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칼럼

전통주 칼럼:: 차례주의 자격 I 백웅재 작가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21-09-16
  • 조회수 952

인스타그램 @newmoon_guui

 

코로나 시국이지만 올해도 은혜로운 가을이, 추석이 돌아왔다. 많은 집들이 차례를 지낸다. 대가족이 모이지는 못하더라도 랜선 차례라도 지내게 될 것이다. 헌주, 음복도 다 같이 모여서 하진 못하더라도 랜선으로나마 하게 될 것이다. 랜선 차례란 어쩌면 특별한 의미를 가진 특별한 술로 조상을 기릴 수 있는 찬스일 수도 있다. 큰어머니께서 수십 년간 준비하셨던 그 특정 브랜드의 술이 아니라 말이다. 오늘은 그 차례주 이야기다.

차례주로는 유독 맑은 술을 쓰는 것 같다. 한 동이의 술을 빚어 숙성이 되면 위에 떠오르는 맑은 술이 청주다. 달리 여과시설이 없던 당시에 이렇게 맑은 술을 가라앉히려면 몇 주, 몇 달의 시간이 걸리는 데다가 양도 적어서 청주는 귀하디 귀한 술이었다. 하지만 차례주로 탁주를 쓰면 안 된다는 법도 없고 실제로 일종의 ‘금주법’에 비견할만한 ‘양곡관리법’의 시대에 가양주 양조가 원천적으로 막혀 있는 상황에서도 조상님께 올리는 술만은 직접 빚어야 한다는 고집을 부리던 뼈대 있는 집안들이 탁주를 제주로 쓰는 경우도 많았다. 특정 브랜드의 맑은 술을 올리는 것이 차례주라고 인식되는 것은 일제강점기 ‘정종’을 쓰던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혐의를 둘만 하다.

정종이란 일본식 청주(淸酒)의 일개 상표명이 일종의 대표명사화된 것(제록스가 복사기라는 뜻으로 쓰이듯)으로 우리나라에는 이 용도로 많이 쓰는 브랜드가 따로 있다. 밥술깨나 먹는다는 집도, 뼈대 있다는 양반집들도 이 술을 차례주로 많이들 쓴다. 외국산 쌀로 술을 빚어 쌀도 아닌 외국 농산물에서 뽑아낸 주정을 혼합한 맑은 술이다. 어느 모로 봐도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에서 조상을 모실 때 쓸 고급주는 못 된다. 정 형편이 안 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도. 물론 차례주의 첫 번째 자격으로 고인이 평소에 즐기던 술을 꼽는다면, 청주면 어떻고 탁주면 어떠한가. 소주도, 와인도, 위스키도, 하물며 일본 사케라도 안 될 것은 없을 것이다.

 

 

 

 

(좌) 삼해소주 (인스타그램 @saladadrink), (우) 호산춘 (인스타그램 @jcore0zxc)

 

 

추석 차례는 고인을 기린다는 뜻도 있지만 풍성한 추수에 대해 보고드리고 감사한다는 뜻도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역시 우리 농산물을 쓴다는 것에 차례주의 중요한 자격을 부여할 수 있다. 우리 땅에서 나는 쌀로 빚은 우리 한주가 제격일 것이다. ‘전통주’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는 때도 바로 성묘, 차례 수요가 많은 추석과 설이다. 필자는 몇 년 전에 ‘한주C’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구독 서비스를 실험적으로 해본 적이 있다. 당시 추석이 낀 9월의 주제는 ‘반가(班家)의 제주(祭酒)였다. 가양주의 전통을 이어받은 양조장들의 술들을 소개한 것이다. 당시 한주C에 소개되었던 술들은 서울의 삼해소주, 문경의 호산춘, 함양의 솔송주다. 개인적으로도 황희정승가 후예가 빚는다는 호산춘을 집안 차례주로 써서 호응이 좋았다. 황희정승가 이야기 때문이 아니라 술맛이 좋고 뜻도 있으니 말이다.

 

 

 

 

부자진 (인스타그램 @bujagin)

 

 

이들 술 외에도 가전의 비법으로 빚던 가양주가 제품화된 곳은 많다. 또 가양주가 아니더라도 우리 농산물로 다양한 술이 나오고 있다. 양평의 부자진에서는 진(Gin)을 증류한다. 아버지가 직접 농사짓는 유기농 허브를 사용해서 본고장의 진을 능가하는 향기로운 진을 만들어낸다. 남양주의 쓰리소사이어티 증류소는 한국형 위스키를 최근 출시했다. 충북 영동과 경북 영천을 중심으로 수많은 한국 와이너리들이 포도뿐 아니라 사과, 딸기, 귤 등으로 다양한 와인을 빚어내고 있다.

선택의 폭은 매우 넓어서, 풍성한 가을에 감사의 마음을 실어서 돌아가신 분의 취향에 들어맞는 술을 찾기에 어렵지 않을 것이다. 최근에 많이 생긴 인근의 한주(전통주) 보틀숍들은 차례주로 적당한 술들을 준비하고 있다. 특별한 의미를 담은 차례주가 필요하다면 가까운 보틀숍을 찾아 문의해보자. 적절한 술을 소개해 줄 것이다. 마트 진열대에서 익숙하고 흔한 술 한 병 집어 드는 것보다는 이 편이 정성도 담기고 좋지 않겠는가?

 

 

 

 

 


 

 

 

글: 백웅재 작가 / 한주 전문점 ‘얼터렉티브 마켓’(Alteractive Market)’ 대표

백웅재 작가는 주문진에서 한주(韓酒) 전문점 ‘얼터렉티브 마켓’을 운영하며 사라져 가는 우리술과 먹거리를 찾아, 다양한 한주 상품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네이버에서 ‘허수자’라는 파워블로거로 활동하며 전국의 맛집과 한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 국가대표 전통주 소믈리에 경기대회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저서로는 『술맛 나는 프리미엄 한주』 따비(2016), 『우리 술 한주 기행』 창비(2020) 등이 있습니다.

 

 

 

 

*지나친 음주는 뇌졸중, 기억력 손상이나 치매를 유발합니다. 임신 중 음주는 기형아 출생 위험을 높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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