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칼럼

전통주 칼럼:: 탁재형 PD의 우리술 로드 I 한국전통주연구소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21-09-02
  • 조회수 181

 

 

 

문헌 속에만 존재하는 전설의 보물을 찾아, 실낱같은 단서들을 조합해 그 실체에 접근하는 탐험가 - 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를 사람은 아마 할리우드 영화의 주인공, 인디아나 존스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탐험가가 꼭 중절모를 쓰고 손에 채찍과 권총을 들고 있을 필요는 없다. 하얀 모시 저고리를 입고 곱게 기른 머리를 뒤로 동여맨 채 좌식 책상 앞에 앉은 초로의 남성이 때로는 인디아나 존스보다 더한 역경을 헤치고 보물을 찾아내 미주가들의 전당에 헌액해 온 탐험가일 수도 있는 것이다.

서울 효자동에 위치한 전통주연구소에서 한국 전통주의 산증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박록담 소장을 뵈었을 때, 그 느낌은 좀 더 명확해졌다. 고아하고 기품 있는 안색 너머에서 세월 속에 단련한 강단과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각종 미생물이 종횡무진하는 마이크로 코스모스에서, 궁극의 맛과 향이라는 성배를 찾아 누룩곰팡이의 밀림에 길을 내 온 탐험가의 눈빛이었다.

박록담 소장은 '21세기 한국 전통주의 아버지'라는 칭호에 모자람이 없는 분이다. 2000년 3월에 문을 연 전통주연구소에서 지금까지 키워낸 직계 제자만 15,000 명이 넘고, 그들이 현재 우리술품평회를 비롯한 각종 전통주 경연 대회에서 상을 휩쓸고 있다. 오죽하면 '박록담류'라는 표현이 전통주 업계에 널리 통용되고 있을 정도다. 지금에야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지만, '우리 것'은 어딘지 '모자란 것' 또는 '촌스러운 것', 심지어는 '극복하고 혁파해야 할 것'으로 치부되던 시절이 있었다. 박 소장은 길게도 이어지던 20세기, 자기부정의 대홍수 속에서 전통주의 씨앗을 찾아내고 싹을 틔워 21세기에 전달한 방주의 기획자이자 선장이었던 셈이다.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이 학교에서 공부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쪽으로 삶의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전기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였지만, 애주가였던 아버지가 그를 술의 세계로 이끌었다.

"저희 아버님이 술을 좋아하셨어요. 학교 다니면 집에 갈 때 용돈을 타러 가잖아요. 결국은 용돈 타기 위해서 가는 것인데, 그때 빈손으로 가면 '저놈 또 돈 타러 왔구나' 이런 표정이세요. 하지만 술을 사 가지고 가면 그렇게 반가워하셨어요. 나름 투자를 한 셈이죠. 술값에 투자를 하면 나한테 몇 배의 이익이 돌아오니까. 하하."

하지만 80년대 초반, 구할 수 있는 술의 종류는 많지 않았다. 미군부대를 통해 흘러나오는 양주는 비싸기 이를 데 없어 대학생의 주머니 사정으로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래서 꾀를 내었던 것이, 시골에서 온 학교 친구들을 통해 밀주, 즉 암암리에 만들어지던 가양주를 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밀주 역시 현장에 직접 가야 구할 수 있는 것이고, 들이는 시간과 교통비를 생각하면 재료를 사다가 직접 만드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술 잘 빚는다고 소문난 몇몇 할머니들에게 술빚는 법을 물어 물어서 자취 집에서 술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시초였다.

그 뒤로 그는 쌀과 누룩이 만나 향기로운 술이 되는 마법에 푹 빠져버렸다. 처음에 계속 술을 망쳤던 것이 오히려 오기를 부리게 만들었다. 배워 온 방법대로 했는데도 술이 되질 않으니, 또 다른 사람을 찾아가고 또 다른 사람을 찾아가며 이런저런 술의 주방문(레시피)들을 배우고 기록하게 된 것이다. 이때 만난 가양주의 장인들이 하나같이 고령의 노인들이었던 것도 박 소장에겐 일종의 의무감으로 작용했다. 이분들이 세상을 뜨시면 이런 술이 모두 사라지겠구나-라는 위기의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술과 인연을 맺은지 10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술은 나오지 않았다. 술이 아니라 식초가 되기 일쑤였고 어쩌다가 제대로 되어도 맛이 너무 거칠고 독해 주변 사람들이 마시려 하지 않았다. 그런 술을 아버지에게 가져다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깨달음은, 많은 경우에 그렇듯이 화장실에서 찾아왔다.

"제가 화장실에 가면 물을 꼭 2번 내리는 습성이 있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냄새가 싫어서 물을 내리는 것인데 물 2번 내리는 것 때문에 남들보다 화장실에서 더 늦게 나오게 되더란 말이죠. 물은 물대로 낭비하고. 그때 깨달았어요. '내가 성격이 많이 급하구나. 조금만 참아 보자.' 그래서 그때부터 10초, 15초, 20초 이렇게 참는 버릇을 들이기 시작했는데,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술이 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가 술을 배우러 갔던 할머니들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은, '술은 사람을 닮는다'는 거였다. 사실은 그것이 가장 큰 가르침이었는데 젊었던 박 소장은 그 부분은 간과하고 뭔가 나에게 빼놓고 가르쳐 주지 않은 비법이 있을 것이라 짐작하고 그 부분만 찾아 헤맸던 것이다. 누룩과 효모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제공해 주면 술은 알아서 되는 것인데, 급한 성격대로 발효를 사람의 시간에 맞춰 끌고 가려 했던 것이 술을 망쳐왔던 원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10년의 세월이 필요했던 것이다.

"한 번은 내 술은 써서 맛없다고 하던 여동생이 술을 마셔 보더니, '오빠도 이제 나이가 드는갑소' 하는 거예요. 제 술이 어느새 달고 순해졌다는 거죠. 그렇게 깨우친 이후로는 술 만드는 게 더 재미있어졌어요."

 

 

 

 

 

 

 

그에게 또 한 번의 전기가 찾아온 것은 2002년에 열린 베이징 술 박람회 때였다. 그의 술을 마셔 본 외국 기자가 '술이 상한 것 아니냐'고 물었던 것이다. 그때까지는 당연하게 느껴지던 기존 전통주의 강한 누룩향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회의에 빠지게 된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박 소장은 고전 연구에 매달렸다. <규곤시의방>이며, <임원십육지>, <양주방>,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같은 책들을 훑고 또 훑어 조선시대의 술빚는 레시피들을 채록하고 그것들을 연구했다. 책 속에는, 길이 있었다.

"조선시대의 술을 보면, '인유향(麟乳香) ', '석탄향(惜呑香)' 처럼 '향(香)'자가 붙은 술이 너무나 많아요. 그런 술들은 한 번 빚는 술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빚는 술이죠. 발효를 두 번 세 번 거듭해서 완성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일반적으로 우리가 목격해왔던, 제가 어렸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술 빚을 때의 모습하고 전혀 다른 방법들이었어요."

사대부 집안마다 절기별로 제사가 있었고, 그 제사에 쓸 술을 집집마다 빚던 조선시대는 가양주의 전성시대였다. 삼국시대 이래 면면히 이어오던 술빚기의 노하우가 마침내 꽃망울을 터뜨려 진한 향취를 풍겼던 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향기로운 전통은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며 자취를 감춘다. 양곡을 수탈하고 일본식 주류를 보급하기 위해 총독부가 강제한 '주세령'(1916)에 의해 가양주는 불법이 되었고, 우리 술은 정당한 이름마저 빼앗겼다. 누가 체포하러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만드는 술은 차츰 그 본령을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법을 피해 단속을 피해 술을 빚다 보니 제조 방법을 제대로 지켜서 술 빚을 여유가 없었던 거예요. 게다가 농사지으면 착취당하는 어두운 현실 속에서 술빚기에 전념할 시간이 없었던 거죠. 그렇다 보니 원료 처리하는 것에서부터 술 빚는 과정이 모두 간소화되고 축소되었어요. 발효 기간도 짧아지고요. 그렇게 되면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 쓴맛이 올라오는 겁니다. 장(醬)도 뜨거운 것을 빨리 발효시키면 다 써져요. 김치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술빚기를 근 80여 년을 해온 거예요."

문헌에 나와 있는 옛 레시피를 되살려, 누룩과 자연 효모를 믿고 충분한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들어낸 결과물들은 놀라웠다. 그전에는 오로지 맛만 있고 향이라고 할 것이 없던 전통주에서, 꽃, 과실, 향신료, 심지어 솜사탕의 향기가 올라왔던 것이다.

"'주찬'이라는 책에 보면 '송계춘'이라는 술이 나와요. 부재료에 대해서는 일절 안 써져 있는데, 이름을 보면 솔향과 계피향이 나는 술이라는 얘기거든. 재현해보기 전까지는 솔잎과 계피를 함께 넣어서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 말이 많았어요. 그런데 옛 방식 그대로 만들어 보니까, 쌀만 가지고 만들었는데도 솔향과 계피향이 나는 거예요. 우리의 전통 발효법이 이렇게 놀랍습니다."

이렇게 문헌을 의지해 직접 만들어 보고 복원한 술이 무려 1천여 종. 30년이 넘게 걸린 필생의 작업이었고, 결과적으로 이것이 21세기 우리술 르네상스의 토대가 되었다. 이토록 절박하게 매달린 그의 작업이 술빚는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면서,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생겼다.

"한 번은 후배들이 우리술 시음회를 한다고 해서, 안부 인사를 하러 갔어요. 그 자리에 여러 사람들이 가지고 나온 술의 맛을 보는데, 누군가가 '석탄향'을 재현했다는 거예요. 그 술을 맛보고 나서, 영 아닌 듯해서 '이게 석탄향 맞습니까?'하고 묻는데, 다행히 그분은 저를 모르는 상태였고, 석탄향이 맞다며 술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는 거예요. 그때 머리가 쭈뼛 서는 느낌이었어요. 제가 석탄향에 대해서 썼던 스토리를 달달 외우고 있는 거예요."

석탄향은 박 소장이 국내에서 처음 재현한 술이다. '차마 삼키기 아까운 향기'라는 뜻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멥쌀과 찹쌀만 가지고 만드는데도 사과, 포도, 꿀 같은 향기와 입에 착 달라붙는 감칠맛이 일품인 것으로 유명하다. 이것을 재현하기까지 11번의 실패가 있었다. '백미 두 되 곱게 빻아 물 한말에 죽 쑤어 누룩가루 한 되와 함께 빚어 넣고 겨울은 7일, 봄가을은 5일, 여름엔 3일 만에 더술한다...'(임원십육지)처럼 간결하게 적혀 있는 주방문을 보고 그 행간까지 읽어내 '삼키기에도 아까운 향'이 나는 술을 재현하는 것은 오감을 넘어 육감에 상상력까지 동원해야 하는 작업이다. 그렇게 얻은 술의 향기를 그가 잊을 리 없었겠지만, 그 자리에선 웃고 넘겼다. 오히려 자신의 작업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다고 한다.

"내가 만일 석탄향을 안 빚어 보고, 그냥 상상해서 스토리텔링을 해놨다고 하면 모르는 사람들은 그걸 보고 그 술은 그런 술이구나 할 거 아니에요.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그래서 오히려 지금은 어떤 술에 대해서 이렇다고 딱 단정을 지어 말하는 것을 꺼려요. 저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으니까요."

 

 

 

 

 

 

박 소장이 현재 가장 관심을 쏟고 있는 주제는 우리술의 세계화다. K-컬쳐가 동시대 지구촌 문화의 새로운 기준을 써 내려가고 있는 지금, 우리술은 K-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발걸음이 더딘 분야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시도해 볼 것들로 가득한 블루오션이기도 하다. 우리술 속에 내재되어 있는 장점들에 주목한다면, 일본의 사케와 중국의 바이주를 능가하는 세계인의 술이 되는 것이 가능하다고 그는 믿는다.

"동양 3국의 술빚기를 보면 재료가 똑같아요. 곡물, 누룩, 술.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후발주자예요. 사케나 바이주와 이렇게 다르다고 내세울 만한 변별력이 있어야 해요. 일단 우리술은 민족 전체가 주식으로 먹는 곡물을 가지고 술을 빚는다는 점에서 달라요. 다른 나라는 다 부식거리를 가지고 술을 만들어요. 일본은 오로지 멥쌀 한 가지로 만드니까, 주식인 쌀, 조, 수수, 보리, 기장, 멥쌀, 찹쌀이 다 술이 되는 우리와 또 다르죠. 그렇게 주식으로 술을 만들다 보니, 우리 민족의 체질과 딱 맞는 술이 나오는 거예요. 그리고 발효기술 면에 있어서도, 쌀만 가지고 빚는데도 과실향, 꽃 향이 발효 단계에서 나게 되는 우리의 기술이 서양보다 앞서 있어요. 와인에서 꽃향기, 과일 향기가 난다고 하지만 과일향은 포도로 빚었으니 나는 것이고, 꽃향기는 만든 이후에 숙성시키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거든요. 우리술은 발효 단계에서 꽃 향이 먼저 올라오고 (넣지도 않은) 과일향이 나중에 올라와요. 향이 나는 재료를 넣지 않고도 그 향을 발현해 내는 것이 당연히 더 어려운 기술, 고급 기술이죠. 우리술이 세계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스스로가 우리술을 너무나 모른다는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술을 제대로 알고, 와인에 대한 상식만큼만 우리술에 대한 지식을 쌓는다면 우리술은 세계화된다고 확신합니다."

우리의 가양주가 차례상을 넘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교육과 체험의 확대가 필수적이겠으나, 그전에 우리술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지난 세기의 멍에를 풀어버리는 일도 시급하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전통 방법대로 술을 빚으면 '청주'라는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약주'라고 불러야 하는 주세법상의 술 분류 문제다. 박 소장은 오래전부터 이에 대해 가장 앞장서서 목소리를 높여온 사람 중 한 명이다.

"일본에서는 쌀로 만든 술을 '미주'(米酒)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 표현을 쓰지 않아요. 대신 쌀로 만든 술을 '청주'(淸酒)라고 불렀죠.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면 우리 조상들의 양조 철학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의 고전 '시경'(詩經)에 보면, 조상의 제사를 잘 모시면 큰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복을 받기 위해 자손들이 정성껏 술을 빚어 바치는데, 그 술의 향 중에서도 가장 귀하고 높은 향을 '청향'(淸香)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깨끗하고 순수한 향인 것이죠. 이런 향이라야 높이 올라가서 하늘에 닿고, 신을 감동시킬 수 있었던 겁니다. 그래야 조상신이 차려놓은 제상을 받으러 내려오시게 되는 것이죠. 청주는 단순히 맑은 술이 아니라, '청향'이 나는 술이기 때문에 청주라고 불렀던 겁니다. 그런데 현행법대로 하면 우리 술에서는 이 청주가 빠지게 되는 겁니다. 단순히 생각해서 흐린 술, 탁주가 있으면 맑은 술, 청주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왜 맑은 술은 일본식 방법으로 만든 것에 한하고 우리 식대로 만들면 그 이름을 쓸 수 없냐 말입니다. 주세법은 아직도 일제 강점기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아쉬워할 따름입니다."

 

 

 

 

 

 

우리술의 계승과 발전에 평생을 바쳐온 박 소장은 지금의 젊은 세대가 전통주에 열광하고 오히려 더 힙(Hip)한 술로 인식하는 세태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다.

"지금의 2, 30대들이 우리술에 대해 접근하는 것은 다양성과 호기심에 뿌리를 둔 것이죠.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좀 색다르고, 색도 예쁘고 하면 일단 호기심에 경험해 보곤 합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이 계속해서 이런 술만 구매할 것이냐, 그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사람의 입맛은 전부 상향 지향이거든요. 점점 더 좋은 양질의 술을 추구하게 될 것인데 그때 가서 그들을 매혹시킬 우리술이 없다면 결국은 사케로 넘어가고 와인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젊은 세대의 입맛을 붙잡을 수 있는 방법은 그런 호기심을 자극하는 술 이외에도 제대로 빚은, 향과 맛이 풍부한 좋은 술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방법 외엔 없습니다."

박 소장이 젊은 세대에게 종합적인 우리술의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진행했던 이벤트가 '시주풍류'(詩酒風流)라는 술 감상회였다. 조상들의 음주문화인 '풍류'를 재현해, 술과 시, 서예, 그림, 음악이 합쳐진 복합 문화이벤트(라고 쓰고 주연이라고 읽는다)를 열었던 것이다. 박 소장이 술을 소개한 뒤, 직접 그 술에 어울리는 시를 짓고(그는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그것을 서예가가 족자 위에 써 내려가면 여기에 그림이 덧붙여지고 이것을 소리 한자락 곁들여 술과 함께 감상하다 보면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도 많았던 모양이다. 지금은 도처에 역병이 창궐하여 이 주연의 말석이라도 차지해볼 기회가 아예 없는 터이지만, 새 두견주를 마실 때쯤 되어 좋은 시절이 돌아오면 저 호사스러운 풍류에 어떻게든 한자리 차지하게 해 주십사 빌어볼 작정이다. 이날 소장님과 못 다 나눈 우리술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글 : 탁재형 PD

탁재형 PD는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15년간 50개국을 취재하며, 세상의 넓음과 사람살이의 다양함을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2002년 ‘KBS 월드넷’을 시작으로 ‘도전! 지구탐험대’, ‘세계테마기행’, ‘EBS 다큐 프라임-안데스’ 등 해외 관련 다큐멘터리를 주로 제작했으며 2013년부터 여행 부문 팟캐스트 부동의 1위인 ‘탁PD의 여행수다’를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여행 산문집 『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어』김영사(2016), 세계 음주 기행기 『일은 핑계고 술 마시러 왔는데요?』시공사(2020)등이 있습니다.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으로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