사용하지 않고 100% 쌀로 만든 청주(주세법상 약주) 스타일의 단양주다. 발효기간을 길게 해 앙금이 가라앉은 술의 윗부분만을 떠내고, 아랫부분은 여과를 해서 혼합하는 방식으로 만든다. 입국과 전통누룩을 혼합해서 쓰는 것도 특기할 만한 부분이다. 공정의 편이성과 술 맛의 풍부함을 둘 다 놓치지 않기 위한 선대 양조사들의 연구의 산물이다. 이 술의 출고가는 3천원 대. 하지만 입에서는 옅은 사과와 바닐라의 향이 느껴진다. 이 가격에 이 정도의 풍부함이라니. 물론 훨씬 더 좋은 재료로 전통누룩만을 써서 만든 프리미엄급 청주와 정면대결을 펼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양촌생막걸리와 생동동주가 양촌양조 100년의 세월을 담고 있는 술이라면, 현재 양촌양조의 이름을 술꾼들에게 알리고 있는 ‘우렁이쌀’ 시리즈는 21세기의 우리술 환경변화에 맞춘 양촌양조의 미래다. 우렁이쌀은 제초제 대신 우렁이를 이용해 재배한 친환경 무농약쌀을 말한다. 이동중 대표의 농업대학교 동기 중에서 그간 쌀농사만을 연구해 온 분이 농사 지은 우렁이쌀을 원료로 2016년부터 ‘우렁이쌀손막걸리’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멥쌀을 써서 담백함을 강조했고, 20일간 25도의 저온에서 이양주 방식으로 숙성시켰다. 양촌생막걸리와 마찬가지로 스테비오사이드를 살짝 넣어 젊은 세대의 입맛에 맞는 단맛을 완성했다. 또한 커다란 흐름이라 할 수 있는 감미료 무첨가 막걸리에도 도전해,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한 찹쌀을 원료로 한 ‘우렁이쌀 드라이’를 내놓았다. 마찬가지로 이양주 방식으로 빚는데, 멥쌀 위주인 우렁이쌀손막걸리보다는 발효가 쉽게 진행돼 15일 정도면 끝난다. 이후에 계절에 따라 열흘에서 닷새 정도 숙성을 시키면 완성된다. 쌀 본연의 맛과 함께 은은한 자연의 단맛을 느낄 수 있어서 최근엔 양조장에서 가장 잘 나가는 제품이라고 했다.

우렁이쌀드라이를 코에 가져다 대니, 화사한 쌀의 향기가 고소함과 함께 피어 오른다. 입에 머금자 견과류의 향이 옅은 단맛과 함께 짧게 지나간다. 잣이 들어간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될 정도다. 목으로 넘기니 담백하고 드라이한 뒷맛이 이어진다. 식사 자리든 술 자리든 오래 두고 계속 잔을 기울일 수 있는, 본격적인 술꾼의 술이다. 이런 재료와 제법으로, 이 정도의 만족감을 주는데도 출고가는 여전히 4천 원을 넘지 않는다. 이 정도면 고집이다. 가격을 책정할 때 지역에서 이 술을 마시며 울고, 웃고 나이를 먹은 사람들의 얼굴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면 지키기 쉽지 않은 고집이다.

“시중에는 비싼 술이 많잖아요. 저희는 일반 소비자들이 가깝게 접할 수 있는 술을 만들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가격을 많이 올릴 수가 없죠. 좋은 원료로 만들고도 저렴하고 적정한 가격으로 술을 접할 수 있게 하는 게 술 만드는 사람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이동중 대표의 말 속에는 어찌 보면 당연한, 하지만 결코 지키기 쉽지는 않은 제조업의 황금률이 담겨 있었다. 제약과 규제, 그리고 멸시와 비난이 넘쳐나는 개발도상국의 술도가 판에서,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의 양조업자들이 어떤 고민을 가지고 술을 만들어 왔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말이다. 그리고 양촌양조가 왜 그 오랜 시간 동안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양촌양조에선 막걸리와 동동주 이외에도 ‘우렁이쌀청주’와 ‘여유소주’를 만들고 있다. ‘우렁이쌀청주’는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한 찹쌀과 입국을 주 재료로 한 도수 14도의 주세법상 청주다. 전주 국립농업과학원에서 특별히 제조한 효모를 받아다 쓰기에, 만들 때마다 농업과학원 측에 로열티를 지불한다고 한다. 이 효모는 우리 전통 청주를 만드는 데 쓰이던 토종 효모들 중에서도 특별히 좋은 맛과 향을 내는 것들로 엄선한 것이다. 이런 원료로 술 밑을 만들어 삼양주 방식으로 술을 빚다 보니, 입국을 쓰는데도 향이 풍부하다. 주세법상 청주라 해서, 입 안에 들어오면 일본의 사케처럼 반듯하게 전개되어 나가리라 생각했던 것이 기분 좋게 무너진다. 정제효모의 말쑥함과 우리 전통 방식에서 오는 풍만한 맛과 향이 교차하는 것이 우렁이쌀청주의 매력이다. 여기까지 마셔 보면 양촌양조가 앞으로 해 나가고 싶어하는 방향이 읽힌다. 외세에 의해 이식되었으나,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검증되고 이 땅의 술꾼들 입맛에 최적화된 방법론 위에,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현대의 우리 농업기술의 성과를 얹는 것. 바로 하이브리드 우리술의 대중화다.

가장 최근에 개발한 ‘여유소주’는 멥쌀을 재료로 발효하고 증류해 45도의 원주를 얻고, 이를 40도, 25도, 19도로 도수를 조정해 내놓았다. 지금은 8개월 정도 숙성과정을 거쳐 내놓고 있는데, 앞으로는 양조장 안뜰에 늘어서서 일제시대 때부터 그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빈티지 항아리에 넣어 장기 숙성을 시켜볼 요량이라고 한다. 100년에 가까운 양조장의 역사를 술 안에 녹여내는, 멋진 프로젝트가 되리라 생각한다. 그 항아리가 열리는 날 즈음이면, 우리술은 한층 더 다채롭고 향기로워져 있을 것이다.

 

 

 


 

 

 

 

글 : 탁재형 PD

탁재형 PD는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15년간 50개국을 취재하며, 세상의 넓음과 사람살이의 다양함을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2002년 ‘KBS 월드넷’을 시작으로 ‘도전! 지구탐험대’, ‘세계테마기행’, ‘EBS 다큐 프라임-안데스’ 등 해외 관련 다큐멘터리를 주로 제작했으며 2013년부터 여행 부문 팟캐스트 부동의 1위인 ‘탁PD의 여행수다’를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여행 산문집 『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어』김영사(2016), 세계 음주 기행기 『일은 핑계고 술 마시러 왔는데요?』시공사(2020)등이 있습니다.

*지나친 음주는 뇌졸중, 기억력 손상이나 치매를 유발합니다. 임신 중 음주는 기형아 출생 위험을 높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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