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칼럼

전통주 칼럼:: 별게 다 페어링🍶 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페어링 요소이다!l 문희영 소믈리에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23-11-03
  • 조회수 753

 

소믈리에의 역할은 무엇인가?

소믈리에의 범위가 점점 확대되고, 활동하는 분야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면서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고객 접전의 최전선’에 있는 소믈리에로서의 역할은 고객에게 최상의 술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최상의 술 경험을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페어링이다. 여기에서 페어링은 술과 음식의 조화뿐만이 아닌, “술과 소비자를 둘러싸고 있는 복합적인 환경을 컨트롤하여, 가장 맛있는 술을 즐길 수 있게 하는 행위”로 재정의하고자 한다.

 

별게 다 페어링

페어링의 재정의에 대한 쉬운 이해를 위해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술 마시는 순간을 떠올리며 적어보았다.

 

함박눈이 펑펑 오는 추운 겨울, 업무를 다 마치고 홀가분하면서도 지친 마음으로 뽀득뽀득 소리를 내며 길을 걷는다. 노란 가로등 불빛에 비치는 동글동글 내려오는 함박눈, 그리고 그 퐁신한 눈송이가 코끝에 닿는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감촉에 감성이 충만해져 이대로는 집에 가기가 아쉬워진다.

근처 주점에 들어가 따뜻한 어묵탕과 고도수의 깔끔한 쌀 증류주를 시킨다. 술에 관련하여 지식이 풍부하신 사장님께서 간단한 술에 대한 스토리텔링과 함께 직접 고르신 도자기 잔에 한 잔을 손수 따라주신다. 한 모금 넘기면 속이 따스해지며 입안에 머물다 사라지는 향긋함과 깔끔함에 만족을 하고, 곧이어 어묵탕 한 모금으로 고도수의 강렬함을 누그러뜨려준다. 매장에서는 잔잔한 인디밴드 음악이 흘러나오고, 주황빛 조명의 아늑한 분위기에 하루의 근심 걱정이 다 녹아내리는 듯하다.

 

바로 이 상황에 이번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모든 페어링 요소가 들어가 있다.

술을 마시는 계절과 날씨, 술을 마시는 사람의 컨디션과 상황, 기분, 술을 함께 마시는 사람, 술을 마시는 장소의 분위기, 음악, 함께 마시는 안주와 술, 그리고 술에 맞는 잔과 서비스 방법 등 모든 술을 둘러싼 것들이 페어링 요소가 될 수 있고, 이러한 요소들이 모여 최상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별게 다 페어링이네!”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고객에게 최고의 경험을 제공하는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페어링의 범위를 좀 더 넓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요즘같이 세밀하게 취향이 분화된 ‘취향의 시대’에는 이러한 복합적인 요소를 고려한 개개인에 맞춘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가 소믈리에에게 중요한 역량이 될 것으로 보인다. 페어링 요소들을 간접적 요소, 직접적 요소로 나누어 소개해 보고자 한다.

 

 

"간접적 요소 _ 감정과 술의 페어링"

 

술과 계절

사계절이 있는 나라의 특권 중 하나는 다양한 제철 음식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철 음식이 있으니 그와 어울리는 제철 술이 있고, 제철 식재료로 만든 그 달에만 마실 수 있는 계절주가 있다.

뿐만 아니라 계절별로 달라지는 풍경, 날씨, 분위기, 온도에 따라 고객이 원하는 술의 종류도 달라진다. 비 오는 날 막걸리, 무더운 여름 맥주, 추운 겨울 증류주, 낙엽 떨어지는 가을 오크 숙성주, 꽃 피는 봄 꽃을 섞어 빚은 약주 등 그 계절의 분위기에 적합한 술이 있다. 반대로 무더운 여름 땀을 한껏 흘리고 마시는 고도수 증류주, 추운 겨울 꽝꽝 얼은 손으로 마시는 얼음장 같은 라거 맥주를 떠올려보면 생각만 해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 조상도 절기나 명절에 맞춰 술을 즐긴 세시주 풍습이 있었다. 이러한 풍습을 담아 제품화시킨 사례가 배상면주가의 ‘세시주 시리즈’이다. 소믈리에가 이러한 제품이나 각 계절에 맞는 문헌 속 세시주를 인지하고 있다면, 그 계절의 음식과 함께 추천해 줄 수 있는 센스 있는 페어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23년 햇매실로 빚은 배상면주가 여름 세시주 ‘매실미주’ (출처: 홈술닷컴)

 

 

술과 장소

‘뷰 맛집’, ‘분위기 맛집’, ‘분위기를 마신다.’ 와 같은 단어가 생길 만큼, 음식이나 술을 맛있게 즐기기 위한 요소로 장소의 영향도 크다. 무형의 ‘서비스’를 전달하는데 사용되는,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유형적 요소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서비스 스케이프 (service+scape)’라는 용어가 있다.

서비스 스케이프를 구성하는 물리적인 요소로는 음악, 조명, 온도, 분위기, 인테리어 등이 있는데, 이러한 요소 하나하나가 또 다른 술과의 페어링 요소가 될 수 있다.

음악과 술의 연관성은 실제 해외 연구사례 중, 음악이 와인의 맛을 60%까지 높여준다는 결과가 있을 정도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영국 해리엇-와트 대학의 에이드리언 노스 교수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카베르네 쇼비뇽의 경우 웅장한 클래식 음악, 샤르도네 와인은 생동감 있고 경쾌한 곡이 나올 때 높은 점수를 얻었지만, 반대로 들려줬을 경우 만족도가 25%가량 떨어졌다고 한다.

술과 공간의 페어링을 경험하고 싶다면 성북동에 위치한 ‘공간 뒷동산’을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공간 디자이너 대표님이 인테리어, 잔, 식기까지 모두 직접 디자인하여 구성한 하나뿐인 공간에서 마시는 술맛은,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공감각적 미각 경험을 제공한다. 또한, 음악을 전공하신 대표님이 매달 선곡하는 술과 음식, 그리고 공간에 어울리는 플레이리스트가 LP 판에서 흘러나오며 공간을 채우고 있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한 공간과의 페어링에 가장 좋은 예시라고 생각한다.

 

디제잉 세션이나 오케스트라 공연 등 음악 이벤트도 열고 있다. (출처: @duidongsan)

 

 

술과 사람

술과 사람의 페어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진다. 하나는 함께 마시는 사람이고, 나머지 하나는 술을 마시는 주체이다.

​함께 마시는 사람은 술자리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천 원짜리 팩 소주도 고급 증류주가 되는 것이 술자리의 마법이다. 함께 마시는 사람을 소믈리에가 컨트롤할 수는 없지만, 그 사람과의 자리에 맞는 술을 추천해 주는 센스를 발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부부에게는 ‘님도 꽃이고, 꽃도 꽃이니, 꽃 앞에서 함께 취하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지시울 양조장의 ‘화전일취 18 백화’로 우아하고 그윽한 꽃내음 가득한 시간이 되도록 해줄 수 있고, 풋풋한 연인에게는 산뜻한 산미로 싱그러운 술자리를 가질 수 있는 ‘시나브로 청수’와 함께 서로에게 ‘시나브로(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스며드는 자리가 될 수 있도록 추천해 줄 수 있다.

 

20종의 꽃잎을 넣은 과하주 스타일의 백화주, 화전일취 18 백화 (출처: 지시울양조장 스마트 스토어) 시트러스한 산미가 매력적인 청수 와인, 시나브로 청수 (출처: 불휘농장 스마트 스토어)

 

 

​페어링의 주 목적은 술을 마시는 사람과 술을 연결(페어링) 해주는 것이다. 개인마다 술과 관련된 경험, 좋아하는 스타일 등이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파악하고 적합한 술을 추천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관능적 특성에서 적합한 제품을 추천해 주는 것은 기본이고, 그 외에 고객의 고향에서 생산된 술을 추천해 주거나, 고객의 이벤트나 기념일 등 상황에 맞는 술을 스토리텔링 등과 함께 추천해 주는 등 퍼스널 서비스를 제공해 줄 수 있다.

고객은 이 글에서 언급하는 모든 페어링 요소들을 연결해 주는 가장 중요한 주체이므로, 모든 요소는 고객에게 맞춰 페어링 해야 한다.

 

 

"직접적 요소 _ 술을 더 맛있게 만들어주는 물리적 요소"

 

술과 술잔

술잔이 술의 맛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리델의 메이킹 철학에는 ‘와인의 확성기’로서 잔을 만든다는 것이 있다. 그만큼 술잔은 술의 맛을 극대화해줄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술잔에 관련된 논의에서 빠짐없이 나오는 브랜드, ‘리델’의 사례와 함께 술잔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리델은 디자이너가 없다. 과거 와인잔은 테이블을 장식하는 도구로서 겉을 화려하게 장식한 잔들이 주를 이뤘지만, 리델이 최초로 포도 품종에 따라 적합한 형태의 와인잔을 만들기 시작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명제화에 화려한 디자인 대신 와인 맛의 확성기로서의 와인잔을 만들었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필요 없던 것이다. 이렇게 와인잔에 진심인 리델은 방콕에 있는 ‘리델 와인바&셀러’를 통해 직접적으로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하고 있다.

리델 와인바&셀러에서는 와인을 주문하면 소믈리에가 그에 맞는 리델 와인잔을 설명과 함께 제공한다. 40여 가지의 와인을 잔 단위로 주문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와인과 그에 맞는 다양한 잔의 페어링을 경험해 볼 수 있다.

과거와 달리 전통주 업계에서도 적합한 잔을 개발하기 위한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하나의 예로 전통주 구독 서비스 플랫폼, ‘술담화’에서 개발한 막걸리 잔이 있다. 주목할 점은 마치 리델이 포도의 품종에 따라 와인잔의 형태를 디자인했듯이, 막걸리의 특성에 따라 장점을 잘 살려줄 적합한 형태로 디자인했다는 것이다. 막걸리는 스타일별 특성이 달라 하나의 잔으로 서비스하기 부적합한데, 이러한 다양한 특성을 고민해 보고, 가장 맛있게 술을 마실 수 있는 잔을 개발한 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음용성이 좋은 막걸리를 위한, ‘벌컥 잔’ / 향과 맛이 진한 막걸리를 위한, ‘킁킁 잔’ / 탄산감이 풍부한 막걸리를 위한, ‘홀짝 잔’ ( 출처: 술담화 브런치 스토리 ' 왜 막걸리 전용잔은 없을까?'

 

이렇게 주종별, 특성별로 적합한 잔이 개발되고, 이러한 잔을 적합한 설명과 함께 술과 페어링 하여 제공할 수 있다면,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술 본연의 최상의 맛을 고객이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페어링 요소가 아닐까 생각한다.

 

술과 음식

음식은 서로의 풍미를 보완하고 이끌어내주는 근본적이고 유일한 미각적 요소이다. 그래서 음식과 술의 조화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누구나 적합한 조화를 느껴볼 수 있도록 페어링 원칙도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미각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페어링에는 절대적인 답은 없다.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조합도 다른 페어링 요소와 함께라면 좋은 페어링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입안이 얼얼해지는 매운 음식과 고도수의 증류주는 피해야 할 조합으로 여겨지지만, 지역적 요소, 그리고 마시는 공간의 분위기가 더해지면 ‘마라샹궈와 연태 고량주’의 조합처럼 좋은 조합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소믈리에는 단순히 술의 맛뿐만 아니라 복합적인 요소를 고려하여 틀에 박히지 않은, 새롭고 맛있는 페어링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앞서 설명한 모든 페어링 요소는 서로 영향을 주며, 하나하나가 변수가 되어 무한대의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술을, 새로운 페어링과 함께 제공해 주는 소믈리에가 있다면 그 누구라도 재방문을 망설이지 않을 것이고, 다양한 우리술의 매력을 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별게 다 페어링, 페어링은 ‘별것(특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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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희영(쿠캣)

이커머스 푸드 컴퍼니 쿠캣에서 주류 기획 MD로서 새로운 콘셉트의 다양한 제품 기획으로 전통주의 매력을 알리고 있습니다. 달달한 과일막걸리를 접하면서 전통주 업계에 뛰어들게 된 것처럼 전통주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친근한 접접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나친 음주는 뇌졸중, 기억력 손상이나 치매를 유발합니다. 임신 중 음주는 기형아 출생 위험을 높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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